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새 달의 탄생

by 분촌

달모시는 재리와 모비의 부축을 받으며 산길을 올랐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고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식어있었다. 길을 걷는 내내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뒤따르는 군중들 속에서도 짚신을 끄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달모시는 몹시 지쳐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러나 가슴 속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달모시는 있는 힘을 다해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내디뎠다.

얼마 후, 비탈진 길이 끝나고 땅이 평평해졌다. 달못에 도착한 것이었다.

“달모시, 도착했어!”

재리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달모시는 재리와 모비의 손에 이끌려 마침내 달못가에 도착했다. 달못을 살펴본 모비가 외쳤다.

“달님의 몸이 다 말라버렸어요!”

“달님의 몸이 하얗게 타버렸어. 부서질 것만 같아.”

재리도 흐느끼며 말했다. 달못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오랜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리자, 달은 매일매일 뜨거운 태양 볕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젠 몸의 대부분이 말라버려서 하루만 지나면 완전히 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재리는 달모시가 달못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게 도와준 후 모비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달모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먼발치에서 달모시를 바라보았다.

달은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달은 자신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너무 늦기 전에 달모시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달모시가 다래어멈의 오두막에서 사라지기 전엔 죽현과 양질, 양적이 소식이라도 전해 주었지만, 사라진 후엔 소식마저 알 수 없었다.

부리산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빛났다. 반대편에는 빛을 잃은 달집이 텅 빈 고치처럼 떠 있었다.

‘언젠간 다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달은 자신의 몸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일이 오면 나는 사라지고 없겠지. 아, 나는 왜 사람들처럼 몸을 가지려고 했을까? 몸이 없었다면 난 이곳에 갇히지 않았을 텐데.’

달은 조선의 후예들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탓했다.

그때였다.

“똑, 똑, 똑…….”

작은 웅덩이만큼 남은 물 위로 누군가의 눈물이 떨어져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달을 잡으려는 듯 상처투성이의 거친 손을 뻗었다.

“어머니…….”

달모시의 목소리였다. 예전의 어여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지만, 달은 달모시를 알아보았다.

“돌아왔구나, 아가!”

달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달모시의 손을 사그라져가는 빛으로 어루만져주었다.

“먼 길을 왔구나, 아가. 죽기 전에 너를 이렇게 볼 수 있을 줄이야!”

달은 목이 메었다.

“어머니, 저는 죽어가요. 죽기 전에 어머니께 꽃을 드리고 싶었어요. 밤보다 검은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요. 어머니, 저의 꽃을 보세요.”

달모시가 말을 마치자, 달모시의 가슴 속 꽃이 눈부신 빛을 뿜으며 몸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꽃은 기지개를 켜듯 공중에서 꽃잎을 펼치고 줄기를 길게 뻗더니, 달못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달모시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놀라운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몇 방울 남지 않았던 달못의 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홍수가 난 듯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물을 피하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재리아범과 어멈은 재리와 모비의 손을 낚아채듯 잡아끌고서 멀리까지 도망쳤다. 재리가 뒤돌아보았을 때 달모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죽현과 양질, 양적은 달모시가 있던 곳으로 달려가다 가슴팍까지 물이 차오르자 우선 몸을 피하기로 했다. 양질과 양적이 죽현을 부축하여 물 밖으로 피신시켰다. 간신히 몸을 피한 구경꾼들도 꿈이 아닌지 저마다 볼을 꼬집어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현과 두 형제, 재리는 목이 터져라 달모시를 불렀다. 그들의 눈은 정신없이 호수 곳곳을 헤맸다. 그러나 달모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란이 차츰 잦아들자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달모시가 호수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수에 사람이 빠졌다! 사람이 빠졌다!”

사람들은 또다시 한바탕 야단이 났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 긴 나무 막대를 가져와 물속을 휘저어보는 사람, 물가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람……. 그러나 달모시는 온데간데없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호수에서는 또 다른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호수의 물이 둥글게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눈부시게 환한 빛이 물속에서 뿜어져 나와 온 세상을 대낮처럼 비추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속에서 황금빛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 기둥은 하늘에까지 닿았다. 그러자 그 빛기둥을 타고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달을 불렀다.

“달님, 이제 하늘로 올라가시지요.”

달은 그 신선이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미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미설, 제 몸은 이미 다 타버렸어요. 다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보다 어서 달모시를 구해주세요. 달모시가 이 호수 속에 있어요.”

“달님, 저는 마중을 나왔을 뿐입니다. 두 분을 말이지요. 제가 도와드릴 건 아무 것도 없답니다. 이제 두 분은 하나가 되어, 고통과 작별하고 새로 태어나실 것입니다. 깊고 깊은 골짜기, 타들어가는 땅, 버려진 마을, 눈물이 마르지 않는 백성들의 가슴 속까지 마음껏 비추고 빛나시옵소서.”

미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설이 타고 있던 황금빛 기둥에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소용돌이는 점점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회오리로 변했다. 빛의 회오리 속으로 달의 몸이 조금씩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가 달의 몸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빛의 회오리 꼭대기에서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곳에서 황금빛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의 회오리가 작아질수록 달은 점점 커져갔다. 마침내 회오리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 후, 달은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칠흑 같던 방 안에 백 개의 호롱불을 켠 듯, 새 달의 눈부신 광채가 온 세상을 밝혔다. 새 달은 예전의 달보다 몇 갑절이나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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