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상실과 이별 사이에서

by 부밍북

작성: 노운아 (盧韻芽)


떨어뜨려 저 멀리 날아가게 만드는 것.

상실, 이별의 단어가 공간에서 떠다닐 수밖에 없는 것은 바람이 있어서겠다. 눈으로는 볼 수 없어서 얼굴에 맞닿은 감각으로 감지한다, 바람. 시작은 몰라도 끝은 명확했다. 바람이 불자 대단원의 끝이 남기고 간 자취는 적막감이라면 좋을 텐데 낯간지러운 포근함이 내게 기분 좋은 아련함으로 대체됐다. 잠시 그렇지만 길게 지속하다가 갑자기 바람이 뚝 끊겨 아무것도 없는 공간임을 깨닫자 불현듯 몰아치는 감정의 실체는 적막감이었다. 끈이 떨어져 나가는 현실의 아픔을 지칭하는 이 세상의 모든 단어가 바람으로 표상됐다면 바람이 사라져버린 그 순간은 강력하게 남겨진 아우라의 잔상으로 존재가 증명됐다. 어쨌든 바람의 시작점과 끝은 모두 슬픔의 전주곡으로 점철되는 듯하다. 애상적인 기분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정의 길을 이끄는 바람으로 나는 스쳐 지나간 옛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지금 이 글의 시작이 무척 서정적이다. 바람은 물리적으로만 행위를 했을 뿐인데 맞이하는 자는 화학적으로 그 행위에 의미를 더했다. 그렇다면 바람이 가져다준 일련의 복잡한 감정을 뒤로 밀어두고 인연의 끈이 떨어져 나갔던 사람들에게서 정말 애상이 항상 존재만 했을까 하는, 차분히 진단해 본다. 그러니까 바람이 없는 일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순수한 상실과 이별의 본질에 대해서다.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하면 나는 아직도 아프다. 길에서라도 만나고 싶지 않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짜 그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더러 찾아오기도 했다. 속마음과 다르게 지나치게 친절한 모습으로 변절하는 순간이 있다.

그들을 건널목에서 우연히 마주했다.

그건 결코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왜 이렇게 변절하는가. 곧장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면서도 걸음은 빨랐다. 곧 바뀔 신호 때문에 아쉬운 표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눈짓을 강조하면서 가던 길을 간다. 그렇지만 돌아서면 오히려 분 단위로 바뀌는 신호등에 감사하리라. 묘한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다. 어쨌든 지금 이 정도가 더 좋겠다. 어떤 문학적인 감정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공기가 움직이지 않나 보다. 뺨과 머리카락이 마치 모빌처럼 그대로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고 싶은 충동은 일지 않는다. 앞으로 나갔다. 바람은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이 있는 공간과 벽이 없는 공간에서 나는 그 어떤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

공기가 움직일 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바람이 있었다. 건널목을 벗어난 순간 나는 또 다른 물음에 다가갔다. 나를 지금껏 애상적으로 흔들었던 바람이 진짜 바람이었었나 아니면 마음이 움직이면서 안에서부터 불어 밖으로 나온 심리적인 현상이었나. 움직임은 같은 움직임인데 현상이 움직인 것과 마음이 움직인 것과 움직임의 대상이 다를 뿐, 움직임은 같은 움직임. 분명 나는 움직임을 여태 잘못 파악해서 오해했으리라.

신호등에서 멀어진 나는 지금 스쳐 지나간 사람과의 일이 어땠는지 되짚어 봤다. 어디에서 만났나, 어쩌다 만나게 됐나, 그렇게 함께 한 지난 시간의 파편들이 직소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맞추면 완성될 그림에 멈춰 섰다. 더는 찾고 싶지 않은 파편들이 있었다. 그걸 지금 맞춰서 무엇하려나.

툭, 마음에서 썩은 열매가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순간의 소리, 이렇게 파면을 선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없었다. 그 인연의 끈이 다하던 순간에서부터 존재하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우연이 선사한 순간의 순간이 나를 흔들었을 뿐 그 흔들림의 결과는 썩은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 즉 시작점도 없는 끝의 끝이었다. 이별은 이미 끝난 점의 시작이었다. 완벽한 끝이었다.

나는 계속 가던 길을 갔다.

사람들이 눈을 흐릿하게 떴다. 고개를 돌려 목을 푹 아래로 떨어뜨리는 시늉을 한다. 그림자는 말이 없었다. 발밑에서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사람들의 옷가지가 살랑거렸다. 똑같은 동작이 내게 다가왔다. 나의 그림자도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보는 사람들처럼 나도 목을 떨어뜨렸다.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물결에 부유하듯 목, 어깨에서 맴돌았다. 포근한 마음으로 일었다. 유독 해가 이 세상의 해가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주홍빛으로 내려앉았다. 노을이 시작되면 정규 방송을 시작하는 방송사에서 내보내던 영상과 색감이 비슷했다.

왜 엄마가 오지 않는 걸까.

소리 없는 텔레비전이 무서워 창 밑에 자리한 피아노 의자에 올라서서 노을에 젖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집에 정말 아무도 없었다. 해가 점점 내려앉았다. 나는 처음 보는 색깔이었다. 이 세상에는 나밖에 없었다.

정지한 화면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머물렀던 영상이 시작됐다.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총총 빨라지더니 모두 사라졌다. 음악 소리가 들렸다. 적막한 공간에서 음악이 흐르자 나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골드로즈처럼 물든 세상에 미끄러지는 가녀린 바람이 주문처럼 이야기했다.

상실하는 것들. 엄마를 찾아 헤매던 눈으로 다시 세상을 찾았다. 바람이 몰고 온 따뜻한 애상이 주변에 스며들어 물들더니만 금방 사라졌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음의 상태를 인도하는 것, 그것이 바람이었다.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건널목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뒤를 돌아봤다. 건널목을 걷는 사람들은 모빌로 굳어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외로운 방에 걸려있는 장난감처럼 현실에 없는 것들이었다. 모빌은 간혹 움직이기도 했다. 나는 물끄러미 모빌을 바라보았다. 방금 있었던 일들이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모빌과 나는 이별을 했다. 나는 이별을 하였을 뿐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났던 여정의 어느 한 부분을 상실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 옆으로 현실에서는 바람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피아노 의자에 올라서서 노을 젖은 창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바람은 몰래 내게 잠입해서 나를 그 공간으로 흔들어 인도했지만, 엄마는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애달프게 굴어도 상실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비련의 순간을 깨달으면 어느새 바람은 다시 불었다. 이내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이별과 상실의 차이 속에서 바람이 살랑거리며 나를 흔든다.

나는 다시 길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 발걸음이 빨랐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 후 주변은 더 청명해졌고 맑았다. 신호등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주머니 안쪽에 가만히 있는 휴대전화를 꺼내 봤다. 엄마에게 전화해 볼까 하는 망설임이 일었다. 이내 그만뒀다. 바삐 가던 길을 갔다.


바람이 내게 알려준 건 하나, 상실과 이별을 구별하는 묘한 감각을 선사해 줬다. 이 늦가을에서 바람이 내게 주는 선물은 상실의 순간을 떠올리는 기폭제다. 주변은 항상 번잡한데 바람이 불고 떠난 끝자락에서 이상하게 나는 느낀다.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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