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환희로운 어휘 – 무상신속(無常迅速)

참선수첩(禪帖) p.4

by 분촌

일찌기 무상을 깨달았으니,

어린 시절에는 내가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나를 삼켰던 순간이 많았다. 웃음과 내가 합일이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뭔가 말할 수 없이 재밌고 웃겨서 배꼽이 빠져나가던 순간과 언니에게 쥐어터져 울었던 순간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것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신속했다. 엄마는 언니를 이름 대신 ‘땡벌 같은 가시내’ 라고 부르며 그 성질머리를 탓하곤 했으나 나에 대한 영향력은 엄마보단 언니가 셌다. 그렇다고 내가 굴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나의 어린 시절 폭소와 울음이 반복하던 시간은 많기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 웃음 끝에 반드시 울음이 터진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마음의 준비’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신 나게 웃고 난 뒤에는 반드시 울 일이 생긴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안방 마루 앞 담장 근처에서 놀고 있을 때였고, 계절은 따뜻했다. 니와 동생들은 놀이에 푹 빠져 있는데 나는 같이 푹 빠지지 못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이 놀이 중에 언니의 차돌같은 주먹 맛을 볼 사람은 누구인지, 또는 무사히 기분좋게 이 놀이를 마치고 다음 놀이로 옮겨갈 것인지를 마음 속으로 빠르게 훑고 있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술래잡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깔깔거리던 웃음을 멈추고 마당 한복판에 가만히 멈춰서서 '나는 뭐지? 나는 왜 나지?' 미칠 것 같은 궁금함에 사로잡히곤 했다.

진흙에서 연꽃이 피고 진리는 고통 속에서 발견되듯이 우리 언니의 더러운 성깔머리가 나의 메타 인지를 쓸데없이 일찍 깨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상신속이란, '무상함은 빠르다.'는 뜻이다. 빨라도 그냥 빠른 게 아니라 겁나 빠르다는 의미를 품고있는 말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G.D.가 외친 바 있다.

그렇다면 무상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오해받던 오랜 현상은 좀 사라진 건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공들여 문학 작품을 창작했는데 세상이 알아주기까지 해서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치고!

그런데 어느 날엔간 이 지구가 사라지고 말 텐데, 그때 내 작품은 어떻게 될까? 영화 <돈룩업>에서처럼 모든 건 쓸려나가고 만다. 도망친 메릴 스트립 일행처럼 새 터전을 향해 탈출할 지구인들이 문학 작품 정도야 저장 장치 하나에 몽땅 저장해서 보존할 수도 있겠지만, 선별 과정을 거칠 것이다.

내 작품이 저장 후보에 올라 저장되어 인류와 함께 존속할 기회를 갖게 된다고 또 한 번 치고!

게다가 운 좋게 탈출 우주선에 탑승하여 더 살 기회까지 얻는다 치자.

이러면 모든 게 완벽할까?

탈출하면 안 죽나?

내 문학작품이 나를 구해주나?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조부모님도 돌아가셨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을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에게 올 ‘그날’에 대한 감각이 더해간다.

그러나 지구의 공전과 자전 속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하루 해가 빠르게 뜨고 져도 무상의 신속함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안일하게 살아간다.

그걸 알라고 나의 생은 나의 머리통을 끊임없이 쥐어박았건만 나는 무엇에 홀려 그 많은 날들을 아깝게 흘려보냈을까?


무상은 살을 발라내는 잔인함이고

무상은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움이다.

어느 쪽이든 불만은 없다.

단지, 나는 영원하지 못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