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모시는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주 외로움이 밀려왔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달과 미설, 착하고 귀여운 친구들이 있었지만 자꾸만 사람이 그리웠다. 죽현과 양질, 양적은 늘 밤에 와서 이른 새벽에 떠났다. 세 사람이 왔다 간 날은 하루 종일 사람들이 사는 산 아래 세상을 상상하며 울적해지곤 했다. 양질과 양적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세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아무도 자신과 미설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을 달모시는 자라면서 조금씩 깨달아갔다.
산 아래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커져갈수록, 미설 몰래 밖에서 노는 것도 시들해져갔다. 달모시는 점점 조심성이 없어지고 겁도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달못 근처에 숨어 사람들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른들을 따라온 아이들이 있는 날엔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그곳으로 달려가 함께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달모시는 밤마다 아이들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달모시는 마침내 조금씩 사람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기도를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몰래 뒤쫓아 산 아래까지 내려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 날이었다. 달모시는 여느 때처럼 달못 근처 바위에 몸을 숨기고 사람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날도 사람들은 달에게 꽃을 바치며 소원을 빌고 있었고, 아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 중에는 작은 여자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여자 아이는 들꽃을 따느라 달못 주변을 혼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달모시가 숨어있는 바위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여자 아이는 문득 처음 맡아보는 향기에 끌려 몸을 일으켰다. 여자 아이가 향기를 따라 걸어간 곳은 달모시가 숨어있는 바위였다. 여자 아이가 가까워질수록 달모시의 심장은 마구 방망이질 쳤다. 하지만 더는 몸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마침내 여자 아이가 바위 뒤쪽에 웅크리고 있던 달모시와 마주쳤다. 달모시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자 아이가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소리에 달모시의 놀란 눈도 더욱 커졌다.
“넌 누구니?”
여자 아이가 물었다. 달모시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두 눈만 껌뻑였다.
“난 재리라고 해. 부리마을에 살아. 넌 어디에서 왔니?”
여자아이가 다시 물었지만, 달모시는 입술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두 사람을 발견한 여자 아이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너는 누구니? 어디에서 왔니?”
달모시는 머뭇거리며 한 손을 들어 숲속을 가리켰다.
“숲속에서 산단 말이니?”
여자 아이의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하며 달모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긴 머리는 말꼬리처럼 질끈 묶었고, 온몸에는 처음 보는 나뭇잎을 잔뜩 꽂고 있었다. 머리띠에는 보랏빛이 감도는 잎이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가장 신기한 것은 달모시에게서 풍겨 나오는 향기였다. 매일 신선과를 먹는 달모시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꽃이나 과일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향기였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에 감탄한 듯 여자 아이의 어머니는 코를 킁킁 거렸다.
“이런 향기는 처음 맡아보는구나. 이 나뭇잎에서 나는 향기니? 이 나뭇잎은 어디에서 났니?”
근처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집이 달못 근처에 있다고?”
“부리산에 사람이 산다니, 금시초문인데?”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마디씩 하였다. 그러다 문득, 달모시에게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마음 속 근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흉년과 전염병, 전쟁에 대한 슬픔을 잠시 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달모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모시는 자신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당황했다. 작은 여자 아이가 손을 꼭 잡아주자, 달모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행복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짙은 안개가 달못 주변에 자욱하게 깔렸다.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허둥대는 사이, 어디선가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다가와 달모시를 태우고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호랑이가 사라진 후 안개는 순식간에 걷혔다. 사람들은 달모시가 사라진 것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다음 날, 달모시에 대한 이야기는 아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아로가 아침식사를 끝낼 즈음, 부리마을에 있는 별궁 하인 하나가 궁궐로 들어와 서리를 찾았다. 별궁 하인을 만나고 돌아온 서리가 아로에게 고했다.
“마마, 별궁에 드나드는 일꾼 중에 재리어멈이라는 바느질아치가 있사온데, 그 여인이 어제 달못에서 이상한 아이를 보았다고 하옵니다.”
서리는 하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초지종 아로에게 전하였다.
“달못 근처에 사는 것도, 열 살 남짓 된 것도, 모든 사실이 그 아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사옵니다. 그 아이가 분명하옵니다.”
아로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길선이 나를 속였구나. 어쩐지 이상했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게 너무나 이상하지 않았니? 제물이 살아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더니 아로는 갑자기 감격에 겨운 듯 떨리는 목소리가 되었다.
“일을 바로잡을 때가 되었구나. 망가졌던 모든 걸 되돌리고 이사금을 향한 백성들의 사랑이 넘치게 할 거야. 더 강한 사로를 만들고 진한을 통일할 거야. 영토를 넓혀 더 풍요로운 왕국을 만들 거야. 하늘이 이제야 나에게 어엿한 군주의 모습을 허락하시려나봐. 서리야, 지금 당장 별궁으로 떠날 차비를 해다오!”
아로의 목소리는 희망과 기쁨으로 떨렸다. 머지않아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면서도 아로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도후에게 일러라. 부리산의 일이 끝나면, 즉시 길선을 잡아 들여 처형할 것이다. 그 교활하고 간사한 자를 더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서리가 머리를 조아린 후 방을 떠났다.
아로는 힘차게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름 아침의 싱그러운 공기가 몸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정원의 보리수나무 가지에 하얀 뱁새 두어 마리가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아로는 작고 귀여운 뱁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맑은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