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2 읽고 쓰기 (정은귀, 바람이 부는 시간)
정은귀 선생님의 <<바람이 부는 시간>>의 2부를 '살자, 산산조각으로'라는 글과 함께 마쳤다. 글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오늘은 이 글을 읽고 혼자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 <산산조각> 중
(...) 가장 정성으로 다독여야 하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146쪽)
우리 사는 일이 어쩌면 하나도 다치지 않고 조각나지 않으려고 평생 안간힘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인 것만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에 들어가면 또 직장인으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선생은 선생의 몫으로, 다들 온전히, 다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한다. 조각나지 않으려 부서지지 않으려 애쓴다. (147-148쪽)
어느덧 아무리 간절히 소원해도 바라는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이 세상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세상을 두려움 없이 건너는 법은 온전함과 완전함을 목표로 사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 온전치 않음, 산산조각을 어떻게든 안고 그 부서진 힘으로 사는 것이다. (149쪽)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우리들. 부서지지 않는다는 건 다른 의미로 무너지지 않는다, 상처 받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부서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도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우리를 무너뜨리고, 상처 입히고, 또 포기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고, 또 그런 상황이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기 위한 노력'은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의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라는 위로가 큰 울림을 준다. 산산조각이 나버린 나도 결국 나다. 조각조각 부서졌을 지라도, 다시는 하나의 완전한 조각으로 합칠 수 없을지라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결국은 나다. 그것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지 않아도, 그 조각 하나하나는 결국 나를 이루는 것들이고, 나는 그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또 완벽해질 수도 없다. 우리는 산산조각 나길 원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온전한 하나의 조각이 아니라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내가 아무리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상처 받지 않는, 무너지지 않는 완전하고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은 아니다. 내가 의도했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을 어떤 상황 때문에 나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 질 수도 있다. 그래서 '부서지지 않기 위해' 애써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나를 지금보다 더 산산조각 낸다고 해도 그 조각들이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나일 수 있다. 그래서 '온전함과 완전함을 목표로 사는 게 아니라 산산조각을 어떻게든 안고 그 부서진 힘으로 사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산산조각이 난 나에게는 상처도, 균열도, 빛 바랜 흔적도 모두 남아있겠지만, 그 상처 또한 나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끌어안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 상처를 애써 지우고 없애려 하는 것은 나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는 곧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나를 더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산산조각을 잘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고, 그런 다음에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면 된다.
우리는 가끔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할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우리는 외부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모질게 굴어 깊은 상흔을 남긴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나 자신에게 입힌 상처가 더 오래가고, 더 아프다. 그러므로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임을, 식물을 돌보는 것처럼 자주 들여다보고 아끼고 사랑해줘야 하는 존재가 바로 나 자신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의 산산조각들을 끌어모아 다독이고 아껴주며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