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첩(禪帖) p.7
나는 10대 때 버지니아 울프와 펄벅, 헤르만 헤세를 무척 좋아했다. 이중 가장 허기를 느끼듯 탐내며 읽었던 작가는 헤르만 헤세였고,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대부분은 중학교 때 읽은 것이다. 그의 작품 중 내 영혼을 사로잡은 건 물론 <데미안>이었다. 헤세가 데미안의 입을 통해 했던 말들 외에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 것은 데미안의 행위였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그러나 그 사물을 보고 있지는 않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가 있는 듯한 그의 눈에 대한 묘사.
훗날 자라서 화두선을 하며 헤세가 묘사한 것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데미안이 준 가벼운 진동은 <길을 걸으며 왜 길을 묻는가?>라는 불교 에세이집을 읽는 동안 커다란 지진으로 발전해 나를 뒤흔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는데, 받고 나서 책꽂이 구석에 꽂아둔 채 손도 대지 않다가 1년이 넘어서야 읽은 책이다. 그 책이 나를 불교에 매료당하게 했고, 명상을 시작하게 했다. 그 책을 인연으로 대학 시절부터 교내 동아리에서 명상을 시작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건 11살 때였다. 20년 동안 한 번도 변한 적 없던 그 꿈으로부터 나를 뒷걸음질 치게 한 책은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그 책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사물들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보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써오며 소중하게 보관해 온 일기, 편지, 엽서, 성적표, 상장 등등 모든 종이로 된 나의 역사를 불에 태워버렸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그것들을 불태운 걸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차분히 떠올려보자니, 일기들 속에 내가 무슨 고민을 쏟아 놓고 어떻게 나를 다잡아 나갔었는지 다시 한번쯤 볼 수 있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마침내 나를 선방으로 끌고 다니기 시작한 책은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이었다.
서른 초반에서 마흔 초반까지 10년 내내 휴가를 통째로, 퇴근한 후, 매월 철야 정진 날 재가 선방을 다녔다. 어느 때는 기간을 잡고 아예 들어가 살기도 해 보았다. 잡념이 들끓고 잠이 쏟아져도 행복했다. 그나마 가장 연기(緣起)를 벗어난 행복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시절부터 나는 단 한순간도 '나'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꿈을 이루기 전에 내 말의 무상함을 봐버렸고, 나를 세우기 전에 나 자신의 무상함을 봐버렸다.
나는 헤세가 되고 싶었고, 펄벅이 되고 싶었고, 버지니아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무엇보다 나는 데미안이 되고 싶은 숙명을 타고났다고 나 스스로를 매긴다.
소리를 보고, 생각을 보고, 나는 무엇이든 본다. 외정(外庭)에 서서.
그 순간들이 나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왜 브런치에까지 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궁금하실 것이다.
무상한데 왜 쓰고 있느냐...?
결론만 말하자면, 써야 할 팔잔데 어쩌랴? 업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이것마저 내려놓을 수 있길 소원한다.
오래전 나에게 책을 주셨던 그분께 지금은 대답해 드릴 수 있다.
내 길이 아닌 길이기에 길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가면서 길을 만든다는 것은 옳은 말이기도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고.
그때 그 책을 주신 분은 잘 살고 계실까?
그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그분이 나의 은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 덕분에 내가 세상에 녹아들지 못해서, 물 위에 동동 뜬 기름 같은 팔자가 되었을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