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끊지 못한 이유

참선수첩(禪帖) p.9

by 분촌

살아오며 큰 한 방이나 대단한 성취는 없었어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나 위험들을 용케 잘 벗어나며(정확하게는 위기가 나를 피해 가며) 언제나 운이 따르는 편이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운에 대해 오만해져 있었다.

마흔이 넘어가며 그제야 정착 욕구가 생긴 나는 탄탄한 기반을 잡겠노라고 선택한 것들이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며 평생 느껴본 적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가 하는 것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아마도 늘 그랬듯이 하늘이 나를 돕는다는 느낌에 의지해 부주의하고 철저하지 못하게 덤볐기 때문일 것이지만, 그땐 나에게 생긴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극도로 화가 난 나는 이제 죽어버려야 하나보다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늘에 화가 난 건지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모르게 화가 났는데, 몹시 화가 나면 겉모습은 오히려 더 차분해지는 유형이라 한 시간 후 나는 다시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들 수업을 했었다.

그날 활짝 밝게 웃으며 입으로 쉼 없이 떠드는 동안 머릿속으로 헤아려보았다.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신나게 살았고 가고 싶은 곳 많이 가봤고 깊이는 없지만 이것저것 누려볼 것 다양하게 누린 것도 같아 여한도 없으니 죽어버려야겠다 싶었는데, 피붙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걸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한 가지가 떠올랐다. 수행.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 한 가지 큰 여한이 있었다.


난 결국 내 몸을 해치지 않기로 했다.

하긴 내 몸이 무슨 죄가 있나? 따지고 보면 불쌍하디 불쌍한 것이 이 몸이다. 부모님께서는 제법 양호한 신체를 물려주셨건만, 하필 이렇게 멍청한 정신을 만났지 않은가.

그날부터 난 한 가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실로 놀라운 변화를 겪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생각을 딱딱 끊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내가 했던 생각이란, 99.9할 우습기 짝이 없는 망상 일색이고, 필요 없는 수고요 자학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나는 보았다. 그토록 끊으려고 애써도 끊어지지 않던 생각. 생각이 이토록 쉽게 끊어지다니.


처음 겪는 위기 앞에서 나는 순간순간 끔찍한 늪 속으로 빠져들었었다. 마치 구멍 난 하수관처럼 손만 떼면 악취 나는 오수가 쏟아져 나오는 식이었다. 내 정신은 공황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때 힘을 발휘한 것이 그간 해왔던 수행 내공이었다. 사실 내공이랄 것도 없이 그저 의지만 가상했을 뿐이었고, 수행의 완성이 1000 걸음이라면 나는 두어 걸음쯤 뗀 사람 정도로 자평했었다.

그토록 끊어내보고 싶던 생각이 마음만 먹으면 딱딱 끊어지는 것, 공황의 문 앞에 이르는 순간 즉시 알아채는 것, 그래서 마음의 병을 피해 가고 그 상황에서도 잠 잘 자고 평소처럼 일 잘하고 살았던 것, 밥 잘 먹고 웃으며 살았던 것... 이런 힘을 발휘한 것을 보아서는 그 두어 걸음이 그래도 정진은 정진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러니했다. 목숨을 놓고 고민할 정도의 위기를 겪고서야 발전 없이 무용하다고만 느꼈던 수행의 시간들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하지만 아이러니처럼 보일 뿐 아이러니는 아니었다. 이건 아귀가 들어맞는 두 사건의 만남이었다. 바로 눈앞까지 닥친 죽음을 직시하는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내 의지대로 생각을 끊어내는 경험을 평생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과거에 그토록 애를 써도 생각을 끊지 못했던 것은 아직 세상을 보는 눈에 콩깍지가 끼고, 사는 게 만만했기 때문이었음을 그때 깨달았다. 생각을 끊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잘 나갈 것이고, 하늘은 내편이고, 내 삶엔 아무런 위기도 없을 것이고, 나는 반영구적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사막의 모래보다 많은 살 날들이 펼쳐져 있고, 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스님을 찾아가니, 스님께선 내가 오랫동안 출가 고민을 했으면서 실행하지 않으니 마침내 그에 대한 극약 처방이 온 것이 아니겠느냐 하셨다.

그 말씀도 맞다. 아무런 위기 없이 안정된 수행 생활을 하다가 부처를 이루는 사람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하지만, 고타마 붓다도 당신 아들의 죽음을 겪었고, 당신 왕국의 멸망을 보았다. 그것도 부처를 이룬 후에.

물론 고타마 싯다르타에겐 잘못이 없었고 나의 위기는 내 탓이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겐 다른 중요한 변화들도 있었지만 수행과 관련 없고 글도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써보기로 한다.

여하간 스님 말씀대로 난 여러 가지 면에서 극약 처방을 받았다. 번다하고 질서 없던 인생 전반부의 허물이 그렇게 벗겨져나갔다면 그 자체로 하늘의 도움이라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몸은 죄가 없다.

부처는 더 죄가 없다.

그럼 죄가 있는 건?

성찰은 그 답을 찾은 데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