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람 되기

2019.04.05 읽고 쓰기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bookyoulovearchive


오늘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부 읽기를 마쳤다. ‘소설의 인식적 가치 – 은희경 <<태연한 인생>>’, ‘왜 소설을 읽는가 – 김숨, 윤이형, 백영옥’, 그리고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세 편의 글을 읽었다. 그중 두 번째와 세 번째 글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자 한다.


우선 ‘왜 소설을 읽는가’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 로버트 펜 워런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1962)라는 글에서 이런 대답을 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173쪽)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는 글 전체를 통째로 옮기고 싶을 정도로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다음 구절들이 마음에 자리했다.


먼저 ‘쓰기’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 221~222쪽) (174-175쪽)
그리고 ‘읽기’에 대해. 그는 ‘무용한 독서’의 소중함을 말하는 와중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우리가 보낸 순간·시>>, 287쪽)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후배로서 선배의 결론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읽고 쓰는 일만으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175쪽)
“(…)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176쪽)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믿음조차 없으면 가망 없을 것이다. 문학은 그 믿음의 지원군이다. 피 흘리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피 흘리지 않고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176-177쪽)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처럼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가 이 글에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평소 '좋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타인에게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고,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하고, 인간관계에 참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간관계에 신경 쓸 틈 없이 자신과의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 했던 재수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많이 변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절대적인 '좋음'은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좋은 사람 되기'를 포기했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보다 나의 감정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끼며 함께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제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며, 그런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변화가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워 겨우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들도 많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해보았을 때 지금의 나는 분명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문학을 공부하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런 세상을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훌륭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여러 분 만날 수 있었다. 문학 작품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공부하며 건강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도 여러 명 만났다.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이렇게 흘러 흘러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들 밑에서 멋진 친구들과 함께 4년 동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 문학은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내 안에서 끌어냈다. '피 흘리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문학을 통해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매일 글을 읽고 쓰기로 다짐했을 때 좋은 글, 잘 쓴 글에 대한 욕심은 버렸다. 다만 '어제보다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 나의 가장 작은 소망이다. 교보문고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을 정말 좋아한다. 책을 통해 사람은 정말 많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읽고 쓴다면 나는 더 좋은 사람은 못되어도, 더 나은 사람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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