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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10. 2023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

읻다 시인선 (231207~231209)



*별점: 4.0

*한줄평: 지금은 떠나온 어린 시절 동화의 섬을 추억하며

*키워드: 동화 | 섬 | 바다 | 하늘 | 동물 | 전쟁 | 꿈 | 죽음 | 나무 | 알 | 달

*추천: 한 편의 아련한 동화 같은 시집이 궁금한 사람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
/ 「헨젤과 그레텔의 섬」 (p.21)


(23/12/10)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배경으로 한 산문시와 그에 이어진 여러 편의 연작 산문시들, 짧은 시들과 꿈의 시간을 재현한 시들(<한국어판 서문> 중)이 실린 시집이다.


 시인이 어린 날 겪은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 일찍 숨을 거둔 다섯 살 터울의 오빠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며 쓴 시집은 ‘어느 여름날, 기억의 바다 깊은 곳에서 돌연 작은 섬처럼 떠올랐다’는 시인의 말처럼 꿈에서 유영하는 듯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 이미지가 시집 곳곳에 등장해 시도 한 편의 그림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동화 같은 섬은 밤마다 바다로 잠기거나(「헨젤과 그레텔의 섬」) 섬의 마을을 하늘이 숨기기도 하고(「도라의 섬」), 생김새가 그날그날 바뀌기도(「코끼리 나무 섬에서」) 한다. 섬에 사는 코끼리, 거대한 새, 물고기, 나무들은 화자들의 꿈속으로 들어오기도, 그들을 꿈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섬과 바다, 하늘, 꿈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동화 같은 섬. 그러나 그 섬은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다. 발이 없는 코끼리(「나무의 집」)와 날개가 없는 새(「모아가 있던 하늘」), 쌓인 눈 밑에 죽어 있는 커다란 물빛 조개(「그림자」), 열이 나는 아픈 아이의 가슴속 작고 눈먼 물고기들(「물고기의 밤」). 생생하면서도 섬뜩한 이미지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물고기나 사람이나 언젠가 치유될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어른들의 비밀은 거기 있었다’(「헨젤과 그레텔의 섬」)는 구절과 ‘우리도 언젠가는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거라고 오빠가 말했다’(「코끼리 나무 섬에서」)는 구절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상처와 아픔, 슬픔과 고통이 언젠가 위로받고 치유된다면 우리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 불리는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 시집이 내게 그런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단 것은 분명해 보인다.


———······———······———


| 오빠는 말했다   도라는 세계의 미숙한 원형이란다   코끼리에서 새에게로   새에서 도마뱀에게로   도마뱀에서 조개에게로   조개에서 인간에게로 끊임없이 전송되는 나선형 음계가 보인다   도라에게서 발신되어   무한히 이어지는 녹색 모음 계열은 다시금 도라의 귀로 되돌아가고   도라는 듣고 있다   우리 안의 ‘ㅏ’를 수런거리게 하고   표표히 떠도는 우리의 ‘ㅣ’를 끌어들여   느릿한 모음의 리듬이 구형의 하늘을 맴도는 것이다

/ 「도라의 섬」 (p.23, 25)


| 깊은 어둠 아래서 지금도 우리를 올려다보는 눈이 없는 악어   우리를 뒤쫓는 발이 없는 코끼리   우리를 부르며 떨어져 내리는 새   우리의 손이 우리도 모르게 그려나간 그 생명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무의 집 내부는 그들의 가쁜 숨소리로 가득하다   그들을 빛 속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단 한 줄의 선   단 하나의 점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그만한 시간이 없다

/ 「나무의 집」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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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


I

 「헨젤과 그레텔의 섬」

 「도라의 섬」

 「모아가 있던 하늘」

 「코끼리 나무 섬에서」

 「나무의 집」


II

 「그림자 — 클레의 ‘겨울 이미지’에서」

 「물고기의 밤」

 「회색빛 나무」


III

 「봄의 모자이크」

 「알」

 「분주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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