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문화사 (e-book, 240203~240204)
* 별점: 4.0
* 한줄평: 이래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 키워드: 스릴러 | 사이코패스 | 범죄소설 | 진실 | 거짓 | 애증 | 연기 | 살인 | 죄
* 추천: ‘리플리 증후군’의 리플리가 궁금한 사람
| 첫 문장: 톰은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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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 5권 중 첫 번째 책인 『재능 있는 리플리』를 읽었다. 출판사 소개에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라고 되어 있어서 토마스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한니발 렉터 같은 캐릭터를 기대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 디키 그린리프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톰 리플리. 디키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에게 우정, 애정, 부러움, 질투, 증오, 고통, 실망, 슬픔, 절망 등 온갖 감정을 느끼다가 마침내는 그를 죽이고 디키 그린리프가 되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 톰 리플리의 살인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모든 일의 시작일 뿐이다. 그가 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른 거짓말을 낳고, 얼마나 치열하게 이야기를 지어냈던지 그가 지어낸 이야기는 빈틈없이 훌륭해 자기 자신도 진짜라고 믿을 정도다. 디키 그린리프라는 역할을 소화하는 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는 톰 리플리라는 역할을 미워하고 끔찍하게 싫어해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지경이다.
* 자신의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필연적으로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 행동을 하길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톰은 가슴이 불타올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일을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정말 끔찍한 놈이다. 사실 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구역질이 절로 나온다.
* 배우가 되고 싶었던 톰 리플리. 만약 그가 꿈꿨던 대로 배우가 되어 성공했다면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사이코패스 본능은 내재되어 있으므로 어찌 됐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IF 세계의 톰 리플리가 어땠을 지도 궁금해졌다.
* 불쌍한 디키 그린리프와 아들을 잃은 그린리프 부부. 다른 책에 그들의 이야기가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영원히 진실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음 책도 어서 읽어봐야겠다. [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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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톰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의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머리보다 가슴속에 있는 무언가가 먼저 냄새를 맡고 그 기회를 덥석 문 것이다. 현재 무직. 톰은 어쨌든 이곳 뉴욕을 조만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떠나고 싶었다. “휴가를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톰은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신중히 대답을 건넸다. 그를 옥죄고 있는 수천 개의 걸림돌을 살피는 척하면서.
| 디키의 다리와 그 옆에 올려진 자기 다리를 보자 톰은 거울을 보는 듯했다. 키도 몸무게도 둘이 똑같았다. 디키가 약간 더 무거울까? 목욕 가운이며 양말도 그렇고, 아마 셔츠도 같은 사이즈를 입으면 될 것 같았다.
| 톰은 다시 토머스 리플리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게 싫었다. 묵은 습관을 다시 몸에 들이는 것도 역겨웠고, 남들이 깔보는 것도 메스꺼웠고, 그가 익살꾼 노릇을 할 때만 빼고 따분한 인간 취급을 받는 것도 불쾌했다. 그때그때 잠시 남들을 웃기는 재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한 자기 자신도 미웠다. 자신으로 되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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