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6 읽고 쓰기 (정은귀, 바람이 부는 시간)
오늘부터는 정은귀 선생님의 <<시와 함께 - 바람이 부는 시간>> 을 읽기 시작했다. '책머리에'라는 제목의 머리말부터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홀로 걷는 달', 그리고 '몽상도 좋아'까지 세 편의 글을 읽었다.
오늘 마음에 남아 필사한 구절들 중 일부를 가져와본다.
시는 현실 너머 새로운 길을 상상하고 꿈꾸고 그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걷게 한다. 시와 함께 걸으면 이 막막한 나날을 쉬이 지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생긴다. 그러니 일단 시와 함께 걸어보자. (6쪽, '책머리에')
깨달음은 이렇게 오나 보다. 모든 것이 나에게서 시작되지만, 그 걸음의 지향점이 타인들을 향해 있을 때 무심하고 먼 그는 비로소 당신이 된다는 것. (17쪽,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사는 일이 크고 작은 상실을 꼭 통과해야 한다면, 상실의 기술을 꼭 배워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끝없는 습득과 채움의 연속이다. (...) 그 채움을 위해 우리가 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지. (22쪽, '홀로 걷는 달')
해서 오늘,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것의 가치를 생각한다. 내 몫을 나누어주고 나를 비우는 것은 상실이 아니다. 그만큼 타인의 자리가 넓어지니까. (22쪽, '홀로 걷는 달')
'홀로 걷는 달'은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의 '하나의 기술(One Art)'를 소개한다. 이 시를 우울감에 흠뻑 젖어있었던 작년 봄에 만났다. 여러 크고 작은 일들로 힘들었던 2017년이 지난 후, 쉴 새 없이 2018년 봄에 대학교에서의 7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엄청난 이유는 없었지만 쉴 새 없이 달려와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타이밍에 쉴 수 없게 되어 갑자기 너무나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 학기에 들었던 문학 수업 두 개가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중 하나가 이 시를 만날 수 있었던 시 수업이었다.
정말 많은 시인들을 만나고 마음에 남는 시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이 시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상실이 어렵지 않다고 반복해 말하지만, 실은 화자는 그 누구보다 상실의 어려움과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우리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잃어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내가 '잃어버린' 것이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꿈에서라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언젠가 올 수밖에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영원히 미뤄두고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우리는 그 끝없는 채움을 위해 지금 현재의 작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잃어버리는 일을 빈번하게 겪는다.
내 우울함도 어쩌면 계속해서 나 자신을 채워야만 했던 그 상황에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급함을 조금 내려두고 나 자신을 비워내려고 하니, 오히려 배움으로 다시 한번 나를 채울 수 있었다. 소중한 친구들 또한 아낌없이 자신의 곁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그 학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눌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을 주변에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전보다 늘었다. 맛있는 것을 먹은 후 가족들 생각이 나서 집에 포장해가면 맛있게 먹어주는 얼굴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로 내 몫을 나누어주고 나를 비우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또 다른 채움이다. 행복감으로 오히려 내가 더 충만해지니까.
이렇듯 시는, 그리고 문학은 내게 언제나 '이 막막한 나날을 쉬이 지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듯하다. 이 마음의 근육이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