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6 읽고 쓰기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부 -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첫 글 '굿바이, 박정희 - 탄핵과 그 이후'를 읽었다. 꼭 오늘 읽고 싶었던 글이었다.
오늘날 '미성숙한'(즉, 계몽되지 못한) 인간이라 불리는 이들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성숙한(계몽된) 인간이 갖고 있는 감수성이란, '젠더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이라는 개념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이해하고 행여 그것에 대한 잘못된 지식, 믿음(즉 '무지'와 '미신')이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거나 비판할 줄 아는 민감함을 의미한다. 이런 감수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품고 있다는 뜻이다. (188-189쪽)
정치가 영혼을 구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비통한 자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의 일이어야 한다. (190쪽)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과 그를 외면하지 못하는 결벽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타인에게 열려 있는 통각(痛覺)이 마비돼있거나 미발달 된 이들이 하는 정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191쪽)
벌써 세월호 사건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참 많은 이들이 아팠고, 또 지금도 아파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그 5년 동안 보고 싶지 않았던 사회의 추악한 면을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세월호 참사 브리핑 중 웃음을 터트린 대변인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단식 농성을 조롱하는 듯 바로 옆에서 폭식 투쟁을 벌였던 이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세월호 유족들을 향한 막말을 내뱉은 국회의원들까지. 우리는 지성이 아닌 '감수성이 결여된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머리가 아무리 좋고 똑똑하면 무엇을 할까, 감수성이 없는 자들은 자신의 말로 타인의 마음을 찔러 엄청난 상처를 만들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픈 고통을 준다. 아무리 인간이 직접 겪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최소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상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크게 절감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건 지금은 탄핵되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에 대해서는 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전 대통령이라는 칭호도 아깝다.
'정치가 영혼을 구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비통한 자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의 일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마음이 더욱 아팠던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유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될 수 있기를 바랐고, 또 더 이상 생존자가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온전하게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작 국가적 재난 앞에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듬고 사고를 수습하고, 사고의 진상을 규명해야 할 총책임자가 그 책임을 져버렸다. 아마 많은 이들이 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 즉 저자의 표현으로 '미발달 된 이'들이 하는 정치는 정말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공감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믿고 국가의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과 그를 외면하지 못하는 결벽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해 상처와 고통을 안겨줄 수 있음을 인지하고,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슬픔, 고통, 분노 등을 공부해야 한다. 특히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위한다는 정치가 사람을 위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인가.
슬픔을 공부하는 것이 슬프다고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공부이기 때문에 절대로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겐 타인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