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수필

by 분촌


주말이면 산책을 한다.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책과 휴대폰을 들고,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비탈진 좁은 도로를 따라 오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도로 끝에 초등학교가 나오고, 초등학교 진입로 바로 앞에서 길은 양 갈래로 갈라진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산책로는 고리처럼 둥글게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늘 오른쪽을 택한다. 왼쪽 길에 비해 오른쪽 길은 고즈넉하다. 차도 사람도 보기 힘들다. 그 길로 접어들어 조금만 오르면 겹벚꽃 나무가 있고, 다시 왼쪽으로 돌면 넓지만 텅텅 빈 차도가 나온다.

올해 초, 설을 쇠고 볕이 따뜻해지려는 겨울의 막바지에 이 동네로 이사 왔다. 이사를 온 지 일주일이 되던 주말, 보드랍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뒷산으로 향했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푸른 산기슭에 자리한 동네라, 공원이 아니어도 조금 더 오르면 산책할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책로를 찾은 것 같긴 했으나 넓은 차도에 이르러서는 더 오르지 못하고 되돌아왔었다. 인적이 없는 저녁 어스름이었고, 넓은 차도 끝에는 숲이 보여 괜히 겁이 났다.

나는 일주일 후 다시 산책에 도전했다. 햇살이 밝고 따스한 3월의 오후였다. 넓은 차도 끝까지 걸어가니 왼쪽으로 좁은 산책길이 나왔다. 길의 왼쪽은 골짜기 가득 밭들이 펼쳐져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숲이었다. 길과 텃밭의 경계는 사철나무와 아까시나무, 커다란 벚나무와 전나무, 아기단풍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길 끝에는 아주 작은 운동 공원이 있는데, 벤치 세 개를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해 놓았다. 그 아래로는 홍차를 파는 찻집이 있어 이따금 차들이 오가곤 했고, 운동공원 뒤쪽으로 등산로가 있어 인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 겁을 먹었던 숲길은 상상했던 것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나의 기준으론 매우 이상적인 산책로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첫 산책 때부터 이 길에 반해버렸다.

산책로 중간쯤엔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 있었다. 시멘트가 깔린 길 보다는 오솔길을 걷고 싶어 나는 매번 그 길을 걸었다. 오솔길 양쪽으로 작은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서, 때가 되자 벚꽃이 만발했다. 산책길엔 내내 꽃비가 내렸고, 벚꽃이 만개한 내내 꽃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었다. 숲 속 오솔길에서 꽃비를 맞으며 걸을 땐 한 번으론 아쉬워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벤치에 다다르면 벤치 위에 커피와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따금 나도 모르게 자연에 취해 명상에 빠진다. 이곳에 있노라면 노력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명상에 들게 된다.

등산로 옆으로 커다란 오동나무가 서 있다. 5월이 되자, 바로 머리 위쪽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산촌인 고향에서도 뻐꾸기와 그렇게 가까이 있어본 적은 없었다.

아름다운 날씨가 이어지는 늦봄, 골짜기에는 밭마다 주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한 해 농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괭이로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워 구멍을 뚫고, 구멍 안에 작은 모종을 넣어 심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을 보는 것 역시 즐거움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고향을 그대로 옮겨다 준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일하는 사람들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엿보기도 했다.

몇 주 동안 도시 농부들이 분주하고도 즐겁게 농사를 짓는가 싶더니, 어느 새 밭마다 깔끔하게 새 단장을 마쳤다. 그 이후로는 매주 훌쩍 자라있는 채소들을 볼 수 있었다. 콩, 고구마, 파, 배추, 감자, 부추, 고추, 호박, 열무,……. 없는 게 없었다.

농사란 생계를 위해 짓다 보면 즐길 틈이 거의 없다. 내가 어렸던 시절엔, 농번기가 오기 전에 캐는 냉이나 달래, 농번기가 끝나고 꺾는 고사리나 산나물 채집은 농촌 아낙들의 즐거움이 될 수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 억척으로 해야 했던 농사일은 양부터 사람의 육신을 혹사하는 중노동이므로 즐기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도시 농부들은 분명 농사를 즐거운 놀이처럼 여기고 있었다. 텃밭 농막에 자식들을 불러, 기른 채소를 나누어 주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주는 부모도, 받는 자식도 얼마나 즐거울까?

시골 출신인 나에게 뒷산 산책로는 이렇듯 보고 듣고 즐길 것이 천지여서 나는 한 번 올라갔다 하면 내려올 줄을 모른다. 벤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등산객들과 운동하는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리며 지나간다. 그럴 법도 하리라. 대부분이 바쁘게 지나갈 뿐인 곳에서 커피를 옆에 두고 책 읽는 여자라니……. 하지만 그 시선들은 경계의 의미가 아니어서 불쾌하지가 않다.

장마철 빗줄기가 강할 때는 산책을 걸렀다. 장마가 물러간 후 보고픈 사람을 만나러 가듯 허겁지겁 땀을 흘리며 뒷산으로 올랐다. 통과 의례처럼 오솔길로 접어들려고 하니, 언제 몰려왔는지 초록 병사들이 소복하니 서서 내 앞을 막아섰다. 발을 디밀어 보려는데 초록 병사들이 틈을 내주지 않았다. 오솔길도 사계절 중 한 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오솔길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돌아 나왔다. 수풀 밑으로 자취를 감춘 채 드넓은 대지의 일부로 돌아가 쉬고 있을 오솔길을 그리며, 여름 내내 시멘트 깔린 산책로를 걸었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식어가는 늦은 오후, 하늘에는 갖가지 모양의 구름들이 흐르고, 전봇대 전깃줄에는 참새 떼가 긴 줄을 지어 앉아 오랫동안 쉬다 날아갔다. 산봉우리 가까이 암자에선 저녁 예불 종이 울리고, 법당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여름의 막바지엔 아기 조막만한 밤송이 하나가 익지도 못한 채 길 위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밤나무가 있었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또 다른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한 달 쯤 지났을 때 밤나무 아래엔 갈빛 밤송이들이 쌓여있었다. 모두 입을 한껏 벌리고 알맹이는 도둑맞은 채.

실로 없는 게 없는 산책로이다. 가을이 날을 더해 가면, 잎이 떨어지고 텃밭마다 수확이 끝날 것이다. 바람이 차지면 오솔길도 다시 문을 열어 주리라.

내려오는 길은 늘 아쉬워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한다. 올라올 때보다 여유를 부리며 느긋하게 텃밭 구경을 하며 내려간다. 밭 울타리에 심어놓은 봉숭아는 내 허리만큼 키가 자라있고, 줄기는 어린 나무만하다. 여린 열무가 오밀조밀 자라는 밭을 지나며 입에 군침 도는 것을 느낀다. 먼 산을 바라보면 볕은 동쪽 산봉우리에 올라앉아 있다.

휴식과 맑은 공기와 추억과 눈을 씻어주는 초록 자연이 있는 곳이자, 절로 명상이 되는 곳이며 스스로 배워오는 곳이다.

풀과 나무가 씨앗을 내고 자라는 것을 보노라면, 스스로 능력을 과신하는 우리 인간들의 오만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한편 자연을 거스르기도 하고 자연을 흉내 내기도 하는 인간의 능력을 떠올리며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예술로써 자연을 흉내 내고, 과학으로써 우주의 능력을 흉내 내는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면서도 가장 자연을 닮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부처를 이룰 수 있다 한 것일까?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겸허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인간은 만류의 영장’이라는 옛사람들의 식견을 비웃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르게 쓰면 되고, 오만하지 않으면 된다. 우주 앞에 겸손하기만 하다면,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