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죽현은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백성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엿듣게 되었다.
“첨해 이사금님과 화령 부인을 가리키는 노래가 아닌가?”
“공주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우릴 속이고 달님을 묻었다는 얘기지?”
“그 얘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이사금의 탐욕 때문에 우릴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치곤 심상치가 않아.”
“아이들이 선아의 노래라고 부르더군. 노래가 벌써 진한 안에 쫙 퍼졌을 거라고들 하더구먼. 도대체 누가 지은 노랠까?”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렇게들 수군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죽현은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돌을 집어 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사로에는 꽃의 여인 화령이요
하늘에는 달의 정령 선아라네
달아달아 귀를 닫아라
네 빛으로 아기를 빚어주면
사로의 꽃은 너를 묻으리
그 노래가 시작된 곳은, 봇짐 장수인 아비를 따라 국읍에 들어온 여남은 살쯤 된 여자아이의 입이었다. 노래는 바람에 실린 듯 하루도 못 가 장터에 퍼졌고, 남녀노소가 따라불렀고, 이윽고 궁 안의 시녀들도 흥얼거리게 되었다.
노래만 퍼져나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로 이사금이 살아있는 아기를 제물로 바쳤다는 소문도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오래 전 하늘을 달래는 제사가 있던 날, 제물 바구니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인자하시던 첨해 이사금님이 우리를 속였다니! 그 소문이 사실이야?”
“참말이라는군. 우리에겐 온갖 덕을 베푸는 척 하고, 뒤에선 몰래 달을 묻어버린 거래. 공주를 왕으로 세우려고 말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것도 모르고 열다섯 해나 고통을 당했지 뭐야? 우리 부모님은 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어디 흉년뿐인가? 우리 형님은 먹을 것이 없어 열셋에 죽었다네. 이웃집 젊은 부부는 세 아이 중 두 아이를 전염병으로 잃었어.”
남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치를 떨었다.
“아로 이사금이 더 악독하지 뭐야? 살아있는 아기를 제물로 바쳤다지 않아?”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잠도 오지 않았어. 이사금이 어찌 이럴 수가 있지?”
“백성들 앞에선 선녀인 척하더니, 마음은 흉악하기 짝이 없어.”
여자들은 분통이 터지는 듯 가슴을 쳐대며 이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죽현은 그 길로 곧장 궁궐을 향했다.
‘머지않아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 말게야.’
죽현은 거의 뛰다시피 하였다. 얼굴에는 진땀이 흘렀다. 죽현이 궁궐 앞에 도착하니, 궁궐 문 앞에 이사금의 마차가 서 있었다. 아로가 국읍의 촌락들을 둘러보러 나가려는 참이었다. 죽현은 마차로 다가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외쳤다.
“마마, 이젠 더 이상 기다리시면 안 됩니다. 당장 달님을 풀어주십시오. 이젠 그만 고집을 꺾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아로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마차에 올랐다.
“저도 그 해괴한 소문은 들었어요. 그 소문을 지어낸 자를 잡아들이겠어요.”
아로가 마차에 앉아 죽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부디 이사금이시여, 제 말을 들으소서! 이사금께서 지금 하셔야 할 일은 소문 낸 자를 잡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달님을 풀어드리는 일입니다. 백성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가능한 모든 인력을 모아서 지금 당장 부리산으로 가셔야 합니다!”
죽현은 한 번 더 부르짖었다. 아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죽현을 흘겨보았다.
“성 안의 민심을 제 눈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녀온 후 다시 의논하시지요. 할아버님께선 궁에서 기다려 주세요.”
아로가 말을 마치자 마차가 출발하였다. 멀어지는 아로의 마차를 바라보는 죽현의 눈빛에는 이제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죽현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로의 마차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