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로의 덫

by 분촌

달모시는 전에 보아 두었던 산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칠흑 같은 밤길을 밝혀주진 못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나뭇가지에 얼굴과 팔이 긁혔지만 달모시는 상관하지 않았다. 마을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빛이 없는 밤길을 걸어가려니 끝도 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달모시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전에도 몇 번인가 사람들의 뒤를 밟아서 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저 먼발치에서 엿보았을 뿐, 마을 속으로 발을 내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둠에 묻힌 마을은 너무나 깜깜하여 달모시가 마음 놓고 돌아다녀도 들킬 염려가 없어 보였다.

먹물처럼 까만 마을과는 다르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엔 하늘의 별들이 땅위에 내려앉아 모인 듯 찬란한 빛이 번져 있었다. 달모시는 그곳에 마음이 빼앗겨,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불빛이 대저택을 밝히고 있는 등불이란 것을 깨달았다. 저택은 부리산의 오두막 수십 채를 합쳐놓은 것보다 컸고, 수많은 등이 집 둘레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저택은 까만 어둠 속에서 별천지처럼 홀로 빛나고 있었다. 희미한 한 줄기의 빛조차 보이지 않는 마을과 화려하게 빛나는 대저택은, 마치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다른 세상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달모시는 불빛이 찬란한 저택을 향해 이끌리듯 걸어갔다. 저택이 가까워 오자, 난생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소리가 새벽 공기 속을 흐르고 있었다. 달모시는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 수 있을까? 달모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소리는 답답했던 가슴을 씻어주는 듯 시원했고 기분까지 유쾌하게 만들어주었다. 무언가 줄을 튕겨서 내는 소리 같았는데, 어떤 재주가 있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감격에 겨웠다. 달모시는 홀린 듯이 담장 아래 쪼그려 앉았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지친 달모시는 저택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새벽이 오고, 먼동이 터 올 때까지 달모시는 담벼락에 기대어 곤히 잠을 잤다. 동쪽 산 위로 햇살이 비추일 무렵, 무지개가 달모시를 깨우기 위해 짧은 외마디 소리로 짖어대었다.

대문 안에서 마당을 쓸던 하인 한 명이 이 소리를 들었다.

“웬 꾀꼬리가 이렇게 울어댈까?”

하인이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담장 아래 쓰러져 있는 달모시를 발견한 하인은 깜짝 놀라 다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하인은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인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서리였다. 서리는 달모시를 흔들어 깨웠다.

“얘야, 아가!”

달모시는 부스스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이 달모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은 색깔이 곱고 감촉이 보드라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달모시를 깨울 때 달모시의 얼굴에 소매 끝이 닿았다. 달모시는 신기하여 여인의 얼굴과 옷차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서리가 물었다.

“너는 못 보던 아이구나. 어디에서 왔니?”

그러나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던 달모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서리는 달모시를 일으켜 집안으로 데려갔다.

커다란 대문 안에는 넓은 정원이 있었고, 그 정원을 지나 또 다른 문 하나를 통과하자, 작고 예쁘게 가꾸어진 또 하나의 정원이 나타났다. 서리는 달모시를 데리고 그곳에 딸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하인에게 시켜 밥을 차려오게 했다.

달모시는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갖가지 반찬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리가 달모시의 손에 반짝이는 은 숟가락을 들려 주었다. 달모시가 밥을 한 술 뜨자, 손수 반찬을 집어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달모시는 숟가락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맛이 기가 막혔다.

서리는 달모시가 밥을 먹는 동안, 달모시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손과 얼굴에는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들이 있고, 옷 여기저기에는 풀잎과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런데도 달모시의 몸에서는 기분 좋은 향기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서리가 한껏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밤새 길을 걸어온 모양이구나?”

달모시는 대답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너에겐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가 나거든. 넌 어디에서 온 거니? 네 이름은 뭐니?”

서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전 산에서 왔어요. 이름은 달모시고요.”

너무나 맛있는 음식에 정신이 팔려, 달모시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답했다.

“달모시라……, 달못…….”

서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얼굴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고운 이름이구나. 산 속에 너의 가족과 집이 있니?”

달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다 혼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니?”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요.”

입 안 가득 밥을 우겨 넣은 달모시가 대답했다.

“꼭 사람들과 살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방금 넌 가족이 그곳에 있다고 했는데…….”

“가족은 있지만 보통 사람들하곤 달라요.”

서리의 얼굴에 또다시 엷은 미소가 스쳤다.

“그럼, 너의 가족은 사람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니?”

달모시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사람들을 절대 만나지 말라던 미설의 불호령이 떠올랐다.

서리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서리는 달모시가 밥을 다 먹길 기다려 상을 물리게 했다. 그리곤 하인들을 시켜 목욕물을 받게 하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켜주도록 했다.

목욕을 하는 동안에도 달모시의 몸에서는 신비한 향기가 끊이지 않고 배어 나왔다. 목욕을 시키던 하인들은 세상에 태어나 이런 향기는 처음 맡아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목욕이 끝난 후 하인들은 달모시에게 깨끗한 새 옷을 입혀주고 머리도 곱게 빗어주었다.

말끔하게 변한 달모시에게 서리가 맛난 떡을 내어주며 말했다.

“달모시야, 심심하지 않니? 네 친구가 될 만한 아이가 왔단다.”

서리가 눈짓을 하자, 하인이 밖으로 나가 여자 아이 하나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달모시는 그 아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며칠 전 달못에서 만난 재리였다. 재리도 달모시를 알아보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비슷해 보이니 좋은 친구가 되겠구나. 재리야, 달모시에게 이곳 구경을 시켜주렴.”

서리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하인들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

사람들이 나간 후 재리는 달모시 앞으로 뛰어갔다.

“달모시! 너를 여기서 보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니?”

재리는 너무나 좋아서 달모시의 두 손을 붙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달모시도 재리가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여기가 너희 집이니?”

달모시가 물었다. 그러자 재리는 깔깔깔 웃어댔다.

“아니, 여긴 아무나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란다. 난 우리 어머니를 따라왔어. 우리 어머닌 이곳 바느질꾼이셔.”

재리는 달모시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저택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꽃을 구경하고, 하인들이 챙겨다 준 맛난 간식을 먹고, 술래잡기를 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가끔 두 사람의 곁을 지나가는 젊은 여인들을 만났는데, 하나같이 고운 비단 옷을 입고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여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달모시에게 다가와 신비한 향기에 대해 물었다. 달모시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보내는 관심과 호기심 어린 눈길이 무척 좋았다.

달모시와 재리는 한적한 담장 아래 그늘로 가서 앉았다. 재리가 주변을 살피더니 달모시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달모시! 네 몸의 향기는 어떻게 생겨나는 거니? 어째서 없어지질 않니?”

달모시는 신선과 향기가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알았다. 달모시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신선과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달모시는 재리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리 집 과일을 먹으면 누구든지 이런 향기가 나게 돼.”

“그 과일이 어떤 과일인데?”

재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다른 걸 안 먹고 그 과일만 삼 년 동안 먹으면 삼백 년을 더 살 수 있고, 십 년 동안 먹으면 천 년을 더 살 수 있어. 우리 할아버진 천 년을 천 번이나 더 사실 걸?”

달모시는 잔뜩 뻐기며 말했다. 재리의 눈은 몇 배로 커졌다.

“너희 할아버진 어떤 분이야? 너희 집은 어디야?”

“그건 알려줄 수 없어. 그건 절대 안 돼.”

달모시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우린 친구니까 말해줘. 나만 알고 있을게, 응?”

재리가 애원했지만 달모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재리의 얼굴은 잔뜩 토라졌다.

“그럼 우리가 나중에 혼인하면 그땐 알려줄 거니? 나도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거니?”

재리는 토라진 표정으로 물었다.

“혼인이 뭐야?”

“넌 혼인도 모르니? 너와 내가 가족이 되는 거야. 아기도 낳고 말이야. 그럼 난 어미가 되고 넌 아비가 되는 거라고. 우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거야.”

달모시는 활짝 미소를 짓더니 금세 다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달모시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혼인을 한 다음에도 그 집에서 사는 건 좋아. 하지만 매일 이렇게 산 아래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지금은 그럴 수가 없거든. 우린 숨어서 살고 있어.”

“왜 숨어서 사는데?”

“이유는 나도 몰라. 하지만 우린 숨어서 살아야 해. 우리 집은…….”

달모시는 망설이며 재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혼인할 사이니까 너한테만 말해 줄게. 비밀 지켜 줄 거지?”

달모시의 걱정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재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달모시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환검 안개 속에 있어. 우린 절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할아버지와 달님과 나는 한 가족이야. 난 달님을 어머니라고 불러.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 난 어머니와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단다. 어머니는 달님이니까 말이야. 어머니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려면 할아버지를 거쳐야 해. 할아버진 달님의 말, 동물들의 말, 모두 다 알아들으실 수 있어. 도술을 부리실 수 있거든. 할아버진 못하는 게 없으셔.”

재리는 혼이 쏙 빠진 채 달모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난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줄은 몰랐어. 그게 다 정말이니?”

달모시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재리는 벌떡 일어나더니 목소리를 낮추려고 애쓰며 조그맣게 외쳤다.

“난 너랑 꼭 혼인할 거야! 환검 안개 속에 있는 그 집에서 너와 할아버지와 달님과 함께 살 거야! 그날이 너무너무 기다려져!”

재리는 더없이 어여쁜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하게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