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어머니를 구해드리겠어요

by 분촌

놀다가 배가 고파진 달모시와 재리는 서리의 정원으로 돌아왔다. 서리는 하인들을 시켜 점심상을 내어주며 말했다.

“얘들아, 어서 점심을 먹으렴. 먹고 나서 길을 나서야지? 달모시는 해가 지기 전에 부리산 숲속까지 가야하니 말이야.”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난 달모시는 서리가 쥐어주는 작은 떡 주머니를 가지고 별궁을 나섰다. 재리는 서리와 함께 대문 앞까지 나와서 배웅해주었다.

“난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 또 만나, 달모시!”

재리는 달모시의 목을 살짝 끌어안았다가 놓았다. 달모시는 서리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재리를 향해서도 손을 흔들어 준 후 부리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달모시는 지난밤에 들었던 음악을 흥얼거리며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무지개가 앞장섰다. 무지개는 저만치 먼저 날아가 달모시를 기다렸다가, 달모시가 가까워지면 다시 즐겁게 노래를 하며 다음 나무로 옮겨갔다.

집이 가까워지자, 달모시는 된통 혼이 날 걱정에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질 녘이 되자 두 발은 어느새 집 마당에 들어서 있었다. 달모시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열린 방문 틈으로 미설이 보였다.

미설은 조그만 돌판 위에 흰 무명 조각들을 올려놓고 꿩의 깃털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이따금 돌판 옆에 놓인 까만 칡물에 깃털을 적셔가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그것을 본 달모시는 조심하던 것도 까맣게 잊고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달모시는 미설이 그린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어떤 날은 나무와 열매가 있었고, 어떤 날은 새가 있었다. 어떤 날은 순한 동물들이 있고, 어떤 날은 사나운 맹수들이 있었다. 오늘은 호랑이와 사람, 새 그림을 골고루 그리고 있었다.

미설의 그림은 매우 훌륭하기도 했지만, 달모시가 그것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미설은 그림들을 가지고 도술을 부렸다.

‘저 그림들은 어디에 쓰시려고 그리시는 걸까?’

달모시는 벌써부터 신이 나고 궁금해서 안달이 났다. 어떤 도술을 부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출에 대한 불호령이 있고 나서야 그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미설은 화를 내지 않았다. 달모시가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자니, 마침내 미설이 입을 떼었다.

“그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마음에 들었느냐?”

뜻밖에도 미설의 목소리는 무척 부드러웠다. 달모시는 내심 놀랐으나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네.”

“그래, 무엇이 마음에 들더냐?”

“멋진 집도 보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사람들도 만났어요. 친구도 사귀었어요.”

달모시의 대답을 들은 미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구나.”

미설은 그림 그리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달모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리 오렴.”

하고 다정하게 달모시를 불렀다.

미설이 하던 일을 옆으로 밀쳐두는 동안, 달모시는 방으로 들어가 미설 앞에 앉았다. 미설은 달모시의 맑은 눈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왜 바깥세상에서 살지 못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고 싶으냐?”

달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렴.”

달모시는 미설의 눈을 쳐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너는 달못에 바쳐진 제물이었느니라.”

미설은 칠 년 전 달모시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달모시는 미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럼 제가 죽어야 다른 사람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할아버지?”

눈물이 달모시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건 그렇지가 않단다, 달모시. 모든 게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게야. 달님은 제물을 원한 적이 없어. 제물을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단다.”

미설은 달모시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자신의 소매 끝으로 닦아주었다.

“첨해 이사금과 화령 부인은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했단다. 발천이란 예언자가 가르쳐준 대로 달님께 정성들여 기도를 드린 후에야 공주 하나를 얻게 되었지. 그 공주가 지금의 아로 이사금이란다. 원래 공주는 이사금이 될 수 없었단다. 하지만 첨해 이사금 부부는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어. 그래서 달님을 해친 것이란다. 여자 왕이 달님을 대신할 거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달님이 묻힌 후 진한 백성들의 삶이 몹시 어려워졌단다. 아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물을 이용한 것이지. 아로는 발천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제물을 바치려 했단다. 이 나라에선 살아있는 제물이 금지되어 있는데 백성들의 눈까지 속이고 아기를 바친 게야. 하지만 달님껜 살리는 법은 있어도 죽이는 법은 없단다. 봐라. 달님 덕분에 네가 살았고 너를 자식으로 삼으셨잖니?”

달모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제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든 걸 알게 되면 이사금을 내쫓고 어머니를 다시 하늘에 오르시게 해주겠죠?”

달모시가 물었다. 미설은 달모시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달모시야, 그렇게 되길 바라느냐?”

달모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날은 올 게야. 인간의 꾀가 하늘을 이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제가 하겠어요. 언젠간 제가 사람들에게 다 알려주겠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구해 드릴 거예요. 어머니가 저를 구하신 것처럼 저도 꼭 어머니를 구해드리겠어요.”

달모시의 눈망울에 고였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미설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로가 밉겠지?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갇혀 살아간단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머릿속에서 모든 걸 결정한단다. 하지만 언젠간 아로도 자신이 한 짓을 깨닫게 될 게야. 아로도 달님의 도움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이거든. 언젠간 달님께 돌아올 게다.”

미설은 달모시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한 번 더 닦아주었다. 눈물은 어린 가슴 속 슬픔과 분노를 머금은 채 쉼 없이 흘러내렸다.

달모시는 이따금씩 생각했었다. 사람인 자신이 왜 물속에 파묻힌 달을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게 불만스럽기도 했다. 달모시는 달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미설이 시키는 대로 어머니라고 부르긴 했지만, 도무지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갇혀있는 달을 보면 답답한 생각까지 들었다. 달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달모시는, 달이 자신의 방을 밝히는 조그만 등불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야 평소 미설이 들려주던 달의 진짜 모습을 믿게 되었다. 달이 가졌던 빛과 힘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달모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죄 없는 죄수가 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달이 가여워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 속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북받쳐 올라왔다. 그것은 서러운 울음소리가 되었고 달모시의 작은 어깨를 흔들어댔다. 미설은 달모시를 살며시 끌어안아 주었다.

그날 밤, 미설과 달모시는 달못으로 갔다. 달못 앞에 꿇어앉은 달모시는 아무 말 없이 옷소매로 눈물만 훔쳐내고 또 훔쳐내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물속으로 떨어졌다. 달모시는 처음으로 달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달은 달모시의 손에 닿지 않았다. 달모시는 달을 어루만지듯 물결 위에 손끝을 부드럽게 얹었다.

“울지 마라, 아가. 모든 게 좋아질 거야. 네 몫의 행복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단다.”

달이 이렇게 말하자, 미설이 달모시에게 달의 말을 전해주었다. 달과 미설과 달모시는 밤이 늦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이 사라진 밤하늘에선 별들이 어두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밝혀 보려고 밤새 부지런히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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