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 요를레이
학부 시절,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ENTJ)은 수백 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흥에 겨운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쟤하곤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다른 사람(INTJ)은 중얼댔다. 오해였다. 마주 앉아 대화하니 생각보다 잘 통했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어느새 하나의 접점이 됐다.
졸업 후 각자의 길로 향했다. 회사에 들어가 실무 경험을 쌓았다. 많이 배웠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거푸집 속에 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과연 이게 맞나, 하고 생각하던 두 사람은 커피를 홀짝이다 "우리끼리 해보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마시던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인테리어도 사업이다. 사업을 하려면 이름이 필요했다. 뭘로 할까, 하다가 요를레이(yolllley)라고 지었다. “저기 알프스의 맑고 고운”으로 시작하는 요들송 가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왕 할 거 즐겁게 하자, 라는 마음을 담았다. 욜리, 요플레로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피식 웃음이 났다.
사업은 복잡다단했다. 설계만 하는 게 아니었다. 정해진 환경과 예산 안에서 결과물을 내야 했다. 현장 하나가 마감하면 곧바로 다른 현장 설계가 시작됐다. 지난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시공 현장에도, 마감 일정을 앞둔 사무실에도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밀려왔다. 그럴 때면 요를레이, 요를레이 하고 웅얼거렸다. 웃음이 났다. 4년이란 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분주히 움직였다.
호사가 찾아왔다. 디자인 매체 프레임(FRAME)에서 온 초대장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출국 전까지 업무를 보다가 부랴부랴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18일, 트로피 대신 파리에서 산 쿠키를 잔뜩 들고 귀국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두 번째로 프레임 어워즈에 초대된 공간 디자이너, 이정현과 신예솔을 만났다.
축하드립니다. 프레임 어워즈 2022(FRAME AWARDS 2022)에 초대받으셨다고요.
베스트 유즈 오브 컬러(Best Use of Colour)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어요. 대중들의 투표를 통해 선별되는 과정을 거쳐 최종 5인에 등극하게 됐죠.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게 흥미롭네요.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었어요. 어느 스튜디오에서 실무를 쌓았는지와 같은 배경이 아닌, 결과물 자체에 대해서 평가를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요를레이에겐 여러모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겠네요. 어워즈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자유로웠어요. 올해가 마침 프레임 창간 25년 된 해이기도 했는데요. 초대된 후보 모두가 음악과 와인을 즐기며 대화를 나눴어요. 시상식 자리라기보다는 축제 분위기에 더 가까웠죠. '우리들은 세상을 위해 좀 더 나은 디자인을 고민하는 동료야, 이 자리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도 돼' 이런 느낌이었달까요? 정해진 일정에 맞춰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명함을 교환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게 인상 깊었어요.
수상 후보에 오른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오베뉴(@ohvenu_cafe)입니다. 경기 일산에 있는 카페예요.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제겐 조금 생소한 이름이네요.
일산 근처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실 수 있을 텐데요. 웨스턴돔 내에 있어요. 의뢰받은 현장은 입지 조건이 좋다고 볼 수 없는 장소였어요. 2년 정도 공실로 있던 곳이었거든요. 접근성이 낮은 편이고, 찾기도 쉽지 않았죠.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풀어내셨나요?
현장 답사를 간 게 해 질 녘 즈음이었어요. 잿빛으로 물든 공간이었는데, 구조가 독특했어요. 실내 규모만큼의 테라스 공간이 함께 있었거든요. 주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형태였죠. 그때 생각했어요. 이곳만큼은 도심 속 쉼터를 만들어야한다, 라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거대한 테라스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죠. 모노 테라스(mono terrace)의 탄생 배경입니다.
건물에 있는 테라스를 도심으로 확장한 접근이었네요. 그런데 오베뉴를 보면 흔히 떠오르는 테라스와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맞아요. 보통 테라스 하면 밝은 느낌을 많이 떠올리실 텐데요. 우리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여기는 회색이 적격이라 판단했죠. 다만, 색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선 안된다는 의식도 가지고 있었죠. 이를 위해 자연석을 연상케 하는 소재들을 사용했어요. 내부 바닥도 단순한 타일이 아니라 돌 질감을 연출한 자재들을 사용했어요. 좌석과 테이블도 형태가 정해진 게 아닌 자연 어딘가에서 볼 법한 느낌을 담아 툭, 배치했죠.
회색이 회색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포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프레임 어워즈에서 만난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에요. 보통 회색은 스테인리스스틸과 조합해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전하는 배경지 역할을 하는데, 저희의 회색은 조금 다르다고요. 의도가 고스란히 전해진 거죠. 회색도 포근할 수 있다는 느낌.
후보에 오른 다른 프로젝트들은 어땠나요?
다채로운 색으로 점철된 공간이 대부분이었어요. 프로젝트의 규모만 놓고 봤을 때도 오베뉴보다 훨씬 더 컸고요. 처음엔 의아했어요. 색감이 화려한 공간들 사이에 오베뉴가 있다는 사실이요.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그래서 우리의 의도가 더 잘 통한 게 아닌가 싶어요. 강한 색감을 활용해 시선을 잡아채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려는 태도. 회색도 색이다, 라는 메시지가 좋은 반응으로 이어진 거 같아요.
공간이 소모품처럼 소비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들었어요. 요를레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는 부정적이었어요. 어떤 공간이 인기를 끌면, 대부분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리곤 하거든요. 그러면 공간 설계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게 돼요. 유행하는 공간처럼 설계를 희망하시는 클라이언트분들이 계시니까요. 트렌드를 좇는 의뢰가 들어오면 몸이 먼저 반응했어요. 일부러 청개구리처럼 굴기도 했죠. 공간이 기성품처럼 양산되면 공간의 다양성이 사라지잖아요. 공간을 찾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선택지가 줄어드는 격이 되고요.
지금은 오히려 좀 더 편안해졌어요. 왜 예전 대한민국에는 주거 형태가 다양하지 않았잖아요. 연립주택, 빌라 위주로 말이죠. 지금은 어떤가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더해져 그 종류가 늘어났어요. 최근에는 무조건 허물기보다는 형태를 보존하면서 공생하는 쪽으로 흐름이 이어지고요. 상공간 건축과 인테리어도 이 변화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듯 보이지만, 결국엔 균형점을 찾아 갈 거라고 말이죠.
일종의 과도기 같다는 말씀이시네요.
네. 다만, 지속되야하는 공간과 변화돼야 하는 공간이 조금은 구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예를 들면, 성수동 디올 팝업스토어 같은 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영감을 주거든요. 팝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좀 더 과감한 시도들을 엿볼 수도 있어서 좋죠. 근데 이게 실제 생계와 직결된 상업공간으로 넘어오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고 봐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분명 공간의 심미성은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간이 지속성을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공간, 곧 브랜드가 오래가기 위해선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필요해요. 우리가 흔히 아는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서사를 몇 년 동안 발전시켜 지금의 입지를 다졌어요. 그런데 앞서 말한 팝업스토어를 보고 그런 미감을 좇아 상공간에 적용하는 건 본질을 간과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수명은 브랜드의 방향성, 철학이 얼마나 확고하냐에 달려있으니까요.
옷도 그래요. 손이 많이 가는 옷은 결국 입었을 때 편하고 부담 없는 옷들인데요. 하지만 어떤 날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기도 하잖아요. 그런 옷이 필요한 때가 있으니.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한 순간을 위해 생긴 이벤트 같은 곳도 우리에게 분명 필요해요. 다만, 일상과 밀접한 공간과 섞이는 건 우려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부로디들에게 공간 관람 포인트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신: 가장 먼저 '공간 자체'를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공간에 대한 기억은 앨범 속 사진으로도 남지만 촉각, 후각, 그곳에 머물며 했던 생각 등으로 새겨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눈으로 공간 여기저기를 훑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각자만의 취향이 있잖아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보는 것도 취향대로 즐기는 시대고요. 공간도 그렇게 접근하면 돼요. 시선이 가닿는 곳이 있다면 발걸음을 옮겨도 보고요.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앉아도 보고, 머물러도 보는 거죠. 사진으로 남기는 건 공간을 떠날 때쯤 해도 충분하니까요.
찔리네요. 저는 보통 카페에 가면 콘센트를 먼저 찾고, 그다음엔 모니터를 보거든요. 제 아무리 넓고 좋은 공간을 가도 시선은 13인치 모니터 화면만 소실점 보듯 했죠. 정현 님도 추천해주세요.
이: 천장부터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천장이요?
이: 네. 천장이 참 재밌어요. 천장을 보면 공간을 만든 사람과 운영하는 사람이 엿보이거든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게 천장에 비용을 많이 쓰지는 않아요. 조명 잘 달려있고 소방시설 잘 갖춰져 있으면 큰 문제 없다고들 보시니까요. 그보다는 사람 시야에 잘 들어오는 쪽에 힘을 싣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을 정갈히 정돈했다? 이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투자를 했다는 말이거든요. 이말인즉, 설계자나 건축가가 이를 위해 설득의 과정을 거쳤단 얘기도 되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이: 천장을 보면 눈이 아픈 곳과 안 아픈 곳으로 나눌 수 있어요. 눈이 안 아프다는 말은 그만큼 조도나 빛의 확산, 색 등을 고려했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괜히 뭉클해져요. 설계자와 운영자의 마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천장을 보면 공간을 해석하기도 수월해요. 조명이 어느 위치에서, 어느 곳을 비추는지를 보면 이 공간이 강조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있거든요. 또, 노출된 천장에는 세월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테이프 자국이나 낙서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직업의 특성이기도, 개인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부로디 여러분들에게도 추천드리고 싶은 방법이기도 해요.
에디터 김승훈
디자인 이동현
인터뷰 요를레이 www.yolllley.com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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