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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Jun 21. 2023

오프트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궁금할 로컬 브랜드들의 이야기 vol.4











꿈을 찾아 떠난 호주


스포츠 산업 전반에 관심이 있던 한 사람이 있다. 서태원이다. 체육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 그는 한 프로 축구팀의 채용 공고에 마음이 끌렸다. 정성스레 작성한 이력서를 챙겨 상암으로 향했다. 코치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주지하듯 축구 코치가 되려면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서태원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제 삶이 좀 무모해요. 자격증도 없었는데 코치 일 해보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갔거든요.” 보통 면접은 구단 프런트와 보는 것이 관례다. 서태원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수석 코치와 직접 만났다. 물론, 그렇다고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진 않았다.

 


결과는 탈락. 하지만 흡사 다음 시즌 우승컵을 노리는 프로 선수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면접 봤던 수석 코치님에게 틈틈이 연락을 드렸어요.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해보고 싶다고요. 결국 코치님도 지치셨는지 한번 와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후로 훈련용 고깔을 놨다 치우길 반복했다. 성실한 그의 모습은 다시 한번 결정적 기회를 창출했다. 


“코치님이 정식으로 함께해 보자는 제안을 주셨어요. 그후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정식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기세를 몰아 이후에는 아시아 축구 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다. 얼마 후, FC서울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결실을 보자 보다 더 큰 무대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랐다. 이윽고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에서 케언즈로, 케언즈에서 멜버른으로 몸을 옮기며 문을 두드렸다. 쉽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공통된 말을 들었어요. 미식축구가 인기인 곳에 와서 왜 사커 코치에 도전하냐는 말이었죠.” 면접이 많아질수록, 듣는 말이 잦아질수록, 생활비는 줄어들었다.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한 식당 주방 일이었다.
 

요리를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주방에는 요리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쌓여있었다. 서태원은 요리사들이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담을 그릇, 식기를 정돈하고 세척하는 일을 도맡았다. 손에 금방 붙었다. 나중에는 재료 손질을 돕는 키친 핸드 업무로 영역을 넓혔다. “학창 시절에는 수업 듣고 곧장 집으로 가기 일쑤였는데요. 호주에서는 마땅히 갈 곳도, 할 것도 없었어요. 마감이 끝나면 주방 직원들이랑 같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영어도 많이 쓸 수 있기도 했고요. 사람들과 친해지니 일이 점점 재밌어지더라고요.”



일을 하며 장고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재능과 노력, 이력을 높게 평가한 한 투자자가 호주 유소년 축구 관련 사업을 제안한 것이었다. 처음엔 레슨을 받는 선수가 한 명이었는데, 어느새 팀 하나를 구성할 정도의 인원으로 늘어났다. 자그마한 유소년 클럽은, 규모가 점진적으로 커져갔다. 일은 순탄하게 풀려가는 듯했다.
 

전력질주, 스프린트 후 찾아온 노곤함이었을까. 꿈을 향해 달리던 그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라는, 본질에 관한 질문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하던 것들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코치 생활을 하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정리했다. “다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이후 전공을 살려 체육 관련 공공기관에 입사 했죠. 각종 선수권 대회, 도쿄올림픽 준비 같은 것들을 하며 바쁘게 지냈어요.” 운동장이 아닌, 안온한 공간에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어떤 사람은 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서태원이 그랬다. 문득 고성도 오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던 공간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호주 식당 시절이 종종 생각났어요. 확실한 건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거였죠.” 그 시절의 모습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 플랫폼 회사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이례적인 승진 속도와 전례 없는 성과를 낳았다. 굵직한 에프엔비(FnB) 관계자들을 만나 산업 전반에 대한 것들을 습득했다.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만의 브랜드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명료해졌다. 


 


 









포크 하나에 꽂힌 세 개의 떡



요식업에 대한 의지는 분명했다. 그럼 무얼 팔면 좋을까, 라는 질문에 서태원은 망설임 없이 떡볶이를 외쳤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예요. 집에 친구들 오면 무조건 떡볶이를 줬으니까요. 나중에는 아이들이 손사래 칠 정도였어요. ” 단, 길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떡볶이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단계만 고도화 한 메뉴를 만들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꿈을 찾아 이륙했던 몇 년 전처럼, 서태원은 다시 한번 호주에서의 1년이란 기억으로 떠났다. 


떡볶이와 호주. 일견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가지는, 서태원의 삶에 착종돼 있었다. 호주에서 일하던 시절, 주방에는 순번을 바꿔가며 스텝밀(step meal)을 준비하는 규칙이 있었다. 소중한 동료들의 한 끼를 허투루 할 수 없던 서태원. 뭘 만들지 고민하다 재빨리 떡볶이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들이밀던 것처럼 호주의 동료들에게도 추억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 주방을 둘러봤다. 떡은 있으나 중요한 재료인 고춧가루가 없었다.



대신 눈앞에 토마토소스가 널려있었다. 파란색이 없으면 빨간색을 파란색처럼 쓰라는 피카소의 말을 알고 있었던 걸까. 서태원은 고춧가루 대신 토마토소스를 이용했다. 생각해 보면 떡볶이에 고춧가루를 사용한 건 1950년대 이후의 얘기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떡볶이란 본래 간장과 불고기, 각종 야채를 끓여 넣어 제조한 것이라 기록돼 있다. 그러니 고춧가루 대신 토마토소스를 쓴다 한들 문제 될 건 없었다. 원래 대부분의 요리는 환경과 상황이란 우연의 뒤엉킴으로 탄생해왔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동료들에게 음식을 건넸다. 그런데 반응이 꽤 좋았다. 그때의 방식을 다시금 가져와도 좋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당시에는 사업을 위한 게 아니라, 친구들에게 맛있는 떡볶이를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했는데요. 이게 아이디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떡볶이에 곁들일 음료 또한 호주의 추억이 결정했다. “호주는 소주가 굉장히 비싸요. 당시에는 생활비를 아끼고자 소주 대신 벌크와인을 마시곤 했거든요. 그때 떡볶이에 와인을 한 번 곁들여봤는데 그것도 반응이 좋았어요.” 요식업을 하겠다, 떡볶이를 주력으로 하겠다, 여기에 와인도 곁들이겠다. 방향이 정해지고 서사가 확실해졌다.



브랜딩은 메뉴를 정한 순간부터 준비돼 있었다. “떡볶이를 메뉴로 고른 순간, ‘원 포크 쓰리 떡스(One Fork Three Tteoks)’라는 문구를 떠올렸어요. 예전 잡지에서 ‘원 펀치 쓰리강냉이’라는 일러스트를 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걸 응용한 거예요.” 앞 글자를 줄여보니 오프트(OFTT). 의미도 좋고, 입에도 잘 붙었다. 


그런데 이름 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브랜드 사업을 하는 애인이 조언해 줬어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 때 세계관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죠. 어떤 세계관을 할까 하다가 이름을 응용했어요.” 오프트 벽면에는 권위를 내려놓은 친근한 인상의 포세이돈이 상주하고 있다. 삼지창 대신 거대한 포크에는 물고기 대신 세 개의 떡이 꽂혀있다. 바다를 관장하던 신이 물에서 뭍으로 나와 성수동에 안착했다.











분식이 세상을 바꾼다


분식(粉食)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뜻한다. 하지만 단어에 세월과 실용이 배합되면, 그 의미가 확장되기도 한다. 오늘날 분식은 흔히 떡볶이, 순대, 어묵, 라면, 닭강정 등 우리네 삶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것들을 통칭한다. 서태원은 바로 그 분식이란 단어를 오프트의 슬로건에 활용했다. 분식이 세상을 바꾼다 (BUNSIK CHANGE THE WORLD). 



“분식이라는 말을 살려보고, 알려보고 싶었어요. 어떤 분들은 분식이 아니라 ‘번식’으로 읽으시기도 하더라고요. 분식이라는 단어를 좀 더 대중화하는 것, 그게 오프트가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매장에 ‘스낵바’ 대신 ‘분식바’를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분식이란 단어를 골랐지만, 분식에 대한 통념은 메뉴의 고도화로 해체했다. 주력 메뉴는 오프트 떡볶이. 오프트라는 이름과 세계관을 고스란히 메뉴로 풀어냈다. 오프트 떡볶이는 과거 호주에서 사용했던 토마토소스를 떡볶이 위에 얹고, 튀긴 떡 세 개를 커다란 포크에 꽂는 형태다. “학창 시절 먹었던 분식 메뉴에 착안했지만, 저만의 해석을 가미하고 싶었어요.” 맛도 비주얼도 독특한 오프트만의 메뉴다.



분식이란 카테고리에, 오프트만의 해석을 가미한 메뉴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밥은 키토 김밥으로, 감자튀김에는 허니버터나 트러플을 첨가하는 식이다. 추억의 맛 또한 선택지에 올려놓았다. “양식 떡볶이도 좋지만, 본래 제가 좋아했던 즉석 떡볶이. 이 또한 메뉴로 준비해 뒀어요.” 접근성 좋은 김밥집에서 한 단계 발전한 가게를 만들자는 게 오프트의 방향이다. 


오프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칵테일도 준비돼 있다. “서울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아서 법인명을 ‘프롬 서울’로 지었는데요. 그 이름을 따서 지은 게 ‘프롬주'예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얼음을 잔뜩 담고 그 위에 와인과 콜라를 부어 시원하게 섞어 마시는 거예요.” 


간혹 손님들로부터 ‘프롬주가 뭐냐’는 질문에 팀원들은 당황하기도 했다. “손님들이 프롬주에 대해 질문하는데 팀원들이 답변을 잘 못하더라고요. 와인과 콜라를 섞는다는 걸 전하는 게 좀 난감했던 모양이에요. 그럴 때면 제가 ‘와인과 콜라를 섞은 칵테일’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오프트 떡볶이를 비롯해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에는 저만의 사연이 담겨 있잖아요. 이걸 부끄러워하면, 그건 제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니까요.”











벽, 바닥, 천장에 깃든 취향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 작가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의 말이다. 흔히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라는 문장으로 소비되는 한 문인의 말은, 서태원의 삶에도 통용되는 힘이 있다. 어릴 적부터 서태원은 떡볶이를 먹었다. 국경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떡볶이를 권했다. 종국에는 자신만의 떡볶이를 개발했다. 


그런데 음식만이 한 인간을 소개하는 참고자료는 아니다. 공간 또한 사용자의 꼴을 어림잡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건축가나 실내 디자이너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도 그렇다. 공간의 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좋은 공간이라는 말. 이는 오프트라는 브랜드가 자리한, 벽 바닥 천장 여기저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건축이란 주어진 예산을 이용해 바꿀 수 없는 지형, 지물 사이에 정해진 요구에 맞춰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이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비용으로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지출을 최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태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임을 아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이것이 오프트의 색을 명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공간을 하얀 도화지, 스케치북처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흰 종이에 무얼 새기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잖아요. 여백을 하나 둘 채워갈 때마다 그림을 그려가는 기분. 이걸 공간의 콘셉트로 정해 하얗게 칠했어요.” 서태원은 거대한 붓을 들고 공간을 하얗게 채색했다.


그렇다. 오프트의 메뉴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서태원의 취향이 투영돼 있다. “여기 놓인 책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아트워크가 담겨있어요. 이 사람은 본래 패션이 아닌 건축을 전공했어요. 그런 그의 삶이 좋았어요. 비전공자이지만 어떤 영역에 발을 들여 최고의 반열에 오른 그런 모습이요.” 



벽이란 도화지에 그려진 요소 하나하나에도 사연이 있다. “저기 붙은 주황색 테이프는 제가 속한 러닝 크루 행사에서 사용한 거예요. 밑에 놓인 스피커는 친구가 선물해 준 거고요. 곰돌이 그림은 소중한 친구가 선물해 준 의자에서 가져왔어요. 비와이오(BYO)라는 스티커는 호주에서 가져온 건데요. 보통 한국에서는 '콜키지(corkage)'라고 하는 걸, 호주에서는 ‘브링 유어 온(bring your own)’이라고 하거든요.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계속 붙여두려고요.” 


공간에는 서태원의 고민과 땀방울 또한 스며들어 있다. “벽체 미장부터 바닥 에폭시까지 직접 했어요. 바닥 높이를 올리려고 시멘트 작업도 했고요. 가구는 대부분 이케아에서 주문한 것들이에요. 한정적인 예산으로 해결하고자 골랐던 것들인데요. 이제는 더 좋은 것들로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계속 쓰려고 해요. 오프트를 준비하던 초창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잖아요.”


한 존재자의 고유한 취향과 삶. 가맹점을 지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오프트를 뜯어보면 저란 사람들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저기 담겨 있거든요. 이건 다른 사람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어요.” 












팀 오프트 (TEAM OFTT)



주방은 복잡하다. 요리할 때 나는 연무와 수증기가 가득하다. 도처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고온의 육수나 날카로운 식기 등. 자칫 잘못하면 심각한 부상을 야기하는 것들 투성이다. 험한 말과 고성도 왕왕 오간다. “때론 주방이 많이 거칠어지기도 해요.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찰나의 순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상황 소에서 하나의 팀처럼 호흡이 딱딱 맞을 때 도리어 재밌기도 해요.” 정신없는 순간들 속 발생하는 찰나의 하모니. 주방이란 공간이 팀 생활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팀 오프트의 주장 서태원은 무엇보다 화합(harmony)을 중시한다. “누구든 처음 하는 일에는 당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설령 팀원 중 하나가 일을 못 하더라도, 그걸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돼요. 본인이 업무에 좀 더 능숙하다는 이유로는 더더욱 안 되고요. 누구나 다 첫 순간이 있거든요. 그걸 늘 강조해요. 주방에 텃세라는 탁한 공기를 정화시키고 환기하려 노력하죠. 언제 누가 새로 합류하게 되더라도 사이좋게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요. 결국 다 같이 재밌어야 해요.”



실제로 팀 오프트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서태원은 훈련장에서 함께 땀 흘리는 코치처럼, 외부 스케줄이나 브랜딩 작업 일정이 없을 때면 언제나 팀원들과 함께 호흡한다. “사장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어요. 설거지도, 재료 손질도, 뒷정리도 다 하죠.” 대신 그가 다른 프로젝트나 외부 일정이 있을 때는, 팀원들이 그의 빈자리를 메워준다. 


“보통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들하고는 좀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것 같아요. 오프트가 식당으로 출발했지만, 저는 이 브랜드를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고 싶거든요.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굿즈도 제작하고 있어요. 인터뷰 오기 전에 오프트 팀원들 유니폼을 만들다 왔고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팀원들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브랜드 전반을 아우르다 보면 가게에 소홀해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럴 때면 팀 오프트 멤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해줘요. 항상 고맙죠.”












동네 맛집이 아닌,

찾아오는 맛집으로


한때 초록색 검색창에 ‘성수동 떡볶이’를 검색하면 최상단에 오프트의 이름이 부유한 적이 있다. 홍보를 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검색 결과 맨 위에 오프트 이름이 나온 게 나름 자부심이 있었어요. ‘광고’라는 문구가 붙은 브랜드보다도 위에 있었으니까요.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어떤 브랜드가 성장하는 서사는 보통 다음과 같다. 입소문이 난다. 그 소문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문이 모여 메아리가 된다. 입소문을 탄 브랜드는 서서히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 ‘로컬화’의 과정이다. 오프트는 이러한 시나리오를 거부한다. “동네 맛집보다는 더 많은 분들이 오프트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오프트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자’라는 모토로 출발했거든요. 그러려면 ‘동네 맛집’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맛집’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역할은 로컬화를 최대한 늦추는 거예요.”



심리학자 레이먼드 카텔(Raymond Cattell)은 젊은 세대의 순수성과 지성을 ‘유체(fluid)’라 표현한 바 있다. ‘젊음’이란 연령의 문제가 아닌, 생각의 외투를 갈아입을 줄 아는 유연한 태도라는 의미다.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살피는 일, 서태원은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저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 입장이다 보니 경험의 외연이 줄어들기 마련인데요. 그럴 때마다 팀원들과 대화하며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 생각 또한 자연스레 젊어지더라고요.”


신선함과 새로움에 대한 갈급과 각근. 이것이 가변성으로 점철된 성수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서태원은 생각했다. “동네 맛집보다는, 항상 새로운 모습과 신선함을 줄 수 있는 것. 그게 성수에서 브랜드가 살아남는 방식 아닐까 생각해요.” 이를 위해 서태원은 다양한 영역으로 시선을 돌린다. 패션업계 종사자는 아니지만 패션 관련 행사나 런웨이 영상 등을 수시로 훑는다. “성수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장의 숙명이 아닐까 싶어요.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쉴 틈 없이 감응해야 하는 숙명.”
 
새로움을 공급하려면 변화는 필수불가결하다. 오프트는 이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저의 경험들을 오프트에 입히는 게 독특하고 새로운 게 아닐까 생각해요. 최근 친구들과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어요. 9월에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고요. 그곳에서 마주친 여러 가지 경험의 단상들. 그것들이 저를 매번 새롭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돼요.” 신선함과 독창성. ‘오프트다움’을 길어 올리는 원천은 결국 그만의 경험과 해석이었다.


사람과 브랜드, 서사가 하나로 일치하는 오프트.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비롯, 협업 등을 구상할 계획이다. “운영하는 사람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감을 가진 브랜드와 뭔가를 해보면 재밌을 거 같아요. 보통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 보니 그런 분들과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하더라고요.”


동네 맛집이 아닌 찾아오는 맛집을 꿈꾸는 오프트. 마지막 소회를 물었다. “부끄럽지 않은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오프트를 위해 물심양면 도와준 사람들이, 주변인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도록 더더욱 노력할 거예요.”




글, 사진 김승훈

인터뷰 오프트 서태원





부로컬리(@boolocally)가 진행하는 <TMI: THE MOST IMPORTANT>는 각자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로컬 브랜드들의 가치와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기획된 캠페인입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지역은 바로 서울 성수동. 부로컬리는 남다른 콘셉트와 정체성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가진 4개의 브랜드를 엄선했습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궁금할 로컬 브랜드들의 이야기', ‘TMI’ 캠페인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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