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죽음과 맞닿은 것처럼, 오후 햇빛

인어공주를 위하여

by 부밍북

노운아


내가 그 빛에서 머물기로 결심하기 시작했던 때는 아마도 20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다. 한창 꾸미고 나가서 밤늦게까지 불타오르는 거리를 쏘다닐 법도 했건만 그 일, 돌이킬 수 없었던 그 일을 경험한 이후로 나는 오후의 빛에 갇혀 사는 사람처럼 이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사람이 싫다.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켰다.

눈이 부셨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내가 생활하던 방이 아니라고 잠시 착각했다. 노란색인 것 같으면서도 새하얀 것 같은 노란색인가. 토요일 오후 2시라는 영화를 예전에 들은 것 같았는데 결국 감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후로 토요일 오후 2시만 되면 영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그 몽환적인 오후 햇빛의 색에 경도되어서 낮잠을 청하곤 했다. 저 멀리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고 그 끝자락에는 내게는 생경한 어느 여인의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 나는 그렇게 토요일 낮잠을 청하며 밖의 사람들의 목소리만 어렴풋이 아련하게 들을 수밖에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찬란한 빛과는 대조되게 나는 항상 초라한 토요일을 맞이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낙서를 하듯이 몇 자 끄적거리는 것이 내 일과의 전부였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도시의 화려한 빛이었고 그 빛을 통해 나는 바깥 사람들의 얼굴, 패션, 이야기, 유흥 등 갖가지 모습을 마치 요술 램프를 보듯이 감상하곤 했다. 그 무리에 껴서 보면 대단한 것 같은 이야기들이 요술 램프를 통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요물 같으면서도 부질없는 그런 주말을 왜 사람들은 집착하는 것이었을까. 누구도 인생이 우울하다고 토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이 정말 싫다.


아무도 읽지 않거나 읽어주지 않을 글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오후 2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도시의 빛이 더욱 몽환적으로 흐른다. 이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태로 나를 인도하곤 했다. 이렇게까지 내가 빛의 구덩이에 빠져서 이상한 토요일을 보낼 수밖에 없는 원인이 무엇일까를 스스로 찾아 음습한 골짜기를 헤매야만 했다. 이런 행위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미쳤을 것이다. 찬미와 찬사가 쏟아지는 이 빛 아래에서 나는 열심히도 본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도대체 이런 젊은 날의 소중한 토요일을 허비하는 그 기질은 무엇인가에 몰두했었다. 남들은 유흥에서 멀어지면 좀 불안해 한다거나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아래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찾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왜 그런 것에는 들러붙을 만한 재주가 없는 것일까. 의미 없는 타이핑을 시작한 이래로 그 이상한 분출로 시작된 이야기의 페이지가 100페이지가 넘어갈 무렵 그날도 어김없이 찬란한 햇빛이 방으로 프리즘처럼 투과했고 나는 또 요술램프를 통해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날 내가 목격한 빛은 좀 달랐다. 그러니까 색부터 달랐다는 말이다.

밖에는 약 사과나무, 배나무가 울타리 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가꾼 간이 밭에는 여러 채소가 잘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 멀리 나갔나 보다. 나는 멀뚱 거리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리고 가족을 기다렸다.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서 홀로 피아노를 쳤다. 하얀 피아노 건반에 내려앉은 붉은색 햇빛. 생전 처음 보는 색깔이라서 신기했다. 금방 핑크골드 색으로 물든 집, 나는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까와는 다른 주홍색 빛이 마당을 감싸고 있었다. 사람은 없고 소리 없이 나무의 이파리만 자라고 있었다. 검은 땅도 붉게 물들어서 마치 화성에 온 것 같았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거나 학교를 돌아오거나 할 때도 아무도 없었다. 주황색으로 페인트칠한 문을 넘어가는 마루에는 책이 쌓여있었다. 붉은색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세계 동화전집 100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모두 다 읽어버린 것이었다. 밖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시골집 풍경 그 자체였다. 이곳은 뿌연 매연도 없는 청정 시골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햇빛도 쨍하게 내리쬐었다. 김매러 나가시는 할머니의 화려한 색감은 선명한 무당 할머니들의 그 옷처럼 너무도 명확했다. 나는 그렇게 또 책을 읽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대문을 칠하다 만 주황색 페인트로 칠한 다리가 살짝 녹슨 의자에 앉았다. 한쪽은 인형을 안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리면서 무엇을 볼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멈춘 채널. 어떤 만화였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물건은 내 방의 그것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탐스러웠다. 내 품 안에 안겨서 물끄러미 나와 함께 만화 영화를 보는 인형은 왜 이렇게 꼬질 해 보이는 걸까.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서 크게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어느 더운 늦은 오후에 서글픈 나는 만화 영화를 보면서 항상 바쁜 일로 늦게 들어오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잊었다. 피아노 덮개는 열려 있었고 그 위에는 악보 몇 개가 쌓여 있었다. 창문 너머에 보이는 파릇한 이파리들이 검은 싱그런 미소를 보이자 나는 금방 주눅이 들었다.


지금 밟고 있는 땅보다도 더 아름다운 바다에서 넘실거리는 곡선의 여자. 창문 너머 선명해서 가끔은 마주하기 싫은 식물들보다도 더 싱그러운 바닷속 식물들. 그 물결에 맞춰 매끄럽게 움직이는 사람과 사물은 현실의 부자연스럽고 적막한 사물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여인은 말을 하지 않았다. 큰 눈동자만을 움직이며 왕자를 바라봤는데 어떤 말을 내뱉을 법도 한데 그녀는 침묵했다. 고요가 아름다운 만화를 타고 흘렀고 나는 이러한 고요에 익숙했던 터라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었다. 말이 없는 그녀는 멀리서 그 남자를 바라만 봤다. 그 남자도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귀여워해 주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왕자를 향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래서 그 모든 희생을 감수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헌신, 희생, 인고 이런 것들뿐이었다.


축배와 찬사가 가득한 큰 배를 배회하던 그때 영상 속에서는 서서히 큰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긴박한 표정과 아름다운 바닷속에서 그녀를 부르는 가족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오버랩됐다. 빛이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토요일 오후 2시의 빛처럼 가장 희고, 밝고, 몽환적인 빛이었다. 물론 그 빛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으나 그 빛의 오로라는 기억 속에 남았다.


피아노 덮개 위로 슬그머니 올라온 그 불길한 빛.

나는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본 듯한 그 빛의 색깔은 성인이 되어서 훗날 만나게 된 아라비안 선셋이었다. 불길함은 창문을 통해 피아노로 내려왔고 그 색이 무서웠던 나는 다시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녀가 아침의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게 되자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마루로 뛰어나갔다.

물거품으로 변해서 하늘로 승천하는 여인.

목소리가 없던 여인이 헌신했던 그 남자는 아름다운 새 신부와 함께 잠이 들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그 절경에서 인어 공주 아가씨는 대기의 정령이 되어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눈물방울을 품고 현관을 열었다. 그때 맞이한 그 빛은 죽음과 맞닿았다. 나는 그 빛을 꿈속에서 자주 마주하곤 했는데 그 빛이 나를 엄습할 때마다 내가 오롯이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 고독이었다. 아무도 내게 손을 뻗어주지 않을 때 유일하게 내게 오는 그 빛은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죽지 않았을 뿐 마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 빛은 헌신을 하는 사람에게만 온다고 그렇게 스스로 깨닫게 됐다.


눈을 떴다.

토요일 오후, 아직 여섯 시가 되진 않았다. 밖에서는 차가 교외를 향해 힘차게 달리는 소리, 그 안에서 즐겁게 연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희고 밝은 빛으로 나를 비춘다. 나는 이제 오후의 찬란한 빛에서만 머무는 사람. 저 멀리서 죽음과 맞닿은 빛 앞에 서 있는 그 사람. 그도 토요일 오후에 그녀와 함께 어디로 가나 보다. 이제 나는 더는 고독하지 않다. 눈을 감아도 잔인하게 눈부신 토요일 오후의 빛이 아라비안 선셋을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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