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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Sep 25. 2023

잡동산이 다시 읽기

잡동산이챌린지 again - week 8 (230918~230924)


* 작성 글 내용은 인스타그램 @n0.date님의 활동지 제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글은 평어로 쓰였습니다.





Day 50 | 9/18


* 꼼꼼히 읽기:


| 馨冽(형렬) : 맑은 향기. 馨은 꽃다울 ‘형’으로 향기. 冽은 맑을 ‘렬(열)’

| 淡久(담구) : 맑고 오래감. 淡은 맑을 ‘담’.


* 오늘의 문장: 그처럼 인생에서 젊은 나이에 성취를 이루려고 조급하게 처신할 일도 아니고, 잘 풀린다고 으스댈 일도 아니다. 담담하더라도 오래가고, 더디더라도 끝내 이루는 성취가 더 소중하다. (p.201)


* 한 걸음 더:


1. 마지막 채근담 글이네! 잡동산이챌린지가 끝나가는 걸 실감하게 된다 ㅠㅠ 나는 이 글 읽으면서 ‘늦게 꽃핀 대가들‘이 생각나더라 ㅎㅎ


농염하게 피었다가 일찍 사그라드는 꽃은

담담하게 오래가는 나무에 미치지 못하고

일찍 자란 과일은 늦게 익은 열매만 같지 못하다. (p.201)


위에 적은 문장보다 오늘의 문장으로 꼽은 문장이 훨씬 좋아. 꽃도 자신의 속도로 피었다 사그라드는 거고, 일찍 자란 과일도 자신의 속도대로 열린 건데 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나 싶어.


사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대로 살면 되는데, 어쩔 수 없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보단 타인의 속도를 자꾸만 신경 쓰게 되고, 타인의 성취와 나의 성취를 비교해 보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 특히 우리나라만큼 나이에 따라서 밟아야 하는 단계가 정해져 있는 듯한 나라에서는 더더욱 남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감에 크게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하지만 작든 크든 내가 이뤄낸 성취를 내가 제일 잘 알아주고, 소중히 여기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그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잖아. 조금 더디단 생각이 들어도 담담하고 묵묵하게 나의 길을 믿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Day 51 | 9/19


* 꼼꼼히 읽기:


| 여전히 최진영의 인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이다. 늘 아쉽고 불안한 현재와 그로 인해 잡히지 않고 멀기만 한 미래. 그러나 최진영의 인물들은 두려움을 통과해 나아간다.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 지만 아슬아슬하게, 끝일 것 같지만 계속된다는 마음으로.


| 「돌담」의 주인공 ‘나’가 다니는 회사도 한 사람의 미래와 현재를 갉아먹는다. (...) ‘나’는 그들에게 항의하고 그들의 방식을 거부한다. 협박당하고 일상이 무너질까 두렵지만 다시 찾은 고향 동네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를 생각한다. 생존을 위한 나쁜 관성이 쉽게 존엄을 해치는 날들에도, 소중한 것이 뭔지 모른 채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단단히 쌓는 인물들이 『겨울방학』에 있다.


* 오늘의 문장: 그렇게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부당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월급이 통장에 찍힐 때마다, 사장이 돌돌 만 신문으로 내 정수리를 치며 고함칠 때마다, 죄짓듯 휴가를 쓰고 명절 직원 선물로 남성 양말 세트를 받을 때마다 나는 돌담을 쌓듯 모욕감을 쌓아 왔다. 돌아보기 싫은 감정이라 대충 쌓아 뒀던 그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p.222)


* 한 걸음 더:


1. ‘이상할 것도 없이 그게 그냥 나다. 나는 자주 그런 식으로 걸었다. 길은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이 없으니까, 지쳐 화날 때까지 걷다가 포기하는 사람.’ (p.211)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화자는 자신을 꿋꿋하게 묵묵하게 뭔가를 해보다가 결국엔 포기해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나는 화자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정말 포기하는 사람이었다면, 신고도 하지 않고 그냥 체념하듯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화자는 자신이 도망쳤다고, 포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퇴사하고 신고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거.. 꼭 말해주고 싶었어. 나였다면 퇴사 후 아무 문제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을 닫고 죄책감만 느꼈을 것 같아.


2. 더 나빠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자신이 형편없는 어른이 되었다는 화자. 하지만 정말 형편없는 인간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인간이 아닐까? 그리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 아닐까? 나는 화자가 형편없는 어른이 아니기에 더 나빠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드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분명히 화자는 자신의 ‘다음 정거장’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왜 어린 시절 장미와의 추억과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교차해서 보여줬을까 했는데 달라진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아. 자신의 잘못으로 장미가 혼이 났음에도 결국 자신의 잘못을 말하지 못한 화자는, 회사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망설였지만 결국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잖아. 잘못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된 화자.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어릴 적 살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리고 자꾸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자신에서 한 발짝 나아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단 생각을 했어. 그게 바로 ‘다음 정거장’으로 가는 것 아닐까?


3. 나는 허전할 때 책을 더 찾는 것 같아. 예전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택했었는데, 결국 나의 허전함과 공허함을 제대로 돌보고 달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더라고.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나의 감정을 다스릴 방법을 찾아보면 마음이 나아지더라.




Day 52 | 9/20


* 오늘의 문장: (…) 뭐라고 해야 될까, 어떻게 썼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시간은 지났고 이전에 어떻게 썼는지를 계속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건 몸의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몸이 되면 하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는 거 같아요. (p.230)


* 한 걸음 더:


1. 난 이런 인터뷰 굉장히 좋아해. 뭔가 틀에 박히고 정해진 대답만 나오는 인터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를 그대로 실은 듯한 인터뷰. 특히 인터뷰어의 말을 많이 살려서 대화의 느낌이 그대로 실린 점이 정말 좋았어. 사실 나는 박솔뫼 작가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글을 읽기 전에 이 인터뷰가 나에게도 재미있을까 걱정을 좀 했는데 의외로 작가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고 작가님의 글이 궁금해졌어.


2. 이건 처음 읽을 때도 다시 읽어도 좋았던 문장이라서 예전에 쓴 글에서 가져와 봤어.


| 그런데 이렇거나 저렇거나 자기 대로 사는 거고, 혹시나 어떤 결단의 순간이 오게 되면 또 그때에 맞춰서 잘 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너무 후회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p.234)


| 계속 뭔가를 잘 해 나가는 상태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재미를 느끼면서 하는 것. 여러 시도들을 해 보고 싶고 두드러지게 표시는 안 나지만 그때그때 해 보고 싶은 시도들을 조금씩은 하게 되잖아요. (p.242)


사실 어떤 ’결단의 순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고, 잘못된 선택을 할까 너무 두려워지는데 너무 후회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그때에 맞춰서 잘해 나가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이 부담을 좀 내려놓고 나의 방식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아 좋더라고.


그리고 그때그때 해 보고 싶은 시도들을 재미를 느끼며 해보는 것. 이것도 내 삶에 있어서 갖추고 싶은 태도여서 마음에 남았어.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지만, 꾸준히, 재미있게 하는 사람,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




Day 53 | 9/21


* 꼼꼼히 읽기:


| 이십 대 때는 굉장히 먼 곳을 바라보며 산 것 같아요. 십 년 뒤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이십 년 뒤의 나는 어떤 곳에서 살고 있을지, 그런 거요. 혹은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하는 것에도 시간을 많이 썼죠. 그래선지 미리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이 많았어요. 딱 삼십 대가 되면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요즘은 정말 가까운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오늘 뭐 할지, 뭘 먹을지, 몇 시에 잠들지, 그런 것들을 주로 생각해요.


* 오늘의 문장: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으면서 나는 바다에 떠 있는 서퍼들을 보았다. 모든 게 파도를 잡는 이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가 붙는 이 한순간을 위한 것이구나. (p.246)


* 한 걸음 더:


1. 신기하다. 이 글을 처음 읽은 건 초여름이었는데, 벌써 10월을 앞두고 있고 한 해는 두 달 남았다니! 나에게 9월과 10월은 항상 날씨가 참 좋고 하늘이 참 아름답고 낙엽이 아름답고 걷기 좋은 계절이야. 나는 꽃 구경하는 걸 정말 좋아해서 봄을 제일 좋아하는데, 가을도 요즘 정말 좋더라. 특히 혼자 여유롭게 즐기는 가을! 난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넘넘 좋고 또 즐거워서 이렇게 변한 내가 신기해 ㅋㅋㅋㅋ 원래는 완전 외향형이었는데 코로나로 많이 바뀌었다.. 가을 날씨가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어! 겨울 천천히 오길...


2. 나는 사실 수영을 배우기 전까지는 물을 굉장히 무서워하던 아이였는데, 수영을 배우고 나서 물을 사랑하게 되었어. 여러 이유들로 수영을 하지 못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물을 유영하던 순간과 물속의 고요함이 그립더라고. 그래서 서핑은 또 어떤 영역일지 궁금했는데, 은근 쫄보인 나라 아직 시도는 해보지 못했어. 어쩌다 보니 최근에는 다 겨울에 바다에 가기도 했었고.


이 글을 읽기 전에 서핑을 우리 삶과 닮았다고 한 콘텐츠가 두 개 떠오르더라고.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공유할게. 하나는 사설, 하나는 도쿄올림픽 서핑 종목 결승 경기 영상이야.


[서핑은 삶을 닮았다. 파도를 잡아타는 그 순간을 위해 보드를 이고 지고 바다에 나가고, 파도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팔을 저어 저 멀리 파도가 있는 곳까지 가고, 나의 파도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파도가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수십 개의 파도를 놓치다 보면 결국엔 나에게 잡혀주는 파도가 하나쯤은 있고….]



[똑같은 파도는 절대 오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것이 인생과 닮았다.]


서핑과 삶이 닮아있다고 말하는 건 같았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게 너무 좋아서 기록해 뒀었어.


오늘 읽은 글에서 바다 위에서 내 힘으로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서핑보드 하나에 의지해서 외롭고 먹먹하게 둥둥 떠 있는 화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어쩐지 우리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의지대로, 내 마음대로 와주지 않는 파도, 내 힘으로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서핑보드, 그리고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는 미래 같은 바다까지. 하지만 삶이 항상 외롭고 힘들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아니잖아. 종종 우리에겐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고, 작은 기쁨을 누리게 되는 시간도 있어. 서핑에서 제대로 파도를 타는 순간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파도를 타고, 또다시 바닷물로 뛰어들어 다음 파도를 기다리는 것, 그게 인생 아닐까. 그래서 화자도 웃음을 터트린 거 아닐까 싶어. 그 소중한 한 순간, 한 순간을 위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Day 54 | 9/22


* 꼼꼼히 읽기:


| 21살에 등단하여 33살에 첫 시집을 냈다. 12년이 걸렸다. 그동안 하나의 세계를 잠시 대체할 수 있는, 종국엔 산산이 부서지지만 그것으로 쓸모를 얻는 월드를 구상했다. 시가 모여 한 권의 집합이 되는 것보단 한 권의 조합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선언이다. 먼저 선의 선언이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는다. 먼저 불가능을 말할 때 그것에 부서질 수 있는 물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이 월드는 결국 불가능할 것이고, 해체될 것이며, 잠깐이라도 기거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을 얻게 될 것이지만, 나는 이 월드를 잘 부숴볼 작정이다.


| 자서 “지금까지는 세계 여기부터는 월드”는 그런 선언이며, 첫 장의 해시태그 정언명령 #forgettheworld는 얻는 것과 잊는 것은 동시에 수행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엔 책 이상의 것이 없다. 미지의 영역도 없으며 새로움은 모두 과거와 기억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새로운가? 세계보다 더 번성한 월드가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두 약한 신이다. 믿는 만큼, 믿음 받는다.


* 오늘의 문장:


네가 별을 보는 동안

별이 그 자리에 있듯이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이 사랑을 멈출 수가 없구나. (p.250-251)


* 한 걸음 더:


1. 다시 읽어도 이 시가 너무 좋아서 이 시집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 화자는 ‘너’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네가 별을 보는 동안 / 별이 그 자리에 있듯이’ 라며 자신의 사랑이 자연의 법칙처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걸까. 화자의 이런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받는 대상에 나를 대입해서 읽었더니 감동이 막 차오르는 기분이었어.


모든 일에 때가 있고, 그때가 오면 ‘너’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니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도, 불안을 애완하고 싶다면 네 손으로 불안에게 먹이를 주라는 말도, 언제나 너부터 생각하라는 말도, 최선을 다하면 두 배로 행복을 누린다는 말도 모두 모두 너무 좋아... 이 시 꼭 필사해야겠다. 마지막 주 시가 이 시라서 행복해 ㅎㅎ




Day 55 | 9/23


* 꼼꼼히 읽기:


| 평생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다자이 오사무가 고등학교 교사였던 여성과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했던 시기가 있다고 합니다. 「달려라 메로스」는 그 무렵 쓴 소설이라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밝고 긍정적이 인간관, 세계관이 느껴집니다. 동화처럼 읽히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한 이 감동적인 소설은 고대 그리스의 다몬과 핀티아스 이야기가 원전인데 다자이 오사무는 그 이야기와 그것을 변주한 실러의 작품에서 다시 모티프를 빌려 왔습니다. 절로 가슴 뜨거워지는 두 남자의 이야기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범상치 않은 필력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원전 | 핀티아스 / 다몬(인질) / 디오니시우스 왕

| '만약 핀티아스가 제시간 안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거야.'

마침내 그날이 왔고 처형의 시간이 됐습니다. 다몬은 죽을 각오가 돼 있었습니다. 친구에 대한 그의 믿음은 평소와 다름없이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토록 믿는 친구를 위해 고통받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실러, 「인질」 | 다몬 / 피티아스(인질) / 디오니시오스 왕


| 하지만 강물의 분노는 더욱더 격렬해지고,

파도는 계속해서 다른 파도에 부서지며

시간은 속절없이 자꾸만 흘러간다.

바로 그 순간 불안이 엄습하자 그는 용기를 내어

거센 파도가 출렁이는 강물 속으로 몸을 던져,

힘센 두 팔로 강물을 가른다.

그러자 마침내 신이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 메로스 / 세리눈티우스 / 디오니스 왕


* 오늘의 문장: 일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조용히 기대해 주는 사람이 있어. 난, 신뢰받고 있어. 내 목숨 따윈, 문제가 아니야. 죽음으로써 사죄를, 어쩌고 하며 마음 착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나는, 신뢰에 보답해야만 해. 지금은 오로지 이 한 가지. 달려라! 메로스. (p.260-261)


* 한 걸음 더:


1. 쉼표가 너무 많아서 읽는 나도 메로스와 함께 달려 숨이 차는 듯한 기분이 드는 글이었어. ㅋㅋ 처음에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왜 남의 목숨을 자기 멋대로 걸고 가는지 좀 화가 났는데, 둘의 우정은 정말 엄청나게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던 것 같아. 두 사람 다 중간에 잠시 위기를 겪긴 하지만 결국 죽을 것을 알면서도 죽기 위해 달리는 메로스와, 끝까지 친구를 믿은 세리눈티우스는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고,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게 되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어. 마지막에 서로의 뺨을 한 대씩 치며 화해하는 장면도 뭔가 감동이었어. 의심과 믿음, 약속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었네. 끝이 비극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는 건 언제나 아픈 일이니까. 나였다면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가족이 아닌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둘 다 대단하고, 어쨌든 두 사람 모두를 살려준 왕도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2. 원전-실러의 작품-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순으로 읽었는데, 「달려라 메로스」가 가장 좋았어. 이야기가 제일 구체화된 것 같기도 하고, 또 마지막에 뺨을 때리는 걸로 서로를 용서하는 것도 뭔가 웃긴 데 감동적이었어 ㅋㅋ 그래도 왕한테 인질로 친구를 잡으라고 먼저 말하고 친구한테 후통보한 건 용서가 어려울 듯.... 원전에서 다몬이 자기가 먼저 인질이 되겠다 한 부분이 진짜 대단한 것 같아.




Day 56 | 9/24


* 꼼꼼히 읽기:


| 세네카는 고통을 축소하지 않고 직시한다. 그의 문장은 공허한 위로들의 모음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로부터 흘러나온 구체적인 조언들이다.

세네카가 제시하는 슬픔의 극복 방법은 20세기 프로이트가 제시했던 실천에 철학적 근거가 되며, 21세기 뇌과학자가 밝힌 우리의 정신에 대해 이미 철학적으로 성찰한 결과들이다. 『철학자의 위로』는 트라우마와 불안으로 고통받는 현대인에게 놀라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 슬픔은 “스스로 새로워져 나날이 강해지고, 이제는 그 오래된 시간이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 그만두는 것이 추하다 여겨질 지경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세네카는 꽃길만 걸으라는 식의 공허한 위로를 남발하지 않는다. 단순히 ‘달래려고’ 하거나 결코 불행을 ‘축소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인간이 오랫동안 어떤 감정에 몰입해 있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난 후에도 (그것이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자꾸 그 익숙한 감정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미 고대 로마에서 세네카는 슬픔도 “불행한 정신의 왜곡된 쾌락인 고통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지적해 낸다. 그래서 “고통으로 스스로를 소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결국 세네카는 스스로 크는 괴물처럼 오래되어 만성이 된 고통을 향해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 나는 듣기 좋은 말로도, 부드러운 방식으로도 그처럼 오랜 고통을 공격할 수가 없어요. 깨부수어야 합니다.
―세네카, 『철학자의 위로』에서


* 오늘의 문장: 각자가 모두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바깥으로부터 온 것들의 가치는 대단치 않으며, 어느 쪽으로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좋은 일이 생긴다 해서 현자를 들뜨게 하지 못하고, 나쁜 일이 생긴다 해도 현자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현자는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자기 안에 두고 스스로에게서 기쁨을 얻으려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p.269)


* 한 걸음 더:


1. 오히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형식이라서 더 효과적인 위로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그리고 읽는 독자들에게도 친근한 말투로 쉽게 조근조근 설명하는 느낌이라서 다시 읽으니까 나도 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고, ‘위안문학’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 뒤로 갈수록 쫌 짜증 나는 대목도 있어서 좋았던 기분이 조금 휘발되긴 했는데.... ㅎㅎ


결국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나의 내면과 영혼을 가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드네. 나의 안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글을 읽으며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아.


모든 것은 결국 변화하고 흘러가므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결국 만족과 행복은 나의 마음에 달렸고, 감정을 속이기보다는 감정을 극복하고, 또 감정에 충실할 것. 마지막 글로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길어서 읽는 데 좀 시간이 걸렸지만 마지막 주의 글들은 모두 힐링힐링한 분위기여서 참 좋았어 ㅎㅎ


2.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형식이라서 더 효과적인 위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감했어.


| 다음으로 제가 먼저 일어선다면 어머니를 더욱 잘 격려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게다가 제가 이겨 낸 운명이 가족 누군가를 해치지나 않을까 두려웠기에, 어떻게든 저는 제 부상을 손으로 누르면서 몸을 끌어 당신들의 상처를 감싸고자 했습니다. (p.266)


사실 어머니보다 더 괴로운 건 당연히 세네카 본인이겠지. 이런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고통이 무엇으로 인해 생기는지 밝히고, 그런 과정을 거쳐 고통을 극복하고 더 강해지고, 그렇게 일어선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면 어머니도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잘 극복해 내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추방당한 세네카 본인이 위로하는 게 백날 천날 타인에게 위로받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3. 세네카가 생각하는 추방 너무 깔끔하게 요약해 줘서 고마워 :>


1) 장소를 바꾸는 것

2)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함: 그것이 운명의 맘에 들었으니, 어떤 일의 운명도 늘 같은 곳에 머물러 있지 않음

3) 살아갈 자연은 같음

4) 마르켈루스의 사례: “브루투스가 덧붙이기를, 마르켈루스를 추방지에 버려두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방지로 떠나는 것 같았다더군요.”


세네카가 말하는 추방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저렇게 생각할 때 추방이 그렇게 나쁘다고만 느껴지지 않네.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기에 장소를 바꾸는 것은 큰일이 아니며, 살아갈 자연은 같다는 것. 사실 행복회로 풀가동해도 이렇게는 생각하지 못할 것 같은데 세네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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