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4 읽고 쓰기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를 완독했다. 몇 가지 이유로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전에 읽은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를 떠난 후의 이야기까지 알 수 있어서 결말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다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가 섬에서 목숨을 부지한 것이 마치 일부러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기 위해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라도 든 듯 얼굴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고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348쪽)
가엾은 선장의 정직함과 친절함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나를 위해 해준 일들, 즉 나를 바다에서 구해 준 일, 모든 면에서 내게 너무나도 너그럽게 대해 준 일, 특히 지금도 나를 너무나 진심 어리게 친구로 대하는 일 등을 생각하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379쪽)
그리고 비록 시작은 어리석었지만 그 끝은, 내 인생 기간 어느 시점에서건 내가 털끝만큼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행복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결말을 맺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었다. (408쪽)
<<로빈슨 크루소>>를 다 읽은 후 종교적인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같은 이유로 아직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완독하지 못했는데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사실 이렇게 신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신의 자비에 감사하고, 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그래도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참고 읽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무인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우연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은 그가 홀로 살아남은 일부터 무인도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된 일까지, 신을 완벽하게 섬기기 시작한 후에는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여긴다.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견딜 수 없을 때 종교에 많이 의존하게 된다고 하던데, 로빈슨 크루소도 무인도에 떨어지기 전까지 멀리 했던 종교를 자신이 죽을 만큼 아프고 난 이후로 감사히 받아들인다. 새삼 그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혼자 살아남아 무인도에 떨어졌다면 나는 믿지도 않는 온갖 신을 원망하고 저주했을 것이다.
그가 무려 3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로 감격적이었다. 이제는 노쇠해 은퇴한 선장과, 브라질에서 만난 그의 동업자, 그리고 한 부인까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갚는 로빈슨 크루소는 참 멋졌다. 하지만 프라이데이의 이야기가 무인도를 떠난 후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다. 사실 그를 친구이자 동료보다 자신이 지배하는 하인으로 다루는 모습도 아쉬웠으나 그 당시의 영국을 생각했을 때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책 말미에 역자 해설에서도 제임스 조이스가 지적한 <<로빈슨 크루소>>의 제국주의적, 식민지주의적 면모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내가 읽으면서 불편했던 부분들이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그는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었던 무인도 탈출의 소망을 이루었다. ‘내가 털끝만큼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행복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결말을 맺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라는 그의 표현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적절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소설의 거의 끝 부분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또 다른 모험을 예고한다. 실제로 속편이 두 권 정도 더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로빈슨 크루소를 이제 보내주려 한다. 나에게 무섭고 험난한 모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이제 안녕, 로빈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