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두 번째 시: 「이야기—원형」
유희경, 『겨울밤 토끼 걱정』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실. 슬슬 풀려가는 실. 친친 감기는 실. 무언가 허술해졌고 그만큼 불룩해지고 할머니의 노래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저 옮겨갈 뿐.
/ 「이야기—원형」 (p.11)
(23/10/20) 유희경 시인과 함께 하는 핀사단 필사 두 번째 시는 「이야기—원형」이다.
시를 필사하다 보니 아주 오래전, 할머니 곁에 누워 오래도록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실처럼, 실타래는 홀쭉해지고 뜨개질감은 불룩해지는 것처럼,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까무룩 잠에 들어버릴 때까지. 어쩌면 할머니는 따뜻한 손으로 잠이 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필사를 하며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은’ 화자처럼, 나도 어쩐지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던 목소리가 떠올랐고, 포근하지만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시집의 I 파트까지 읽었다. 특히 좋았던 시들의 구절을 몇 개 더 필사해 보았다. 모자를 찾아 헤매는 이, 대답하지 않는 이, 갑자기 책상이 되어버린 이, 장마를 함께 보낸 딱따구리를 떠나보낸 이, 간절하게 안을 들여다보는 이, 동전을 던지는 이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의 끝은 또 다른 시작. 어서 시집의 남은 시들을 읽고 싶다.
| 여전히 그치지 않는 창밖의 눈 거리에는 이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모자를 찾아 행복할까 행복할 수 있을까
/ 「이야기—겨울의 모자」 (p.15)
|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소리 마침내 떠나갈 때 떠나가는 것이 내는 기척
/ 「이야기—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p.31-32)
| 행 불행 기쁨 슬픔 기억 망각 삶 죽음 모든 일의 순서는 불현듯 찾아와 이어지지 않았다
/ 「이야기—떨어진 것은 동전이다 그것은 좁은 소리를 따라 굴러갔으며 동그랗고 부드럽게 흔들리다가 마침내 멈추었다」 (p.46)
(*현대문학 핀사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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