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시인선 146 (230813~230815)
(23/08/15) 난다의 소문난다 레터를 읽으며 김희준 시인을 알게 되었고, ‘사라지는 건 없어 /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이라는 구절 하나에 끌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한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을 구매했다. 시인은 2020년 불의의 사고로 영면했고, 이 시집은 그의 생일이자 49재에 나온 시집이라고 한다. 보통 시집을 읽다 보면 처음 부분에 집중해서 읽다 갈수록 그냥저냥 읽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시집은 좋았던 시들이 시집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고, 4부의 시들이 특히 좋았다.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참 많았다.
| 그가 남긴 '시작 노트'를 읽어본다. “먼저 가버린 이름을 생각한다. 입김은 고체가 되어 동그라미로 떨어진다. 첫눈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다면 그건 너일 거라고. (······) 젖은 이름을 가졌구나, 얼마 불리지 못한 어린 이름을 적는다. 지나가다 널 닮은 사람을 봤어. (······) 네가 없는 세상에서 네 이름을 모래사장에 써두는 일에 금방 하루를 써버리고. 불러줄 이름이 지워지고 있어. 그럼에도 첫눈이 따뜻하면 좋겠어. 바다에 겨울과 봄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p.142)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갔지만, 그의 시집과 산문집은 이 행성에 남아 있다. 저 멀리 우주 어드메로 먼저 가버린 이름, 그렇지만 이 행성에 아직 남아 있는 이름과 그의 빛나는 글들.
여긴 여름입니다, 당신은 우주 저 너머 별 어딘가에 잘 계시나요?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p.35)
때때로 스펙트럼 행성에선 그리운 사람을 한평생 쓸 수 있는 이름이 내린다
/ 「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p.62)
지우개로 몸을 지웠다 하루를 지우는 일보다 나를 지우는 일이 편했다
/ 「왔다 갔다」 (p.78)
사실 삶 자체가 그런 것 아니겠어요 누군가가 그려낸 한 폭짜리 인생 같은 것 말예요 그 끝에서 당신은 완성될까요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을 구기는 오후」 (p.106)
여긴 여름이야
거긴 어때?
여름을 잘 보내란 말은 이 여름
더이상 만나주지 않겠다는 말
/ 「안녕, 낯선 사람」 (p.110)
생각보다 뭉툭한
당신의 손가락을 보는 일에 밤을 다 써버리고
언젠가 저 손이 꼭 잡고 싶어
죽을 것 같던 시간이 도형에 갇힌다
/ 「포말하우트의 여름」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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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
1부 |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구름 포비아에 감염된 태양과 잠들지 않는 티볼리 공원, 그러나 하나 빼고 완벽한 목마
2부 | 천진하게 떨어지는 아이는 무수한 천체가 되지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열대야
7월 28일
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3부 | 지금 내가 그린 우리 가족처럼 말이야
친애하는 언니
왔다 갔다
4부 | 애인이 없어야 애인을 그리워할 수 있다
평행 세계
아무나씨에게 인사
면접의 진화
기형적으로 순환하는 너와 나의 설원, 그리고 파라다이스 혹은 샴쌍둥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을 구기는 오후
안녕, 낯선 사람
포말하우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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