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암흑의 시작

by 분촌

달이 묻힌 지 일 년이 넘었다. 화령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첨해의 건강은 하루하루 쇠약해져갔다. 왕비를 잃은 슬픔에 더하여 진한의 형편까지 몹시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진한에는 괴이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전염병이 돌아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가 하면, 오랜 가뭄 끝에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살 길을 찾지 못한 백성들 중에는 무장을 하고 도적떼가 되는 이들도 있었다. 진한 여기저기에서 약탈과 살상이 벌어지고, 바닷가 마을은 왜구의 침범이 잦아졌다.

수백 년 간이나 이어져오던 평화는 불에 타들어가는 마른 풀처럼 순식간에 사그라져버렸다. 진한의 모습은 마치 별빛 하나 비쳐들지 않는 캄캄한 숲 속 같았다. 그러나 철모르는 아로는 나랏일에 서툴렀고, 다른 소국의 군장들에게도 이러한 위기는 처음 겪는 시련이었다. 첨해는 한꺼번에 닥친 불행이 몹시 힘에 겨웠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방으로 죽현을 불렀다.

“숙부, 나는 몹시 두렵습니다. 이런 날들이 올 줄은 몰랐어요. 풍요롭던 진한에 먹을 것이 없어 백성들이 죽어갑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첨해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죽현은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했다.

“이사금이시여, 달님을 구해주십시오. 이 모든 불행들은 달님이 묻히신 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달님을 풀어줘요? 하늘이 내린 형벌에 우리가 어찌 감히 손을 댄단 말입니까? 그건 안 됩니다.”

첨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주십시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말입니다.”

“저는 달님이 하늘의 형벌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달님이 무슨 죄를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군가 달님께 억울한 누명을 씌워 해쳤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죽현은 고개를 들어 첨해의 눈을 바라보았다. 죽현은 지난 일 년 동안 첨해를 의심해오고 있었다. 첨해는 당황하여 급히 죽현의 눈길을 피했다.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첨해는 겨우 입을 떼었다.

“조선의 후예들이 달님께 누명을 씌우다니요? 그건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천둥 벼락이 치고 흙비가 사흘이나 밤낮없이 내리지 않았습니까? 진한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짜내어도 시간이 모자라거늘, 숙부께서는 그런 불필요한 의심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하늘의 형벌이 끝나면 달님은 당연히 풀려나실 겝니다. 돌아가셔서 백성들을 살릴 해결책이나 마련해 보세요.”

죽현은 계속해서 첨해의 눈을 쳐다보았지만, 첨해는 끝내 죽현의 눈을 마주보지 못했다.

“달님이 묻히신 이후, 저는 매일같이 나랏일을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어리석어 오직 달님만 기다릴 뿐, 다른 방법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사금을 받들어 나라에 쓰일 그릇이 되지 못하니, 서불한의 품계를 내려놓고 소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죽현은 첨해에게 절을 올린 후 물러났다. 첨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방을 나가는 죽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죽현은 힘없이 뜰을 지나 궁궐 문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한없이 슬퍼보였다.

혼자 남은 첨해는 정신이 아득하고 막막하였다. 조금 남아있던 기력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첨해는 호랑이 숲에 혼자 버려진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죽현의 눈빛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숙부는 알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 눈치 챘을 게야. 어려서부터 사리판단이 영특했으니.’

첨해는 또다시 그런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왕족과 귀족들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 나는 누굴 의지하지? 우리 아로는? 누가 아로를 지켜주나?’

첨해는 불에 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고 방안을 맴돌았다. 그러다가도 문득,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 털썩 주저앉아 마음속으로 신세 한탄을 했다.

‘내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꼬. 나는 이 나라의 아비가 아닌가. 한낱 딸자식의 영화를 위해 달님을 해치고 내 백성들의 생목숨을 끊어놓고 있구나.’

첨해는 갈피가 잡히지 않는 고뇌들에 사로잡혀 온종일 밥 한 술조차 뜰 수 없었다. 그러다 불현 듯 오래 전 자신과 화령에게 도움을 준 가리촌의 예언자가 뇌리에 스쳤다. 그제야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는 도후를 불렀다.

“도후야!”

도후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전에 실직국에서 왔었던 예언자를 기억하느냐?”

“발천이라는 자 말이옵니까? 발천이 온 날은, 제가 열세 살이 되었다고 이사금 마마께서 새 옷을 지어주신 날이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첨해는 따뜻한 눈길로 도후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작은 일까지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니, 고맙구나.”

“그 예언자를 데려올까요?”

“그래. 중요한 것을 상의해야 하니 오늘 당장 떠나거라.”

도후는 머리를 조아리더니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