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우울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고 청소년기를 지냈다. 사실은 모든 이들이 이런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두 이렇게 사는 거라면, 그런데도 티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 다들 많이 힘들겠다 싶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가는 건지 경외심이 들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모든 일생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기쁜 날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이유 없는 우울 속에 잠식되어버린 삶은 매일 같이 나를 짓눌렀다. 우울한 이유를 모르는 나로 인해 우울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린 것이다. 우울해서 우울할 만한 일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가끔 마땅한 이유가 생길 때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서인가 청소년기에는 꽤 많은 방황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너무도 어리석은 행동들을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고는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해방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벗어나기 위해 행했던 모든 행동이 다시 좌절과 죄책이 되어 부메랑처럼 나를 찾아왔다.
내 우울의 이유를 찾은 것은 스물 생일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병원에서는 나에게 기분부전장애와 주요 우울증, 불안장애를 진단했다. 툭하면 터질 것처럼 뛰던 심장이 비정상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약물 치료를 시작한 뒤였다. 모두가 이런 기분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기분부전장애 환자들은 대개 유년 시절부터 우울을 겪으며, 자신을 그저 우울한 성향의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기분부전장애도 우울증의 일종이나 쉽게 깨닫지 못한다는 거다. 환자 대부분이 주요 우울증이 찾아와야만 문제를 인지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그 설명 전부가 나의 삶을 관통한다는 걸 알게 됐다. 교감신경 검사와 뇌파 검사의 결과가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병원의 진단과는 별개로 나에게 닥친 문제는 쉽지 않았다. 스물의 여름, 내가 현역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당시 나는 네이버 시리즈에 웹소설 하나를 연재 중이었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연재가 펑크 나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스스로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나는 출판사에 웹소설 원고를 넘기고 실기 학원에 나가야 했다. 좋든 싫든 계속해서 백지를 채워야만 했다. 여름의 특성상 무수히 많은 백일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단편과 엽편소설을 번갈아 쓰는 시간이 반복됐다. 웹소설 연재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해내야만 하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가는 길 약을 타며 골똘히 생각했다. 이렇게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고. 평생 이 감정에 갇혀 버릴 것만 같다고 말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내 삶을 지탱해줄 무언가가 간절했다.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은 것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 버스에서였다. 반쯤 지정석인 맨 뒷자리 좌석에 앉아 오 분도 채 고민하지 않고 여행 앱으로 표를 결제했다. 학원 여름 휴가 기간에 맞춰서 육지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비행기표와 호텔을 동시에 해결한 뒤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여행에는 계획도 콘셉트도 없었다. 그냥 떠나자. 떠나서 술이나 마시자. 멍하니 바다나 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1박 2일의 단출한 여행에 많은 생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는, 마치 나를 타인처럼 여기는 상태였다.
2023년 08월 01일, 오전 8시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그날까지 마감해야 하는 웹소설 원고가 있었기에 비행기 안에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글을 썼다.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가 내게 혼자 여행을 가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어쩐지 내가 진짜 혼자 떠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알 수 없는 들뜸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비행기에 내려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뒤까지 원고 집필은 끝나지 않았다. 공항 게이트 앞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펼치고 계속해서 웹소설을 썼다. 글을 다 쓰고 출판사에 메일까지 보낸 뒤에야 생각했다. 정말이지 이렇게는 무엇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다. 적어도 이 여행에서만큼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이호테우 해수욕장 앞에 있는 한 술집이었다. 여행을 오기 전 생각한 것과 같이 그야말로 술만 마시고 바다나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여행 온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술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픈 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오전이었다. 사장님은 어제 생각보다 늦게 마감을 한 탓에 오늘은 오후에나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하셨다. 조금 허탈한 마음에 한참이나 해수욕장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술집 외에 딱히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기에 당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할 일이 없어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뭐부터 해야 할지 판단하는 게 아니라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말이다. 이호테우에는 해수욕 중인 연인들과 서핑을 타는 이십 대의 청춘들이 가득했다. 여행을 온 듯한 어린 애들 몇몇이 요즘 유행하는 케이팝 가요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서툰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바닷소리와 섞여들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커피와 케이크가 맛이 없었으나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핑 장비를 챙긴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핑하며 물에 잠겼다가 이내 다시 올라오길 반복했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조금 더 오래 물살 위에 버티고자 서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놓치고 살아온 것이 무언인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술집이 닫았다는 내 문자에 제주 출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근처 맛집을 찾고 있었던 내게 친구는 고기국수 가게를 하나 추천해 주었다. 일전에도 친구에게 맛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가게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괜히 큰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할까 봐 무서웠다. 공항에서의 마감과 술집의 늦은 오픈, 맛이 없는 커피까지. 잘 일으켜지지도 않는 몸을 부여잡고 떠나 온 여행이 더는 망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친구의 장담대로 고기국수는 뽀얀 국물을 자랑하며 담백하고도 깔끔했다. 실수로 곱빼기를 시키고도 정정하지 못한 내 낯가림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기국수 한 그릇을 비워내며 내 여행이 기껏 해봐야 이제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고기국수가 나온 건 오후 1시 45분. 음식을 다 먹은 뒤에는 체크인 시간이 되어 호텔로 향했다. 한여름이었기에 더위를 꽤 먹은 상태였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열을 식혔다. 여행을 갈 때마다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렇게 쉬고 싶을 때 호텔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치 감격스러웠다. 여행지에서만큼은 내 평안을 내가 통제할 수 있노라는 확신이 들었다.
호텔에 누워 한참이나 창문 밖 바다를 구경하다가 한껏 화장한 뒤 택시에 탔다. 입시를 하는 동안 화장을 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나 또한 꾸민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평소 화장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는데, 그런 것과 별개로 꾸미고 밖을 나서니 한껏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택시의 목적지는 아르떼 뮤지엄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 전시장인 아르떼 뮤지엄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이전에 다른 지역의 아르떼 뮤지엄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과는 차별되게 제주의 풍경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르떼 뮤지엄에서 나온 뒤로는 호텔 근처 와인바에 갔다.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을 한 잔에 만오천 원짜리 와인 네 잔 마셨다. 새우가 올라간 로제 파스타와 바게트도 시켰다. 느긋하게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인 듯했다. 애초에 혼자 술을 마실 일이 여태껏 없었다. 그렇게 조금 알딸딸해진 뒤에야 나는 다시 호텔로 향했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8월 2일 오후 9시 표였다. 두 번째 날에는 느긋하게 일어나서 동문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쉴 틈 없이 내 알고리즘에 올라오고는 했던 전복 김밥을 먹으며 여유를 부렸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시장길을 걸었고, 뭘 살지 계획도 없으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제주에 아기자기한 독립서점이 많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별개로 독립서점에는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향한 독립서점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만 책을 읽고 나만 글을 쓰는 줄만 알았는데 그곳에는 나 같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책 하나하나가 전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라서, 그게 이상할 만치 감격스러웠다. 그곳에서 책을 두어 권 산 뒤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제주 방언으로 된 책 한 권과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산문집이었다. 손님들에게 자유롭게 제공하는 책 중 희곡을 하나 집어 들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라는 책이었다. 희곡은 아예 문외한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접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여행을 온 게 아니었더라면, 그러니까 평소처럼 공부를 위해 읽는 책이었더라면 소설이나 산문집을 읽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혼자 오는 장소에서, 공부를 위해 읽는 책이 아닌 내가 원해서 고른 희곡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슴이 벅찼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독립서점의 작은 창에 찬란한 햇빛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책을 읽다가 날이 저물 때쯤 어제 가지 못한 술집으로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겼다.
위에서 말했듯 술집은 이호테우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었다. 공항 근처이기도 했기에 그곳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러 갈 생각이었다. 한라봉 하이볼, 감귤 과일주와 같이 소주나 맥주가 아닌 제주와 관련된 술을 마셨다.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술을 한두 잔 비우며 창문 너머 바다를 바라봤다. 창문 밖으로 남자가 드럼 버스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술을 다 마신 뒤 밖으로 향했다. 첫날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던 바닷가에 다시 돌아가 공연을 봤다. 여러 노래에 맞춰 드럼을 치는 남자가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 어쩐지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남자 앞에 놓인 바구니 안에 만 원짜리를 넣은 데에 단 한 치의 후회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 홀로의 제주 여행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과 함께 끝마쳤다. 여전히 가끔 그 드럼 버스킹의 영상을 돌려보고, 그때의 제주를 생각한다.
그 뒤로 쉬지 않고 여행을 다녔다. 일본과 부산, 제주에서 일주일 살기 등 닥치는 대로 떠났고 다른 세상을 마주했다.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워 늘 집에만 갇힌 채 누워 있던 내가, 밖으로 나서고 햇빛이 아름답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불과 어제까지도 제주 우도에 머물고 있었으며, 이 글도 경주로 여행을 가는 KTX에서 쓰는 중이니 내가 여행을 얼만큼이나 사랑하는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다. 앞선 여행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해방을 기다리고 있다. 변하고 싶은 부분이 많고 그래야만 하는 미숙함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졌음은 틀림없다. 그러니 앞으로의 여행이 나에게 온전한 해방으로 찾아오길 기대하며, 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자신만의 해방일지를 써 내려가길 기원하며. 나의 해방일지를 공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