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새 보금자리

by 분촌

해는 하늘 한가운데를 지나 부지런히 서산을 향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여름 한낮의 공기는 뜨거웠다. 양질은 쉬지 않고 달려 조문국에 도착했다. 양질은 촌락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어느 외딴 오두막을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오두막은 다래어멈이 사로국으로 가기 전에 살던 집이었다. 오래 비워두어 지붕의 이엉이 썩고 집 안 곳곳에 거미줄과 벌레들이 들끓던 집이었지만, 오늘 이른 새벽부터 금아간이 하인들을 보내어 손질해 둔 덕분에 말끔해져 있었다.

오두막에서는 금아간과 금아간의 무사,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 한 명이 양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아간은 마당가 고욤나무 아래 놓인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었고, 무사와 노파는 그 곁에 서 있었다. 집을 수리한 하인들은 모두 돌아간 후였다.

멀리 산모롱이에서 무언가가 나타나자 금아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의 시선은 모두 산모롱이를 향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말이 달려오고 있었고 말 위에는 흑색 옷을 입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양질이 틀림없었다.

양질의 말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금아간이 다가갔다.

“어서 오게. 그래, 아이는 어떤가?”

금아간이 물었다.

“달모시는 무사합니다.”

양질은 자신의 몸과 달모시를 묶었던 끈을 끄르며 대답했다. 금아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금아간의 무사가 달모시를 받아 안았다. 무사는 방으로 달모시를 안고 가서 조심스럽게 뉘인 후 주변을 살피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양질과 금아간, 노파는 깊이 잠든 채 깨어나지 않는 달모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린 것이 몹쓸 고초를 겪었구먼.”

금아간이 말했다.

“달모시는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미설께서 주신 부적으로 간신히 살렸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숨이 끊어졌을 것입니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네. 그래, 미설은 어찌 되셨는가?”

“궁궐로 끌려 가셨습니다.”

양질의 말에 금아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아까부터 달모시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던 시종이 금아간을 향해 말했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무척 심하게 다쳤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상처가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양질이 대꾸하다 말고 머뭇거렸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 눈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살갗은 깨끗하게 아물었지만 눈이 걱정입니다.”

“흠……. 잠에서 깨어나야 알 수 있겠구먼.”

금아간이 말했다.

“다래어멈은 저녁이나 되어야 도착할 걸세. 오늘은 나의 유모가 돌봐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떠나게. 길이 어두워지기 전에 사로국에 도착해야지.”

양질과 금아간은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양질의 말 앞에 서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지님이 아니셨다면 끔찍한 일을 막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감사한 마음 표현할 길이 없다 하셨습니다.”

양질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하늘님께서 도우신 게지. 마침 사로국에 공물을 가지고 간 내 부하들이 간밤에 이사금의 계획을 엿들었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 했네.”

“조금만 늦었어도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와 양적이 달못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이사금의 무사들이 맹수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하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금아간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질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돌아가거든 내가 자주 들러 살필 것이라고 죽현께 전하게.”

금아간의 말에 양질이 목례로 답했다. 그리곤 날렵하게 말에 올랐다. 양질이 탄 말이 금아간의 시야에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한편, 양적은 반나절이 되기도 전에 국읍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니 죽현과 새미어멈이 양적이 오길 기다리며 초조하게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양적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죽현은 달려가서 양적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그래, 달모시는 어찌 되었느냐?”

양적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무사히 떠났습니다. 의식을 잃었지만 혈색도 금방 돌아왔고 숨도 고릅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아버님.”

양적의 대답에 죽현은 그제야 마음을 놓겠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되었다.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되겠어. 너희들이 이번에도 큰일을 해냈구나.”

새미어멈도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다래 할머니는 잘 가셨습니까?”

양적이 죽현에게 물었다. 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금아간의 사람들이 마차에 태워 갔으니 고생은 없을 게다. 곡식과 당장 필요한 물건들도 함께 실어 보냈다.”

양적은 새미어멈을 향해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께서 많이 허전하시겠어요.”

새미어멈은 더욱 활짝 미소를 지었지만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살아 있으면 또 만날 테지요.”

새미어멈은 소매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대답했다.

“가끔 다녀오도록 하시게. 금아간의 사람들이 다녀갈 때 섞여 가면 될 것이네.”

죽현이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죽현 님.”

새미어멈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미설은 어찌되셨느냐?”

죽현은 다시 양적에게 물었다.

“궁궐로 끌려가셨습니다. 이미 도착하셨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궁궐로 가야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죽현과 양적은 곧장 궁궐로 향했다. 궐 안에 들어간 죽현은 오가는 시녀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부리산에서 끌려온 노인은 어디로 갔느냐?”

그러자 시녀는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감옥에 가두었다 들었습니다.”

“오냐, 고맙구나.”

죽현과 양적은 궁궐에서 조금 떨어진 감옥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금방 미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감옥에는 미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로국에서는 감옥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죄인들에게 처벌을 하기 전 잠시만 사용했으므로 텅텅 비어 있을 때가 많았다.

미설은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미설!”

죽현이 미설을 불렀다. 미설은 엷은 미소를 띤 얼굴로 두 사람을 맞았다.

“달모시는 무사합니다.”

미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여전히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나도 이제 떠나야겠소.”

미설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현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어디로 떠나신단 말씀입니까? 달모시를 보살펴 주셔야지요. 달님은 또 어쩌고요?”

죽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그러나 미설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달님이 떠오르는 날,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미설은 죽현이 무어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호이오-, 호이오-!”

하고 무지개를 불렀다. 온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머리에는 무지갯빛 털을 한 꾀꼬리, 무지개가 나타났다. 무지개가 노래를 시작하자, 죽현과 양적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취해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미설은 그것을 틈타, 품속에서 부적을 꺼냈다. 부적에는 새가 그려져 있었다. 부적을 가슴에다 붙이고 무어라 중얼거리자, 사람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또 한 마리의 꾀꼬리가 나타나 포르르 날아올랐다. 두 마리의 꾀꼬리는 두 사람의 머리 위를 한 바퀴 휘 돌더니 아주 먼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아로는 궁궐에 돌아오자 뒤꼍 정원에다 정성들여 신선과 나무를 심게 했다. 그러나 신선과 나무는 정원 흙에 뿌리가 닿자마자 가뭄에 타들어가듯 말라버렸다. 아로는 왠지 그것이 불길한 징조인 것만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달모시를 잡았다는 소식은 날이 저물도록 들려오지 않았다. 도후는 어둠이 내릴 즈음에야 궁궐에 도착했다. 아로에게 가져다 줄 소식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도후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아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인이 도술을 부려 아이가 호랑이로 변하였습니다. 놓치지 않고 따라잡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진 후부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하루 종일 온 산과 계곡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호랑이도 아이도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로의 실망과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노인이다. 그 노인이 무슨 수를 쓴 것이 틀림없어. 아이를 어딘가로 빼돌렸을 게야. 당장 그 노인을 만나러 가야겠다.”

그리하여 아로는 도후와 서리를 앞장세워 감옥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 늦은 후였다. 감옥은 텅 비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