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집밖으로

by 분촌

달모시가 부리산에 온 지 일곱 해가 지났다. 달모시는 무럭무럭 자라 개구쟁이 소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었다.

때로 달모시는 숲속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온 숲속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아보고 싶었다. 어떤 날은 손도, 발도, 엉덩이도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이 너무 갑갑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밤이면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오두막에는 먹을 것이 넘쳐났지만, 언제나 마음 한쪽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커다랗고 검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달모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달려 나가는 것도, 숲속을 마음껏 누비는 것도 금지되었다. 갑갑한 마음을 시원하게 터뜨리는 일도 없었다. 대신 마음속에다 그 모든 걸 꾹꾹 눌러 감추고 참아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아침, 미설이 부리산을 벗어나 조금 멀리까지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날이었다. 달모시는 미설이 없는 틈을 타, 몰래 집밖으로 나가보기로 결심하였다.

미설이 약초 망태를 어깨에 걸머지고 지팡이를 짚으며 사라지자, 달모시는 먼저 신선과 나무의 잎을 한 움큼 땄다. 그리고 마당가 울타리 밑에 자라고 있는 토끼풀을 잔뜩 뜯었다. 토끼풀을 뜯어 먹던 잿빛 토끼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달모시를 쳐다보았다. 달모시가 신선과 나무 그늘에 앉자 토끼도 깡충깡충 뒤따라가 앉았다.

달모시는 토끼풀 줄기를 꼬아 띠를 만들고, 띠의 틈새에다 보랏빛이 감도는 신선과 나뭇잎을 꽂았다. 작은 띠는 머리에 두르고, 조금 큰 것은 어깨에다 둘렀다. 그리고 난생 처음 혼자서 집을 나섰다. 토끼가 잠시 귀를 실룩이며 쳐다보더니 곧 달모시를 따라 뛰어갔다.

울타리를 벗어나 잠시 걸으니 칡넝쿨이 늘어뜨려진 비밀 입구가 나타났다. 달모시는 커다란 초록 발을 쳐 놓은 듯 축 늘어져있는 칡넝쿨을 양 손으로 살며시 걷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매일 가는 길이었지만, 미설 없이 혼자서 가려니 처음 가보는 길처럼 낯설고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다.

칡넝쿨을 지나니 자욱한 안개가 눈앞을 가렸다. 달모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토끼야, 토끼야!”

달모시는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걱정이 되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토끼를 불렀다. 토끼가 달모시 발 앞에 와 귀를 쫑긋거리며 쳐다보았다.

“길을 좀 찾아 줘.”

달모시는 또다시 속삭였다. 토끼가 깡충깡충 앞으로 나아갔다. 달모시는 토끼의 커다란 귀를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허리를 굽힌 채 따라갔다. 조금 따라가니 마침내 안개가 사라지고, 달못까지 가는 길이 보였다. 새벽마다 미설의 손을 잡고 걷는 오솔길이었다.

오솔길의 풀숲은 여름이면 늘 이슬에 젖어있고, 겨울이면 하얀 서리가 내려 있었다. 달모시는 마른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늘 희뿌옇게 동이 틀 무렵 달못으로 가서, 햇빛이 숲속을 환히 비추기도 전에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이슬이 마른 길을 걷고 있었다. 보송보송 마른 흙을 밟고, 물기 없는 부드러운 풀잎에 발이 스치자, 달모시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달모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머니께 가도 괜찮을까?’

그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내가 혼자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할아버지께 다 말해버리실 거야. 그럼 다신 혼자 밖으로 못 나올 거야.’

달모시는 발길을 돌려 반대편으로 갔다. 깊은 숲속까지 걸어 들어간 달모시는 사슴, 산양, 토끼와 뛰어다니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 실컷 풀숲 위를 뒹굴고, 제 손으로 직접 산열매를 따서 배불리 먹기도 했다. 달모시는 숲속의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달모시는 앞으로도 미설이 없는 날마다 외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먼발치에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무지개가 문제였다. 달모시는,

“호이오-, 호이오-!”

하고 미설의 흉내를 내어 무지개를 불렀다. 나무들 속 어딘가에 앉아있던 무지개가 포르르 날아왔다. 달모시는 검지를 들어 올려 무지개가 앉을 수 있게 해주었다.

“할아버지껜 비밀이야. 알았지? 집에만 갇혀 있으려니 돌아버릴 것 같단 말이야. 너도 내 편이 돼 줄 거지?”

딜모시가 묻자, 무지개는 짤막하게 ‘호이오, 호이오.’ 대꾸하곤 달모시의 눈을 빤히 마주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군. 어쨌든 믿을게, 무지개. 배신하기 없기다.”

달모시가 으름장을 놓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지개는 아무런 대꾸 없이 눈만 깜빡이며 두리번두리번 딴청을 피웠다.

그 날 이후, 달모시는 미설이 집을 비우는 날이면 온 숲속을 자유롭게 달리며 가슴이 뻥 뚫릴 때까지 실컷 놀았다.

그러나 무지개가 있는 이상, 미설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무지개는 미설의 명령을 첫 번째로 따르는 새였고, 미설은 달모시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려달라는 명령을 내려 둔 터였다.

미설은 모든 걸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 척 해주었다. 달모시가 얼마나 갑갑해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모시를 믿은 때문이기도 했다. 달모시는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달모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만 놀았다. 그래서 미설은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