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처럼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달모시는 번쩍 눈을 떴다. 바위로 눌러놓은 듯 몸이 무거웠다. 몸에 박힌 화살은 살 속 깊이 파고들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도망쳐야만 했다.
마음속에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분노가 있었다. 그 분노가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게 했다. 달모시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로의 얼굴과 서리의 얼굴이 차례대로 눈앞에 떠올랐다. 분노가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달모시는 재리의 얼굴도 떠올렸다. 자신이 재리에게 말해 준 모든 것을 이사금이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 재리. 달모시는 재리를 잃지 않으려고 모든 비밀을 말해 버렸고, 그 결과는 이토록 끔찍했다.
‘모두가 날 속였어. 친구 따윈 없었어. 아, 너무 후회가 돼! 아무도 믿지 말았어야 했어…….’
달모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마음은 화살을 맞은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팠다. 달모시의 마음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몸에서도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달모시는 이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언젠가 달모시는 미설 몰래 이곳까지 와 본 적이 있었다. 절벽 아래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가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계곡 건너편으로는 달모시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험한 산세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제 더 도망갈 곳이 없었다. 마침내 무사들이 달모시를 둘러쌌다. 달모시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남은 힘을 다해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하였다.
달모시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보이며 포효했다. 그리곤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 무사 두어 명을 쓰러뜨렸다. 다른 무사들이 칼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달모시는 또다시 상처를 입고 간신히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더 많은 무사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적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달모시는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산을 울리고 길게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멀리 달못 속의 달에게까지 가 닿았다. 달은 그 울음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달의 몸은 한순간 잿빛으로 변해버렸고, 달못 위에는 달의 흐느낌 같은 쓸쓸한 물결이 일렁이었다.
달모시는 죽어가고 있었다. 의식이 흐릿해진 달모시의 눈앞에 달과 미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착하고 귀여운 친구들이 가져다주던 달콤한 산열매의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이 모든 게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난 자고 있는 게 아닐까? 잠에서 깨어나면 산양의 포근한 품속일지 몰라.’
달모시는 또 한 번 커다란 울음을 토해내었다. 산을 흔들 만큼 커다란 포효였다. 절벽에 부딪친 울음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먼 곳까지 퍼져나갔다.
호랑이의 무시무시한 포효에 겁먹은 무사들은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고서 최후의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몇 개의 화살이 달모시의 다리에 더 박혔다. 호랑이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자, 무사들은 모두 품속에서 올가미를 꺼냈다. 무사들이 달모시를 향해 올가미를 던지려는 찰나, 달모시의 네 다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달모시는 정신을 잃으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달모시는 잎이 무성한 물참나무 속으로 떨어졌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졌다. 달모시는 마침내 거친 돌이 가득한 물가로 털썩 떨어져 내렸다. 절벽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무사들이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으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달모시는 가늘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몸놀림이 매우 날렵한 무사 한 명이 급히 다가오더니 달모시의 몸에 박힌 화살을 빼내기 시작했다. 양질이었다. 양질이 화살을 뽑는 동안 양적도 도착했다. 화살을 다 빼낸 후, 양질은 옷섶에 손을 넣어 미설에게서 받아 둔 부적을 꺼내었다. 부적에는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양질이 부적을 호랑이 가죽에다 붙이니, 달모시는 다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양적이 달모시를 들쳐 업고 양질은 주위를 살폈다. 형제는 계곡을 달려 내려갔다. 두 사람은 달리고 또 달려 산기슭에 이르렀다. 양질은 산기슭 나무에 묶어 두었던 말을 가지고 왔다. 양질이 말 위에 올라타자, 양적이 양질에게 달모시를 넘겨주며 말했다.
“형님, 서둘러야 해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양질은 말 위에서 달모시를 받아 안았다.
“걱정 마. 자신 있어. 밤이 되기 전엔 돌아올 거야.”
양질은 달모시를 자신의 몸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곤 힘차게 말을 몰았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양질과 달모시는 멀어져갔다.
양적은 우거진 수풀을 찾아 들어가 흑색 비단 옷을 벗었다. 그러자 소민들이 입는 베옷이 나타났다. 양적은 품속에서 짚신을 꺼내어 가죽신과 바꾸어 신었다. 그리고 재빨리 흑색 옷과 가죽신을 베로 만든 주머니에 넣고 어깨에 메었다. 준비가 끝나자 양적은 다시 큰 길로 나와 국읍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 해는 막 동산을 벗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