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파묻힌 달

by 분촌

외인들이 달못에 오른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새벽이었다. 온 나라는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달못가 숲 속 여기저기에는 외인들이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달이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난 산새 몇 마리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오늘도 틀린 것 같구나.”

왕실 호위무사인 도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곁에 있던 부하들에게 말했다.

“밤새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고 달님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어두우면 동트는 걸 놓치기 쉽지. 까딱하다간 들킬 테니 지금 내려가는 게 좋겠다.”

도후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오른손을 치켜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칠흑 같았던 숲에 빛이 비추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외인들은 나무에 기대어 졸고 있던 옆 사람을 깨우며 놀란 눈으로 빛을 좇았다. 모두 나무와 풀숲에 몸을 숨긴 채 달의 정령 선아가 내려오는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았다.

과연 선아는 구름 위 선경의 여인이었다. 꿈에서도 그토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다시 보지 못 할 것 같았다. 선아를 품은 빛은 달못의 물과 하나가 되어 황금빛의 여린 살처럼 변해갔다. 마침내 빛과 물의 화합이 끝나자 달못 속에는 크고 둥근 달이 생겨 있었다.

도후와 부하들, 외인들은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감히 임무를 수행하려는 자가 없었다. 도후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그는 화령 부인의 명을 떠올리며 이를 꽉 물었다. 마침내 도후는 손을 들어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하들은 다시 외인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러나 외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앞장서려 하지 않았다. 이를 본 도후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곤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금은과 옥구슬을 잔뜩 움켜쥔 채 외인들을 향해 높이 치켜들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다시 매섭게 변했다. 그들은 한 손에 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무사들의 손짓에 따라 일시에 달못을 향해 뛰어나갔다. 천 개의 창이 달못 속으로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창끝이 달의 몸에 꽂혔다.

막 잠들려던 달이 깜짝 놀라 깨어났지만, 도망을 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눈부시게 찬란하던 황금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달은 하얗게 질린 채 온 몸에 날카로운 고통을 느꼈다.

이번엔 흙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 명의 사람들이 그동안 쌓아두었던 흙을 달못에 쏟아 넣고 있었다. 달못은 점점 작아지더니 금세 작은 연못으로 변하고 말았다.

내내 결연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던 도후의 눈빛은 어느새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이를 꽉 깨물고 있었지만 핏기 가신 두 볼은 죄책감과 비통함으로 자꾸만 떨려왔다. 다만 칠흑 같은 어둠이 그의 얼굴을 숨겨주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뿐이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끝마친 후, 사람들은 한마디 말없이 달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손으로 찌르고 묻어버린 달 앞에서 천 개의 입은 할 말을 잃었고 그들의 손발은 할 일을 잊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는 곧 억수같이 변했다. 고함 같은 천둥소리가 부리산을 뒤흔들었다. 창백한 흰 빛으로 변해버린 달 위로 비가 쏟아졌다. 그것은 흙비였다. 달못을 뒤덮은 흙비는 피처럼 붉었다. 번쩍이는 번개 속에서 핏빛 물이 달못을 넘쳐 나올 듯 요동쳤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 몸을 떨었다. 그들의 눈에 그 물은 달이 흘린 피였고 천둥 번개는 하늘의 노여움이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곧 그들은 엎어지고 미끄러지며 산 아래를 향해 달음질쳐 사라져버렸다.

달은 고통 속에 홀로 남았다. 조선의 후예들을 따라 삼한으로 내려온 달. 그 몸은 천 개의 창에 찔린 채, 영영 삼한의 흙속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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