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첩(禪帖) p.12
산 아래에서는 속으로 덧없다, 부질없다 노래를 부르면서 핏줄들의 복을 빌러 산에 오른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어린 아들을 출가시킨 이유를 알지만 내 핏줄에게 그 무서운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죽음 앞에서 꿈은 한 번의 호흡 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린 강아지들에게 꿈이 뭐냐 물어보고 그 꿈 이루길 빌어줄 때는 마땅한 도리인 걸 알면서도 미안해진다.
아버지 정반왕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만으로도 모자라 왕위를 계승할 운명이었던 아들 라훌라의 복락까지 산통 깬 고타마는 그러나 그것이 미안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어리석어 산통만 깰까 봐 이끌어주지 못하고, 이끌어주진 못하면서도, 삶에 애착 가진 존재들이 이해하지 못할 반사회적 반예술적 문장들을 비밀스럽게 써댄다.
두 개의 이율배반적 생각은 고요한 물결 아래 숨겨진 분주한 두 발처럼 대조적이면서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지 않은' 척과 '나 역시 그런' 척을 수도 없이 하며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내면과 세상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충돌하지만 칼날을 숨겨야만 한다. 아직 칼을 잘 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