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074 (230104~230123)
그는 사람들이 초상화를 봐도 아무것도 못 알아낼 거라는 걸 알았다. 초상화가 추하고 역겨운 얼굴 속에 그의 얼굴과 닮은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 하지만 그래도 그는 두려웠다. (p.46)
(23/01/07) 아름다운 얼굴 뒤에 가려진 추악한 초상화의 비밀을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는 없었을 텐데. 역시 나는 죄를 저지르고는 못 살 것 같다. 죄가 밝혀질까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다가는 먼저 미쳐버려 내 스스로 죄를 고백해 버리고 말 지도 모르니까.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결국 나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일일 것이다.
"맙소사! 내가 숭배한 게 저런 거라니! 저건 악마의 눈이야."
”배질,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천국과 지옥을 함께 갖고 있어요."
(…) 추악함과 혐오스러움은 분명히 그림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면의 어떤 생명체가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나면서 나병과 같은 죄악이 서서히 그림을 파먹은 것이었다. 물에 잠긴 무덤에서 썩어 버린 시체보다 더 보기 끔찍했다. (p.75)
(23/01/13) 불쌍한 배질! 훌륭한 그림을 그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악한 도리언의 초상화의 비밀을 알게 되었단 이유로 무참히 살해당하는 결말을 맞고야 말았다.
사실 여기서는 '마음 속 천국과 지옥'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인간의 성악설을 믿는 쪽이고, 후천적으로 착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는 처음부터 지옥이 존재했고, 그 지옥을 밀어낼 천국의 크기를 얼마나, 어떻게 늘려갈 것인가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도리언도 분명 본성이 악했는데 헨리의 말로 각성해 그 억눌렀던 것을 초상화라는 수단 뒤에 숨어 표출하는 것뿐이다.
죄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오, 그것은 절대 속죄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다고 해도 망각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결국 그는 잊어버리자고,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을 몽땅 없애 버리자고, 사람을 문 살무사를 짓밟듯이 기억을 짓밟자고 다짐했다. (p.124)
(23/01/20) 범죄자들이 뻔뻔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망각이 아닐까? 상처를 주거나 범죄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는 용서받지 못해도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죄를 쉽게 망각할 수 있다. 망각은 자기 위안과 합리화의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많은 범죄자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기억상실과 망각을 핑계로 대기도 한다. 참 불공평한 일이다. 아픔을 준 사람은 그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는 반면, 아픔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잊고자 해도 잊을 수 없다니.
방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근사한 초상화 한 점이 벽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이 초상화는 그들 주인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였다. 미모와 젊음을 간직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바닥에는 야회복 차림의 남자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죽어 있었다. 주름투성이에 야위고 역겨울 뿐만 아니라 흉측한 몰골이었다. 그들은 그 사람의 손에 낀 반지들을 살펴본 다음에야 그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p.198-199)
(23/01/23) 도리언은 자신의 실체를 아는 모든 것을 없애면 안전해지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초상화와 자신의 생명의 짐을 나누어 짊어진 순간 그는 초상화와 연결되어 한 배를 타버린 것이다. 결국 초상화를 찌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리언이 초상화를 찌르자 그가 살아 있을 때와는 반대로 초상화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도리언의 시체는 그동안 그가 초상화에 떠넘기고 있던 추악함과 늙음, 흉측함을 모두 돌려받은 상태로 변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본성의 추악함과 흉측함을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길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 실체는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