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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러기 May 21. 2019

너무 늦지 않은 발견

엄마가 안과에 다녀왔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다. 유방암 이력으로 인해 산부인과를 정기적으로 찾고 종종 감기 몸살을 앓아서 내과에 가는 경우는 있었어도 눈이 침침해 안과 진료를 본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 나이대의 여성들이 노안으로 눈앞이 어두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20년이 넘게 안경사로 일하면서 누구보다 자신 있게 자기 시력을 검사하고 교정해 온 엄마가 글씨를 잘 볼 수 없어 안과를 찾는 건 나로선 예상밖의 소식이었다.


“지금 검진받고 가는 길인데, 왼쪽 눈에 황반변성 진단받았어.”


엄마는 건조한 말투로 메시지를 보냈다. 글씨가 깨져보이고 뿌옇고,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안과에 와서 검사했더니 예상대로야. ‘예상대로’라는 말이 어찌나 무덤덤했는지 나는 엄마가 병원에서 편도선이 많이 부었다거나 장에 염증이 생겼다는 식으로 눈에 뭔가 작고 흔한 골칫거리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황반변성이라는 게 결막염이나 다래끼와 얼마나 다른지도 모르고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병명을 확인한 뒤에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붉은색 안구에 누렇게 기름이 낀 것 같은 적나라한 사진 때문이 아니었다. 내 시선은 그 밑에 적힌 ‘점점 나빠져서 실명에 이른다’는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노화로 인해 망막에 노란 침전물이 생겨 시신경 조직을 가로막고 결국 시력을 상실하는 일이 사람의 몸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병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증세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시신경은 우리 몸에서 재생도 안 되고 이식도 불가능한 세포야. 엄마는 오랜만에 전문가스러운 말투로 직업적 지식을 나열했다. 현재로서 황반변성은 수술도 불가능하고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없다고 했다. 유일한 희망은 눈 건강에 좋은 ‘루테인’이라는 영양소를 많이 섭취해서 진행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검색창에 ‘루테인’을 입력했다. 루테인은 케일과 양배추, 시금치, 달걀 노른자, 고구마, 오렌지 등에 함유되어 있다는 게시글이 가장 먼저 보였다. 제목은 황반변성 예방에 효과적인 식품이었다.


삶에서 많은 정보들은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타이밍보다 너무 늦게 도착하곤 한다. 황반변성 같은 질환을 예방하려면 루테인을 꾸준히 섭취할 필요가 있다고, 엄마에게 눈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케일을 갈아먹어야 한다고 5년 전의 내가 이야기했다면, 오늘 같은 대화는 없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게 지금 나에게 중요한 사실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버스에 타려고 올라서면 그제야 지갑을 두고나온 게 생각나는 것처럼, 누군가 상처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감춰진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알게 되는 것처럼, 어떤 발견은 늘 결정적인 사건 이후에 찾아온다.


“왜 엄마가 이렇게 자꾸 아프냐.”


얼마 뒤에 엄마를 찾아갔을 때, 엄마는 마치 아픈 신체부위를 설명하듯이 자조섞인 목소리로 내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들으니 ‘엄마’라는 단어가 무슨 병든 몸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쩡하던 눈이 왜 이렇게 되고, 허리는 야금야금 아프다 결국 디스크 수술을 하고, 며칠 전에는 길 가다 넘어져서 무릎 까지고... 이렇게 넘어진 게 처음이여, 처음. 엄마가 얼마나 천천하냐. 그런 사람이... 근데 가만 보면 이제 평지에서도 발이 끌리더라. 그래서 생각했어. 거기가 길이 안 좋아서 넘어진 게 아니었구나, 내 다리가 무겁구나, 하고.”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엄마, 불안해?”

“응, 불안해. 다음엔 뭐가 오려나, 그런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무슨 말로 엄마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늘 군인보다 용맹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겁에 질린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단 한 번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나약해진 모습을 나는 처음으로 발견했다. 역시나 한 발 늦은 발견이었다. 외면할 수 없는 불안이 너무 많은 징후들 속에서 이미 엄마를 사로잡고 있었다.


매일 아침, 어제보다 흐려진 세상을 두려워하며 눈을 뜨는 상상을 한다.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달려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더 나쁜 상황이 아직 남아있고 머지않아 닥쳐올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작아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나는 엄마가 최악을 생각하는 대신 현재의 행복을 찾기를 기도했다. 우리에게 어떤 행복이 있는지 나조차도 쉽게 말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너무 늦지 않은 발견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그것들을 엄마의 두 손이 꽉 움켜쥘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 2018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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