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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러기 May 22. 2019

폭염과 꽃게탕

바깥으로 한 걸음을 떼는 것이 겁나는 하루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한국의 7월이 이런 느낌이었나. 여름이라는 계절을 둘로 나눠야 한다면 그냥 여름과 여어어어어어어어름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다. 말도 안 되는 더위가 정말로 말을 못 하게 하는 요즘은 당연히 두 번째 여름이다.

한국의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웠던 여름은 1994년이었다. 그 해 여름의 한복판에 내 동생 연이 태어났다. 가정용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연이 태어난 집은 금성(Goldstar)에서 출시된 보급형 에어컨으로 사상 최악의 여름을 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연과 나는 여름이 되면 그 조그만 구식 에어컨 앞에 얼굴과 온몸을 바짝 붙이고 시원한 바람을 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애 둘이 땀을 식히려 해도 한참이 걸릴 만큼 턱없이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이었다. 그런 에어컨으로 역대급 더위를 버티며 엄마는 임박한 출산을 준비했고, 연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별자리나 혈액형처럼 태어난 계절의 날씨로 사람의 기질이나 성정을 분류하는 이론이 있다면 연은 꽤 그럴듯한 표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연을 볼 때마다 성질머리가 고약하다는 말을 던지곤 했다. 그것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연은 동갑내기 사촌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그 사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아이였다. 그 애 손에 들려있던 미니어처 자동차를 말없이 지켜보다 홱 빼앗았고, 순진한 사촌이 다른 놀잇감을 만지작거리면 엉금엉금 쫓아가 그걸 제 손에 넣고야 말았다. 두 아이의 엄마들은 돌이 갓 지난 아이가 포식자처럼 장난감을 독점하는 걸 나무랄 수 없었다. 그보다는 매번 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순둥이를 달래기 바빴다. 그래서였을까.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은 자주 순둥이에게로 향했다. 나는 연이 여자아이가 아니었어도 과연 똑같은 평가와 비슷한 사랑을 받았을지 가끔 궁금했다.

“엄마가 해 준 꽃게탕이 너무 먹고 싶었어.”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연의 한 마디에 기록적인 폭염을 뚫고 모였다. 연은 얼마 전 안면도에 놀러갔다가 형편없는 꽃게탕을 사먹고 그 자리에서 환불을 받아 나왔다고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 아무 맛도 안 났어. 맹물에 그냥 게 한두 마리 넣고 끓인 맛이었다니까.

엄마는 그 하소연을 들으며 꽃게와 새우를 손질했다. 그리고는 된장과 고추장, 미더덕과 다시마를 큰 냄비에 듬뿍 넣고 진한 국물을 뚝딱 끓여냈다. 순식간에 일요일 오전의 성찬이 차려졌다. 연은 꽃게탕을 한 술 뜨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기쁨의 탄성을 짧게 내뱉었다. 나는 걔 앞에 꽃게와 새우 껍질이 무서운 속도로 쌓이는 걸 보며 천천히 밥을 떠먹었다.

오빠 왜 이렇게 못 먹어? 집게발에 있는 살을 파 먹어보려다 포기한 나를 보며 연이 물었다.

“먹을 게 없어서.”
“먹을 줄 모르니까 그렇지.”


그 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답했다.

엄마는 내가 손도 못대고 내려놓은 게다리를 가져가 야무지게 속을 긁어먹기 시작했다. 젓가락 끝에서 하얀 게살이 눈 내리듯 떨어져 나왔다.

어릴 때 엄마가 다 발라줘버릇해서 그래, 라고 연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건 너무나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굳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에게 ‘그러게 왜 나만 발라줬어’라며 괜한 핀잔을 줬다. 무안함에 아무렇게나 한 말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연을 가리키며 ‘쟤는 가르쳐주면 혼자서 잘 발라먹었어’라는 엄마의 대답도 조금은 변명처럼 들렸다. 그 말에 연은 ‘맞아, 맛있어서 더 먹으려고 열심히 연습했지’라고 넉살좋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통통한 꽃게 하나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연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얼마 후에 그만둘 거라고 했다. 자기가 진짜로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자리를 찾아보고 있어서 전국 어느 곳으로든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걱정과 잔소리를 한아름 쏟아냈다. 갈 곳이 정해진 다음에 퇴사해도 늦지 않는데 그렇게 무작정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 연이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걔가 어디로 가든 너무나 잘 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마음 먹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그걸 쟁취하고, 떠먹여주는 사람이 없어도 알아서 제 배를 채울 줄 아는 사람이 연이었다. 사상 최고의 폭염 속에서 태어난 인류답게 연에겐 지독한 더위만큼 지독한 근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알아보고 인정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다는 이유로 여러 그늘 속에서 살아온 삶이 분명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이 받았을 어떤 척박한 사랑이 나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점점 더 자주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땅에서도 기어코 자기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려온 강인함이 때론 존경스럽다.

엄마가 만든 반찬을 한보따리 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그 애의 뒷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날 때쯤엔 동생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 2018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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