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로컬리 Nov 11. 2022

조금 다른 의미의 지속 가능성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2 공간지훈

계절보다 유행의 변화가 빨라졌다. 의류업계에도 속도감이 붙었다. 저렴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찍어내는 브랜드들이 시장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패스트패션(fast fassion)'의 탄생이다.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혹은 옷장 속에 한 벌 쯤 있는 SPA 브랜드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대의 기후도 변했다. 시장도 방식을 수선했다. 원단의 트렌드와 색이 아닌, 원단을 대하는 방식을 수정했다. 버려질 운명에 처한 의류들을 활용해 상품을 만들어내는 흐름이 생겨났다. 요즘 대두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생각하는 방식이다.


가급적 오래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이탈리아 의류 브랜드 ‘슬로웨어(Slowear)’는 그 방식을 선택했다. 기본적인 디자인에 좋은 소재를 곁들인다. 이름 그대로 패스트패션에 대척점에 선 그들은 의복을 통해 말한다. 옷을 만드는 우리들은 이런 식으로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고 말이다.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품목 중 하나인 공간. 바로 이 공간에 지속성을 곁들이려는 집단도 있다. 공간지훈이다. 이름부터 간결하다. 거창한 장신구도, 요란한 포장지도 없다. 공간 만드는 임지훈은 직관을 좋아한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쉽게 읽히는 공간을 꿈꿨다. 이름처럼 말이다.


공간이 쉽다고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뾰족한 소수가 아닌 뭉툭한 다수를 향해 쓰는 글이 어렵듯, 보편 다수를 상정하는 일은 품이 많이 든다. 공간지훈은 쉽지 않은 일을 잘 해나가고 있다. 최근 연남동과 연희동에 공간지훈의 흔적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된 것. 초록 검색창에 ‘연희동 카페’를 입력하면 나오는 '프로토콜 로스터스'를 설계한 집단이기도 하다. 연희동에 또 하나의 공간을 작업한 공간지훈을 연희동에서 만났다.




공간 만드는 사람, 임지훈



5개월 만에 뵙네요. 

그러게요. 그 사이 소속이 바뀌셨네요. 새로운 곳으로 이직하셨군요.


저희는 구면이지만 지훈 님을 모르는 분들도 계실 듯 해요. 공간지훈에 대해 소개 부탁드릴게요. 

공간하는 사람 임지훈. 합쳐서 공간지훈(@ggjh.kr)입니다. 저는 생각이 깊어지면 미로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단순한 걸 좋아하죠. 그래서 공간지훈으로 지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8명의 디자이너와 2명의 현장 팀원으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그간 공간지훈의 ‘공간’은 많이 보고 들었지만, 정작 ‘지훈’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 거 같아요. 공간지훈의 시작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릴적부터 공간을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죠. 첫 회사는 주거 공간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어요. 원래는 그만 둘 마음도, 독립에 대한 의지도 없었어요. 다만 한 가지가 분명했죠. 상공간 작업에 대한 열망.


상공간 작업을 희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공간의 용도가 다르면 공간에 풀 수 있는 디자인 언어도 차이가 나거든요. 특정한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과,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공간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실험적 요소가 배제될 수밖에 없어요 주거는. 상공간 설계가 너무 하고 싶어서 기획안을 하나 작성했죠. 입사한 지 3년 차 시절에요.


어떤 기획안이었죠?

이원화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기존 회사의 서브 개념으로 상공간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해보고 싶다. 이걸 하게 되면 몇 년 안에 얼만큼의 규모로 몸집을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말 세밀히 준비했어요. 원래 하던 업무를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은 일까지 했던 셈이죠. 그만큼 의욕이 컸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호기로웠죠. (웃음)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거절당했죠. 회사는 기존에 해오던 일에 집중하는 걸 원했죠. 저는 회사와 함께 더욱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주거도 하고 상공간도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거니까. 하지만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됐어요. 그래서 대표님에게 찾아가 작성한 기획안대로 실행해보겠습니다, 하고 퇴사를 했어요. 공간지훈의 출발입니다.


호기롭네요. 어떻게, 기획안대로 실행하셨나요? 

아뇨. 그때는 내세울만한 상공간 포트폴리오가 없었어요. 일이 들어올 리 만무했죠. 당시 작은 공간도 구해서 형식적으로는 독립했는데, 거의 1년 정도는 현장 대신 사무실에서 디자인만 했어요.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하나, 싶은 생각까지 했죠. 괜한 객기를 부린 건가 하고 생각도 했고. 실제로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기까지 했었어요. 그러다 다시 생각이 바꼈어요. 


어떻게요?

너무 안전한 방식만 좇았던 게 아닐까 싶었죠. 일이 없으면 일을 찾으러 가면 되잖아요. 평택으로 향했어요. 거기가  고향이거든요. 그나마 지인들이 있으니까. 사업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제게 한 번 맡겨볼 생각 없나요?”하고 제안했죠. 그렇게 돌아다니다 드디어 첫 상공간 프로젝트를 맡게 돼요. 쇼룸이었죠. 클라이언트와 합이 잘 맞았어요. 묘하게 상황도 비슷했죠. 클라이언트는 이제 막 사업에 뛰어드려는 분이었고, 저는 이제 막 독립 프로젝트를 하려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멋진 걸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어땠나요?

문제는 예산이었어요. 함께 그린 청사진을 구현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했거든요. 고심 끝에 결정했어요. 얼마 모아놓은 있지도 않은 돈을 더 보태가며 작업하기로 말이죠. 예산이 100만원이라면, 거기에 제가 400만원을 더 보태 작업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 같은데요.

그렇게해서라도 완성도를 높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클라이언트에게 완성도 높은 공간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비슷한 처지였으니까. 그게 곧 저를 위한 길이기도 했죠. 만듦새 좋은 제 작업이, 화면이 아닌 세상 어딘가에 새겨져야 또 다른 작업 의뢰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이셨을 거 같아요. 이후에는 어떻게 됐죠? 

평택과 가까운 충남 천안 지역에서 하나 둘 공간지훈을 찾기 시작했어요. 둘이 매우 가까웠거든요. 첫 포트폴리오로 저변을 넓혀서 천안에서도 공간을 했어요. 2017년 쯤? 5년 전, 카페 붐이 대한민국을 휩쓸기 시작했죠. 그쯤 지로스터라는 공간을 작업하게 됐어요. 바리스타 학원을 운영하시던 분이 첫 매장을 내신 건데, 그때도 예산은 많지 않았지만 함께 해보자고해서 만들었죠. 이 공간이 유명세를 얻었죠. 자연스레 다른 바리스타분들에게도 입소문을 탔고요.


좋으셨겠어요.

상공간 설계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았지만 그게 카페라서 더 좋았죠. 이유가 있어요. 저는 카페라는 공간이 상공간의 집약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공 능력은 기본이고, 디자인 아이덴티티도 선명해야하며, 가구, 디자인, 디테일, 동선 등 설계가 아울러야 할 영역이 엄청 넓으니까요. 그게 너무 즐거워요. 불특정 다수가 마구마구 찾아오는 공간. 마지막으로 공간만 좋아도, 커피만 맛있어도 한계가 뚜렷한 느낌이 드니까. 이 두 개가 합쳐졌을 때 시너지가 생기는 게 좋았기도 했고.



운명처럼 다가온 장소, 프로토콜



사진: 김지혜


공간지훈의 공간을 논할 때 뺄 수 없는 게 프로토콜 로스터스라고 생각해요.

프로토콜 로스터스(@protokoll.roasters)는 제게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른 공간이에요.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하고요.


조금 다른 방식이요?

네. 보통 공간 설계를 의뢰하러 오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공간을 먼저 고른 상태로 저를 찾아와요. 그러니까 정해진 현장이 먼저 있고, 저는 그 현장 조건에 맞는 콘셉트나 디자인을 도출해 시공까지 하는 건데요. 프로토콜은 반대였어요. 현장부터 함께 골랐죠.


공간을 같이 보러 다니셨다는 얘기인가요?

정확히는 프로토콜이란 공간이 나오기 전부터 함께했다고 할 수 있죠.


사진: 김지혜


좀 더 설명해 주세요.

프로토콜의 김인기 대표하고는 몇 년 전 인연을 맺었는데요. 어느 날 하던 일을 멈추고 로스팅 공부를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했죠. 열심히 공부하더니 이제는 로스팅룸을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럼 내가 만들어야지, 생각했죠.(웃음) 어느 지역의 어떤 장소에 공간을 운영할지, 구조물을 선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저는 디자이너의 입장으로, 그는 운영자의 입장으로 말이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었죠. 그 친구가 잘 되길 바랐거든요.


장소를 알아보는 과정은 순탄하셨나요?

한 세 달 정도 발품 구하러 다녔어요. 말이 3개월이지, 막연하기도, 답답하기도 했죠. 우리가 대화를 통해 이끌어낸 건 결국 “연희동이어야 한다”였거든요. 근데 연희동 안에서도, 원하는 평면과 평수, 분위기도 충족하는 공간을 찾다 보니까. 쉽지는 않았죠. 그러다 운명처럼 한 장소를 발견해요. 편의점 갔다 나오는 길에 말이죠. 


편의점이요?

네. (웃음) 물건 사서 나오는데 건너편에 ‘임대’ 붙은 건물 하나가 보이는 거예요. 당시 웬만한 연희동 공간은 샅샅이 뒤져서 잘 알고 있었는데요. 그건 인터넷에서도, 부동산에서도 못 봤던 매물이었죠. 현수막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해서 그날 바로 결정했어요. 건물로 올라가는 붉은 계단, 공간에 올라 마주한 벽, 바닥, 목재 소재까지 다 좋았어요. 운명적인 만남이란 건 인간 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공간과도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하는 감정을 느꼈죠.


사진: 김지혜


운명처럼 찾아온 공간, 프로토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요.

이름 얘기부터 시작해야겠네요. 프로토콜(protokoll)은 독일어로 저장, 기록, 기록장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공간 한편에는 로스터의 작업실인 로스팅룸, 바리스타의 작업 공간인 바 테이블이 자리해야 했죠. 남은 공간들은 공간을 방문하는 저마다의 아카이브 구축할 수 있는 각자만의 작업실로 구상하면 좋겠다는 생각. 삶은 어쩌면 각자만의 아카이브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죠. 삶이라는 아카이브를 구축하듯, 공간에도 그런 결들이 켜켜이 쌓이길 바란 거죠. 프로토콜은 그렇게 구축됐습니다.


사진: 김지혜


디자인이 매력적이에요.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두 명 있어요. 디터 람스(Dieter Rams)와 알바 알토(Alvar Aalto)예요. 그들이 살았던 시대도, 배경도 좋아하죠. 한때는 이들의 모든 걸 흡수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니 자연스레 그들이 살던 시대, 환경 등에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어요. 프로토콜에는 이런 것들, 제 취향을 상당부문 녹여냈는데요. 앞서 말한 두 사람 중 알바 알토의 스튜디오를 오마주 한 부분이 있어요. 창가의 구조가 특히 그렇고요. 알바 알토에서 도면을 그리던 테이블을 인용했거든요. 이게 앞서 말씀드린 각자만의 작업 공간, 아카이브라는 것과 결이 잘 맞을 거라 판단했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펼쳐내니 디자인도 금방 나왔고요.


사진: 김지혜


프로토콜은 그간 공간지훈이 저장(protokoll) 해온 자료들을 집대성한 느낌도 드네요. 

맞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조명과 물품들도 공간에 비치했어요. 거의 무제한 대여하는 느낌으로 말이죠. (웃음) 엄밀히 말하면 제 공간은 아니지만 애정이 클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 친구가 잘 됐으면 하는 소망이 엄청 컸으니까요. 거기에 운명처럼 만난 공간에 대한 애정, 만족스러운 조건 덕에 여기가 분명 잘 될 거란 확신이 있었죠. 아낌없이 쏟을 수밖에 없었어요.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


사진: 박유춘


지금 앉아 있는 모티포룸(motiforoom)도 공간지훈의 성격을 잘 드러낸 듯한 느낌이 들어요.

모티포룸(@motiforoom)은 패션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공간 대여 플랫폼입니다. 건물 2층에 사무실이 있어요. 이곳 1층은 패션 브랜드, 기업, 혹은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 해서 출발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은 단어 그대로 복합적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성질을 공간에 담기 위해 무엇을 고안하셨을까요?

용이성이었어요. 공간 대여하는 장소만 제안하는 건 큰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어요. 여기서 발상을 전환해 봤죠. 대관하는 이용객이 최소한의 물품만을 구비해서 올 수 있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죠. 다양한 집기와 가구, 매뉴얼과 가변성을 공간 언어로 설정해두면 분명 누군가에게 유용한 대여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적용한 게 모듈러(modular)입니다. 


사진: 박유춘

이용자 중심에서 사고하신 거네요.

네. 상공간에 필요한 건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니까요.


지속 가능성이요?

상공간이 장거리를 달리려면 그에 걸맞은 체력이 필요하죠. 저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꾸준히 찾아야, 말 그대로 공간이 계속 유지가 되니까요. 찾지 않는 공간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 그래서 저는 공간이 수명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급적 오래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거죠. 내구성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쉬지 않고 찾는 의미로서의 지속성을 말하는 거죠. 공간이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지속 가능성.


미감만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네요.

맞아요. 모티포룸을 예시로 들면요. 사실 공간 대여를 목적으로 하는 곳에 굳이 모듈로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아도 돼요. 경험이 풍부하거나 센스가 있는 운영자라면 이런 요소 없이도 충분히 잘 운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공간지훈은 그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공간에 지속 가능성의 여지를 끼워 넣는 거죠. 


사진: 박유춘


그게 말씀하신 모듈러겠고요.

네. 바닥에 그려 넣은 그리드는 심미성만을 고려한 게 절대 아니에요. 기능적인 요소가 담겨있죠. 이 선들을 기준으로 행거와 테이블을 설치할 수 있게 하고, 이것들이 결합과 분리할 수 있게 했죠. 또한, 공간의 배치를 네 가지 예시 타입으로 구성해 홈페이지에 표기해놓기도 했는데요. 공간을 대여하는 사람이 제각각일 테니, 그들이 각자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들을 마련해 준 거죠. 변형하고 변주할 수 있게요. 공간 대여 플랫폼에 이런 장치가 있어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공간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중요하잖아요. 여긴 결국 누군가의 일터이자 터전이고 삶의 축소판일 테니까요. 그런 공간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유지돼야, 그래야 우리도 클라이언트 얼굴을 계속 볼 수 있잖아요. 저는 공간지훈을 찾아온 모든 분들을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박유춘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모티포룸은 뭐랄까, 공간지훈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긴 느낌이네요.

공간지훈의 색채가 많이 들어간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스틸, 우드, 화이트. 그리고 늘 공들여 제작하는 가구. 특히나 이곳은 작업 당시 제가 열정이 과하다 못해 미쳐있었어요. 한 두, 세 달 정도. 딱 디자인이 나왔을 때 너무 설레고 흥분됐어요. 그래서 팀원들을 엄청 괴롭히기도 했죠. (웃음)



사진: 박유춘


공간지훈은 올해까지 모티포룸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담당한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역할까지 맡은 것. 설계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망이라면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건 그 연결망이 확장되는 것이었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이 경험을 자양분삼아 앞으로 공간을 설계하는데 필요한 지속가능성을 꾸준히 연구하고 고민할 것이라고.



공간지훈스럽다? 




최근 연남동, 연희동을 돌아다니면서 든 생각이에요. 공간지훈의 향이 느껴지는 곳이 슬슬 많아진 느낌을 받아요. 앞서 이야기한 프로토콜, 모티포룸 외에도 궤도 연남, 연희도 그렇고요. 볼 때마다 든 생각은 공간지훈만의 색이 선명해졌다는 느낌인데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일종의 틀이 생겼다는 말도 될 거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몇 년 전,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어요. 그간 해온 작업을 곰곰 돌아봤는데, 공간지훈만의 색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다른 스튜디오들 해상도가 높은데, 우리는 뭔가 모호하단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죠. 그래서 그런 반응이 좋습니다. 우리만의 결이 생겼다는 거. 결이 생겼다고 똑같은 공간을 똑같이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의 결을 유지하되, 안주하지 않는 디자인을 시도해서 공간지훈만의 색을 더더욱 각인시키고 싶어요.


상공간을 즐기는 각자만의 방식이 있죠. 지훈 님은 공간을 방문할 때 무엇을 집중적으로 보시나요?

조금 짓궂게 느끼실 수 있는데 어색한 부분들을 발견하려고 애써요. 일부러 말이죠. 가령 ‘여긴 왜 이 의자를 선택했을까?’ 혹은 ‘에어컨 위치를 이곳으로 배치한 이유가 뭘까?’ 이런 걸 계속 혼자 물어요. 충분히 멋지고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계속 파헤쳐 보는 거예요. 어떤 때는 ‘아, 배관 위치 때문에 에어컨이 여기 있을 수밖에 없구나, 나 같아도 여기에 두자고 했겠다’ 이런 나름의 답을 도출해 내기도 해요. 결국 이유를 찾아보는 거죠. 이해하려는 노력, 공간 만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공부이기도 하고요.


말씀해 주신 태도는 사람과 사람 간에도 필요한 태도라고 봐요. 나름대로 이해해 보기 위해 애써보려는 마음. 그게 어쩌면 지속 가능한 공간을 설계하는 태도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가구는 안 보세요? 집요하게 살펴보실 거 같은데.

그건 너무나 기본이라 말을 안 했죠. (웃음) 공간 가면 가구도 엄청 몰입해서 봐요. 가구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니까요. 가구를 보다 보면 이런 접근도 가능해요. 이곳은 공간의 콘셉트에 맞게 가구를 제작했구나, 혹은 가구에 맞춰 공간의 감도를 조절했구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는 것도 공간을 해석하고 뜯어보는 하나의 재미가 될 수도 있어요.  뭐가 됐든 매력적이죠.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공간지훈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부로컬리 다운로드

App store

Android


작가의 이전글 회색도 색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