2019.04.12 읽고 쓰기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오늘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156쪽까지 읽었다. 분명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이지만 내 기억과는 사뭇 다르게 이 책은 꽤나 실감 나고 자세한 서술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오늘 읽은 부분 중 인상 깊었던 구절 몇 개를 가져와봤다.
이제 나는 내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필수품 제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특히 의자와 탁자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의자와 탁자 없이는 내가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위안거리들을 즐길 수가 없었다. 탁자 없이는 즐겁게 글을 쓸 수도 먹을 수도 없고, 다른 여러 가지 일들도 할 수 없었다. (100쪽)
그다음으로 나는 양초가 없어 몹시 불편했다. 그러니 어두워지기만 하면(대개 7시경이었다)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 유일한 해결책은 염소를 잡을 때 나오는 기름을 모아 두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햇볕에 구워 만든 토기 접시 위에 놓고 뱃밥으로 심지를 만들어 달아서 그럭저럭 등잔불로 썼다. 양초처럼 흔들림 없고 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등잔불이 밤에 빛을 선사했다. (111-112쪽)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산책을 하려고 했지만 몸에 기운이 하도 없어서 엽총조차 들기 힘들었다(엽총 없이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조금 걷다가 땅바닥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평온하고 잔잔했다. 그곳에 앉아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 왔던 이 땅과 바다는 대체 무엇일까? 어디서 생겨났을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야생이건 길들었건, 인간이건 동물이건, 모든 생명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 > (130쪽)
이런 일들을 하는 와중에 나는 성경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담배 때문에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참고 읽을 수가 없었다. 그저 무심코 책을 펼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눈에 처음 들어온 게 바로 이런 구절이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를 불러라. 구해 주리라.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 (134쪽)
로빈슨 크루소의 생을 위한 몸부림은 꽤 감동적이다. 대화를 나눌 그 누군가도 존재하지 않는 망망대해의 무인도. 그곳에서 그는 절망에 빠져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사실 이는 바다를 동경해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모험을 택한 그의 이력을 보았을 때 그의 투쟁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함께 고통과 절망을 나눌 동료 한 명 없이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면, 나는 과연 로빈슨 크루소처럼 당장의 생존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아마 감당할 수 없는 우울함에 식량만 축내다가 굶어 죽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그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외출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도 생존을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우며 하루를 보내고, 어느 정도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이 생각하는 탁자나 의자, 양초 같은 생필품도 직접 제작하고, 과일을 말려 저장하며, 가축을 길들여 기르는 방법도 터득한다. 참 대단한 생존력이다.
어쨌든 이렇게 혼자가 되자 로빈슨 크루소에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는 ‘이 땅과 바다는 무엇이고, 어디서 생겨났으며, 나는 누구이고, 생명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고찰한다. 그리고 그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신(내가 읽는 번역본에서는 그가 섬기는 신을 하느님이라고 번역했다.)’을 생각하고, 하느님을 멀리 했던 자신의 어리석은 과거를 반성하며, 진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에게 혼자가 되는 시련을 주신 분도 하느님이고, 그런 와중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분도 하느님이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서 신이 존재한다면 왜 도대체 인간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처럼 정말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을 시련을 겪은 사람이라면, 절대자의 존재와 그가 내릴 구원에 매달리고 싶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리는 일이 많은 것처럼. 종교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내가 종교를 가지기 전까지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겠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위한 투쟁이 몹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문득 이 소설을 읽다가 예전에 읽은 쥘 베른의 <<15 소년 표류기>>가 떠올랐다. 비슷하게 무인도에 표류하는 이야기지만, 제목 그대로 그 소설에서는 15명의 소년이 함께 고난을 이겨나간다. 이 소설 읽기를 마치면, 그 책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