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첩(禪帖) p.10
'뜰 앞의 잣나무'라는 공안(公案. 화두)이 있다.
그 옛날 조주 선사께 제자 하나가 물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조주 선사가 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제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하셨을까?'
'뜰앞의 잣나무' 공안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재미가 있고 좋아하게 되었다. 화두를 할 때마다 자주 떠올린다.
생각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을 위한 설명은 자유지만, 헛된 수고일 뿐 모든 공식과 논리가 소용없다.
나는 '뜰 앞의 잣나무'라는 공안을 매직아이(스테레오그램)에 비유하고 싶다.
힘을 빼고 보아야 보이는 것, 눈을 거두어 안으로 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직아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나의 화두는 "이것이 무엇인가?"이다. 성철 스님이 "이 머꼬"라고 하신 걸로 유명하다. 나의 경우엔 식(識)이 경계(境界)를 반연 할 때 문득,
'뭐지...........?'
하는 순간, 살짝이나마 드러나는 그것.
마치 내면의 스테레오그램을 만나는 느낌이다.
풍경이 달리 보인다.
소리가 달리 들린다.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나의 본질을 묻는데 내 눈앞에 잣나무가 있다면 나 역시 '잣나무'라고 답할 것 같다. 감히 부처라고는 말하지 못해도.
고등학교 시절 매직아이가 한때 교실에서 유행을 했었는데, 작은 종이 위의 패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면의 패턴 속에서 문득 나타나는 입체물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을 수가 없었다.
화두를 들 때의 의식을 눈이라 치면, 부주의하게 흐르던 의식이 매직아이를 할 때의 눈처럼 되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매직아이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
패턴 속 그림을 보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가? 여러 그림 중 단 하나도 못 찾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보는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만 하고 설명으로 해결해 주긴 어렵다. 그러니 매직아이가 '뜰앞의 잣나무'를 더욱 닮은 것 같다는 것이다.
나에겐 이 현상이 아직 연속적으로 지속되지는 않는데, 그건 내가 '하근기'이거나 한껏 잘 쳐준대도 '중하근기'라 그렇다. 매직아이 속 입체 그림을 보았다가도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보면 그림이 보이지 않고 다시 집중해야 하듯이, 경계(境界)를 보고 듣고 느끼는 (나의) 의식도 그렇다.
한마디로 계속해서 깨어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식(識)이 경계를 다르게 보는 순간만큼은 환희롭다.
나는 사라지고 식은 내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저 소리에 있고, 저 풍경에 있고, 저 소리가 나이고 저 풍경이 나라는 느낌.
경계가 없이는 식이 설 수 없다는 느낌.
지금 당장 내가 사라져야 한다면, 그리고 사라지기 전에 단 한 가지 남길 것을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나는 이 경험 한 가지를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