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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11. 2023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시인선 202 (231127~231210)



*별점: 4.5

*한줄평: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웃어보자고 다독여주는

*키워드: 여름 | 상큼 | 씁쓸 | 추억 | 현실 | 내일 | 희망

*추천: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지는 시가 궁금한 사람


| 시인의 말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


2023년 10월

고선경


———······———······———


(23/12/10) 우필사 이벤트로 받은 시인선 다섯 권 중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를 가장 먼저 꺼내 들었다. 우연히 보게 된 시 한 편에 완전 반해서였다.


 시인은 현실적인 문제들(집 보증금이나 월세, 빚 등의 돈 문제, 고용과 노동 등)로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지려 하면 ‘그런데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쩌지? / 괜찮아, 너만 못 가는 거 아니야’(「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p.52)라든가 ‘여기서 팁 하나 / 장례식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 1위는 부활이라 한다 / 죽었다가 살아나면 모두가 무안해지니까 // 다시 죽어! / 네! (철퍼덕)’(「땅콩다운 땅콩」, p.58) 같은 유쾌하고 웃긴 농담으로 쉴 새 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이런 재미가 극대화되는 시가 「스트릿 문학 파이터」였다.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재능’(「샤워젤과 소다수」)을 가졌고, ‘희망이 심장의 무게 추라는 것을 기억’(「Come Back Home」)하고 있으며,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사랑도 잘하고 싶은’(「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화자. 어린이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어른이 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화자가 어쩐지 나 같다는 생각으로 시집을 읽었다. 가끔은 외롭고 슬프기도 하지만,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웃으며 내일로 가보자고 다독여주는 듯한 화자. 그런 화자에게 많은 힘을 받았다.


 해설 ‘망할 세상에서 농담하기—스트릿 문학 파이터 분투기’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상수는 고선경을 ‘불가능한 사랑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상상하고 망할 놈의 세상과 싸우는 스트릿 문학 파이터’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라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지배하는, 체념과 무기력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농담을 던지고 깔깔 웃는 방식으로 아무도 지지 않는 게임을 하려는 사람, 설사 지더라도 웃으며 다음으로 넘어가려 애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쓰러진 풍경마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죽을힘으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고 거짓말하면서도 살아남아 뭔가가 되는 사람. 이런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학동네 우필사 특별반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빗방울은 창문을 깨뜨릴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이 빗방울을 깨뜨리겠지만

   소녀는 희망이 심장의 무게 추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 「Come Back Home」 (p.47)


|  그래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제정신일 리가 없다! 친절한 태도로 거절당한 날에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운다 땅콩을 안주 삼아서 운다 나는 왜 이렇게 벗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걸까 흑흑거리다가 껴안을 게 없어서 버섯 모양 전등을 껴안고 아 뜨거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친구들은 내게 어른스럽게 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는 말은 사랑스러운 사랑이라는 말만큼 이상하다

/ 「땅콩다운 땅콩」 (p.57)


|  우리가 궁금한 건 더 재미있게 놀 방법이었는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살 걱정 죽을 걱정을 하라고 한다

  별걱정을

  다

/ 「우주 달팽이 정거장」 (p.84)


 |  왜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하지 죽을힘으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


   거짓말


   나는 살아남아

   시인이 됐다

   처음으로

   뭔가가 되어봤다

/ 「숨어 듣는 명곡」 (p.154-155)


———······———······———


*좋았던 시


1부 | 여름 오후의 슬러시

 「샤워젤과 소다수」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버려주시면 됩니다」

 「오! 라일락」

 「내가 가장 귀여웠을 때 나는 땅콩이 없는 자유시간을 먹고 싶었다」

 「밝은 산책」

 「Come Back Home」


2부 |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땅콩다운 땅콩」

 「스트릿 문학 파이터」

 「살아남아라! 개복치—몰라 몰라 내가 죽은 진짜 이유를」

 「사이버 시옷시옷」

 「긴 주말」


3부 | 진짜로 끝나버렸어 여름!

 「우주 달팽이 정거장」

 「메론 껍질에 남은 향기와 과육을 갉아먹는 벌레들」

 「부루마불」

 「메론소다와 나폴리탄」

 「사랑의 달인」


4부 |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야

 「외계인이 초능력을 쓸 거라는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

 「시집 코너」

 「세기말을 떠나온 신인류는 종말을 아꼈다」

 「숨어 듣는 명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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