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이별의 푸가

한겨레출판 (230313~230323)

by bookyoulovearchive


산다는 건 시간 속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시간 속을 지나간다는 건, 매 순간 우리가 우리를 떠난다는 것, 우리 자신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매 순간 존재하는 단 한 번의 우리와 매 순간 이별하면서 매 순간 다음 순간의 우리로 달라진다는 것, 그것이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 그것은 매 순간 우리 자신과 이별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그때 거기에 존재했었던 우리를 우리는 지나가야만 하니까, 떠나가야만 하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본질적으로 허무주의자이다. (p.87)
우리가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건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삶 속에서 특별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생의 어느 특별한 비의를 가르쳐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비의의 진실을 그 사람이 떠난 뒤에야 깨닫는다. 우리가 떠난 사람을 다시 그리워하는 건 그 진실을 이번에는 제대로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겠지만 그 사람은 이제 없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없고 그가 가르쳐준 비의의 진실만이 혼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떠나서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이 사랑과 세월 사이의 비극이다. (p.129)

이 책을 마음 깊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궁금해졌다. 많은 부분에서 마음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참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나에게는 단순히 사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관계에 대입해서 생각해 봤을 때 공감되는 부분들이 더 많았다.


특히 ‘산다는 것, 그것은 매 순간 우리 자신과 이별한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살아가면서 늘 새로운 나와의 만남, 타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생각했지 살아간다는 것을 나 자신과 이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만난 후 새로운 나 자신과의 만남이 과거의 나 자신과의 이별과 같은 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말은 마음에 담아두고 살려고 하는 편인데,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과 잘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


좀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좀 더 살아간 후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인상적인 구절이 또 바뀌겠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을 미래의 내가 보고 또 다른 생각을 남길 수 있다는 게 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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