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못

by 분촌

이 세상에 인간이 생겨나 무리지어 산 이후, 조선 백성들만큼 달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민족은 없었다. 조선 백성들에게 달은 생명의 시작이자 생명이 돌아갈 곳이었다. 달 또한 그런 조선 백성을 매우 어여삐 여겼다. 달과 조선 백성들의 오랜 믿음과 사랑은 서로를 잇는 생명의 끈이나 마찬가지였다.

달은 하늘 아래 호수 중 가장 깊은 산중에 있는 호수를 찾아가 쉬곤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본래 하늘과 땅의 영물들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늘 인간의 눈을 속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달이 조선의 호수를 자주 찾은 것은 그나마 조선 백성들이 자신에겐 안전한 사람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사람의 눈에 띈다 하더라도 조선 백성이라면 뒤탈이 없을 것으로 여겼는데, 달의 믿음처럼 두어 번 모습을 들켰지만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소문이 퍼지자 달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을 뿐이었다.

환웅 이래 조선의 단군들이 이천 년 동안 자애와 덕으로 나라를 이끌다 멸망하자, 조선의 후예들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산과 강, 얕은 바다와 깊은 바다, 비옥한 땅을 모두 갖춘 남쪽 땅에 이르자, 사람들은 저마다 촌락을 이루어 살았다. 촌락들이 모여 소국이 되고, 소국이 모여 연맹체를 이루었다.

가장 먼저 내려와 비옥한 서쪽 땅에 뿌리를 내린 조선의 후예들이 서로 연합하여 마한 연맹체를 이루었다. 나중 내려온 조선 유민들은 동쪽 땅과 남쪽 땅에 정착하여 각각 진한변한 연맹체를 이루었다. 달 또한 조선의 후예들을 따라 쉴 곳을 삼한 땅으로 정하고, 삼한 땅 곳곳의 아름다운 호수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달이 지친 몸을 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새벽이었다. 하얀 달집은 하늘에 남겨둔 채 정령만이 황금빛의 모습을 하고 내려와 고요히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면 호수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환하게 숲을 밝혔고, 호수의 물결은 눈부시게 빛났다.

하루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면, 잠에서 깨어난 달은 아주 느릿하면서도 고요하게 몸을 물 밖으로 내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완전히 빠져나오는 동안, 수정 구슬 같은 물방울들이 떨어지며 숲 속은 신비한 음악소리로 가득했다.

달은 다시 커다랗고 둥근 모양의 황금빛으로 돌아와 둥실둥실 하늘 높은 곳, 까만 어둠 속 달집을 향해 떠올랐다. 찬란한 달빛은 삼한 땅을 넘어 또 다른 조선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북쪽 나라들을 비추었고, 육지 밖 먼 바다의 섬들까지 환한 빛으로 감쌌다. 어둠을 밝혀주는 고귀한 달로 인해 조선의 후예들은 어둠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아늑하고 은은한 달빛에 취해 잠드는 것을 크나큰 복으로 여겼다.

진한 사로국의 부리산 달못에서 달은 백성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달못’이라는 이름은 달이 그곳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 부리마을의 옛 촌장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달못은 거울보다 맑고 하늘처럼 깨끗했다. 달못의 물은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물의 온도가 날씨와 반대로 변하였다. 무더운 여름에는 얼음처럼 시원했고 추운 겨울에는 화로에 데운 듯 따뜻했다. 먼 길을 찾아 온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시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를 거뜬히 이겨 낼 수 있었다. 백성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한 행운은 사로국의 백성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 사로국의 왕 유리 이사금이 가까운 열한 개 소국들과 연맹을 맺은 후, 다른 소국들에서도 끝없는 발길이 이어졌다. 달못의 물은 진한의 백성들 모두에게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수백 년 동안 진한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도 있었지만 백성들은 자신들의 터전과 삶에 만족했다. 살림은 점점 더 풍성해졌고, 백성들이 꿈꾸는 내일은 늘 밝았다. 고을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풍속은 온화하고 인정이 넘쳤다. 신분은 다양했지만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으며, 생명을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사로국의 열두 번째 임금인 첨해 이사금에 이르자, 백성들의 평화롭던 삶에 서서히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