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 왔다. 늘 연기대상 카운트다운으로 마무리하는 엄마의 세밑에 함께 하기 위해. 작년 오늘 일기를 쓸 때만 해도 내가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그 전통에 동참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어쩌면 조금 다른 연말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어찌됐건 엄마가 혼자 족발을 시켜놓고 TV 앞에 앉아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듣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그랬다면 내 마음이 ‘찌그러들’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그런 점에서 한결 같은 사람이다.
한파와 함께 손님이 뚝 끊겨버린 가게를 일찍 닫고 엄마와 시내로 나왔다. 쿠우쿠우에서 외식을 했다. 엄마한테는 아무리 맛있고 값비싼 음식이더라도 뷔페만큼은 안 된다.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대로 먹는데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엄마 평생에 뷔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하지만 엄마에겐 그게 현실이었다. 그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와 둘이 에어팟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으며 집까지 돌아왔다. 건물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 손은 늘 엄마의 엉덩이에 있다. 오십 개가 넘는 계단을 매일 같이 오르는 일이 하루만큼은 조금이라도 덜 고단하게끔 뒤에서 골반을 밀어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받치고 올라가는 것이 엄마의 몸인지 세월의 무게인지 아니면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그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문자를 보내고 안부를 물었다. 엊그제 강남 교보타워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다. 무슨 말을 덧붙일지 고민하다 고마웠다는 말을 썼다. 어쩔 수 없이 P가 떠올랐다. 고마워서가 아니라 단지 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방 출장을 가는 길에 네비를 켜면 지도 어디쯤에 표시되어 나타나는 그의 집이라든지, 아직 카톡 즐겨찾기 목록에 올라오는 그의 사진 같은 것들, 사진첩을 조금 올리다보면 나타나는 불과 몇 달 전의 시간들. 이제 마음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기억들이 때로는 괴로웠다. 정리해야지, 결심만 했던 날들은 올해까지다. 그는 부족한 사람이었고, 나 역시 부족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더 나은 모습이고 싶다. 삭제. 그리고 삭제.
잘 부탁해야 하는 대상은 나 자신. 더 많은 행복보다 더 적은 스트레스를 기원한다. 돈 때문에 혹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다른 무엇 때문에 비참해지고 비루해지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치열하게 운동하고 꾸준하게 글 쓰고 늘 질문하는 삶도 살 것이다.
- 2018년 12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