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30207~230209)

by bookyoulovearchive


항상 ‘질서’만이 미덕이라고 여겨왔던 나에게 ‘혼돈만이 유일한 지배자’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색다른 관점이었다. 그리고 ‘혼돈’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계속 알고 싶어졌다.


글쓴이가 파헤쳐 가는 데이비드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람은 정말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훌륭한 학자였을지는 몰라도,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질서’를 세우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무질서’들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이비드의 폭군 같은 면모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결국 질서를 만들려는 노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돈에서 생명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질서’가 아닌 ‘변이’이기 때문이다.


우생학이 미국에서 그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몇몇 인간의 잘못된 확신과 믿음이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일까.


이제야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p.221)

인간이 아무리 우주의 먼지 한 톨보다도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래서 우주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중요한 존재’ 일 수 있다는 믿음.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우주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우리는 중요해요.’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왜 이 책의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인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과학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믿었던 나에게 이 책은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이 미래에는 거짓이라고 밝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굳건한 믿음을 바꾸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말처럼 엄청난 노력과 끊임없는 투쟁이 없이는 진실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진실이 정말로 진실인지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믿음 안에 매몰되어 거짓된 세상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p.255)

우리는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정리해 놓은 범주와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그 기준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세계에 올바른 답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혼돈을 정리할 그 시대의 기준만이 있을 뿐이다. 과학도 그러하다. 과학이 늘 옳다는 믿음을 버리고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언제나 변화하고 있음을, 단지 혼돈을 정리해 놓은 틀이 있음을, 그 틀은 언제든 진실이 아님이 밝혀질 수 있기에 무조건적으로 믿어서는 안 됨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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