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켜버린 달모시는 미설로부터 가혹한 벌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아침마다 달에게 인사를 가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참을성 많은 달모시였지만,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달모시는 미설을 향해 거칠게 대들었다.
“왜죠, 할아버지? 왜 저는 사람들과 같이 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해요?”
“사람들이 너를 보면 네 목숨이 위험해지게 돼!”
“동물들은 마음대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저는 사람인데도 사람을 만나면 죽는다고요? 평생 이렇게 할아버지랑 동물들이랑 살라고요? 저는 왜 사람 어머니가 없어요? 왜 호수에 파묻힌 달님이 제 어머니죠? 할아버진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그냥 숨으라고만 해요.”
달은 목이 메어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렇게 사느니 사람들한테 잡혀서 죽는 게 낫겠어요!”
달모시는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전에 보아 둔 작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잿빛 토끼가 따라와 귀를 쫑긋거리며 달모시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미워. 난 사람인데 왜 사람들을 만나면 안 돼? 왜 위험하다는 거야? 이유도 모르고 난 언제까지 이렇게 갇혀서 살아야 하니?”
눈물에 젖은 얼굴로 토끼를 쳐다보았지만, 토끼는 귀만 쫑긋거리다 달모시 다리께로 와서 얌전히 앉았다. 그리곤 달모시의 종아리에 가만히 제 머리를 붙였다. 달모시는 훌쩍이며 토끼에게 속삭여보았다.
“왜 그런지 너는 아니?”
해가 져서 숲속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달모시는 집으로 갈 생각도 하지 않고 토끼의 부드러운 털만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동굴 앞 계수나무에는 무지개가 따라와 앉아있었다. 무지개는 꼼짝 않고 앉아서 달모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숲속에 내린 어둠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할 무렵, 동굴 앞에 달모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달모시는 동굴 앞에서 잠시 달못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잠시 후 달모시는 길을 벗어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것을 지켜 본 무지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달못을 향해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그날 저녁, 미설은 달모시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혼자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지만 괴로워하는 달모시를 언제까지나 가두어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설은 달과 의논을 하기 위해 달못으로 갔다.
“달모시가 몹시 힘들어 하는군요.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미설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저만큼 자랐으니, 내보내면 어떨까요?”
물속에서 달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왔다.
“아직 어려서 마음이 놓이질 않아요. 사람들이 묻는 말에 실수라도 했다간 목숨이 위험해지게 되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으련만. 달모시에겐 그 몇 년이 수십 년 같겠지요.”
미설이 대답하자, 달의 고운 목소리가 다시 울려나왔다.
“달모시에게 칠 년 전 이야기를 해주는 게 어떨까요? 자신이 왜 숨어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 견디는 것이 조금 덜 힘겨울 지도 몰라요.”
미설은 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오. 이젠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미설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무지개가 날아와서 미설의 어깨에 앉아 무어라 재잘거렸다. 무지개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미설이 외쳤다.
“뭐라고? 달모시가 마을로 내려가고 있다고?”
“어서 막아야 해요! 마을은 위험해요!”
달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문득 미설의 눈에는 기이한 환영이 보였다. 까만 어둠 저 편에서 빛의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그 회오리의 끝에서 눈부신 빛의 덩어리가 불쑥 빠져나오는 장면이었다. 두 눈을 멀게 할 만큼 환한 그 빛은 가벼운 깃털처럼 검은 밤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다. 자꾸만 자꾸만 떠오르며 빛의 환영은 서서히 사라졌다. 걱정으로 찌푸려져 있던 미설의 미간이 풀렸다. 미설의 두 눈은 놀라움과 기쁨이 묘하게 뒤섞여 빛났다. 희미한 달빛을 머금은 흰 두 눈썹은 미설의 얼굴을 유난히 평온해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달님, 방금 환영을 보았습니다. 때가 온 것 같아요. 달모시의 길을 막지 맙시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달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달모시를 한 번 믿어 봅시다. 무지개를 시켜 뒤를 살피게 하겠소.”
미설의 말에 달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만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달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미설의 말씀이니 믿겠어요.”
달의 말이 끝나자, 나무 그늘 속에서 무지개가 기다렸다는 듯 날아올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