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2 읽고 쓰기 (정은귀, 바람이 부는 시간)
뜻밖의 일에 다소 놀란 오늘, 해가 진 저녁에 정은귀 선생님의 <<바람이 부는 시간>>을 읽으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만난 '외로운 희망, 외롭지 않은 희망', 그리고 '이상한 나무 이야기' 두 글이 어제 동생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종류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반복되는 피로와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 속에서 쌓여가는 답답함을 다스리고 또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민하는 같은 얼굴의 시간을 보낸다. (198쪽, '외로운 희망, 외롭지 않은 희망')
너와 같다는 고백이 내 아픔을 호소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그 아픔을 이겨왔는지를 들려주는 말이란 게 바로 뒤에서 밝혀지면서 슬픔과 아픔을 고백하는 목소리에 한결 결연한 힘이 실린다. 내가 지나 온 그 많은 모욕과 고난도 내 생명, 내 살아있음의 그 찬란함을 흔들어 놓지 못했으니까. (206-207쪽)
세상의 길을 홀로 걸어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208쪽)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나의 나침반만 필요한 게 아니다. 노를 함께 저을 사람, 친구든, 가족이든, 동료든, 이웃이든, 내가 피곤하고 지쳐 잠시 눈감을 때 나침반을 봐주고 키를 잡아 줄 사람도 필요하다. (209쪽, 이상 '이상한 나무 이야기')
동생과 나는 일곱 살 차이가 난다. 나는 여전히 동생을 '애기'라고 부르는데, 나보다 키는 더 크지만 갓 태어나 발갛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작은 얼굴을 처음 본 그 날의 모습이 선해 아직도 동생이 아기 같고 귀엽다. 이제는 동생도 제법 커서 말이 잘 통하지만, 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우리 둘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 가끔은 다투기도 한다. 그래도 서로를 정말 아끼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동생은 학교가 집에서 멀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기숙사 입사 후 한 학기 동안은 동생이 과외를 위해 주에 한 번 외출하는 날이면 거의 매번 동생을 만나러 갔다. 학교에서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엄청 멀지도 않은 거리라 시간을 내서 만나러 갔는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후 거의 한 달 동안은 기숙사 앞에서 헤어질 때 동생이 항상 울었다. 매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도 재수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 년 가량을 생활했었는데, 기숙학원에서 처음 2주 간 가족과 전화하는 것을 금지했었다. 너무나도 외롭고 힘든 2주가 지나고 엄마와 처음 통화할 때 엉엉 울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울 일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울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떨어진 적 없던 가족과 떨어진다는 게 나에게는 꽤 큰 일이었다. 아마 동생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집과 가족들을 떠나 낯선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울면 항상 다독이며 큰 소리로 응원하고 들여보냈지만,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혼자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다 속상해서 울기도 했다. 그때의 나와 '같은 얼굴'을 한 동생을 뒤로 한 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다.
그래도 그 시간을 잘 보내고 기숙사 생활에도 어느 정도 잘 적응을 하고 일학년 생활을 마무리한 동생은 어느새 이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중간고사 기간에 맛있는 저녁밥을 사주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동생의 학교 앞으로 찾아갔다가 또 한 번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카페에서 가볍게 '공부하는 게 힘들지? 그래도 공부할 때가 제일 좋은 거야~' 라며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동생이 또 눈물을 보였던 것이다. 언니에게 왜 울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냐는 내 물음에 나중에 이야기해주겠다는 답을 한 동생을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또 한 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에 돌아갔다.
시험이 끝난 후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동생도 자신이 어떤 일 때문에 힘들었는지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누구나 학창 시절 한 번쯤 겪었을 친구 문제였다. 나도 동생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너와 같다는 고백이 내 아픔을 호소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그 아픔을 이겨왔는지를 들려주는 말'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동생에게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내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들려주고 싶었다. 차분히 '나도 너와 같은 경험이 있어'로 시작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나의 답답했던 마음과 고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먼저 친구에게 손을 내민 일, 그리고 상대방의 용기 있는 사과로 갈등을 푼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해결 방법을 조언해줬고, 동생도 잘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나를 믿고 기꺼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해주어서 고마웠다. 본인이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나는 동생의 고민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7년 전, 그 언젠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고민에 답답함을 느끼고 고민했던 나의 얼굴과 같은 얼굴을 동생에게서 발견하니 새삼 내가 언니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동생은 믿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내가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 불쑥 '그래도 언니 있어서 좋지? 언니도 네가 있어서 좋아'라고 말했더니 말없이 배시시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저자는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나의 나침반뿐 아니라 노를 함께 저을 사람, 친구든, 가족이든, 동료든, 이웃이든, 내가 피곤하고 지쳐 잠시 눈감을 때 나침반을 봐주고 키를 잡아 줄 사람도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망망대해 위 멈춰버린 큰 배를 탄 채 홀로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주위를 둘러보자. 막막함에, 외로움에 미처 보지 못했던 나의 친구, 가족, 이웃들은 말없이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침반을 함께 봐주며 내가 놓쳐버렸을지도 모를 방향을 다시 잡아주고, 배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힘을 내 키를 함께 잡을 것이다.
'극한의 절망과 고통에 홀로 끙끙 앓지 말고, 언제든 나를 찾아줘. 옆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