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3 읽고 쓰기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오늘은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34쪽부터 145쪽까지 읽었다. 오늘 읽은 부분 중에서는 '캐릭터 박물관 특실편 - 알베르 카뮈 <<이방인>>'과 '삶과의 게임에서 지다 - 이상 <<이상 소설 전집>>'의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캐릭터 박물관 특실편'에서는 이 구절을 곱씹어 읽었다.
즉, 인물은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139쪽)
또, '삶과의 게임에서 지다'에서는 다음 구절이 마음을 울렸다.
삶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 (143쪽)
그러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추구가 좌절됐다 하더라도 그 목표만큼은 '현대적'이라면 그 패배까지도 현대적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목표이며 삶은 예술작품이 아닌 한에서(이상의 표현대로라면 "생활"인 한에서) 오히려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이상을 읽는다. (145쪽)
우리 개개인은 모두 삶이라는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고,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 자신이 만들어나가야 할 몫이고, 그 이야기가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바로 지금, 오늘, 현재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의 삶은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삶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으며 월트 휘트먼의 'O Me! O Life!' 시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Answer. / That you are here—that life exists and identity, / That the powerful play goes on, and you may contribute a verse.
단지 당신이 여기에 있고, 삶이, 그리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엄청난 연극(이 세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 powerful을 내 방식으로 이해해보려 했다)이 계속되고, 당신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하는 화자. 삶이 예술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말보다, '이미 모두의 삶은 하나의 작품이다'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자체가 이미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 삶 그 자체인데, 그것이 작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여정 님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자신은 노을이 지는 게 싫다고, 노을이 지면 꼭 울어야 될 것 같다며, 노을 질 때 굉장히 슬픈데,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안 그렇지, 한 번 가면 다시 안 오지."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나는 해가 질 때 아름다운 빛깔로 물드는 하늘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노을을 보고 슬프다는 감정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안 그렇지."라는 구절은 마음에 훅 와서 박혔다.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의 이야기가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각 개인이 딱 한 권씩만 받아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만 끝이 나면 다시는 펼쳐 볼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책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지 않을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