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폴리 감독의 <Take This Waltz>는 은근히 국내에 마니아층이 두터운 멜로 영화다. 미셸 윌리엄스, 루크 커비, 세스 로건처럼 한국에선 인지도가 많이 높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했고, 전통적인 멜로 장르의 서사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있는 내용임에도 팬들의 열렬한 관심과 입소문에 힘입어 개봉 4년 만에 재개봉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이 달렸다.
이 영화는 5년 동안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한 여자가 어느 날 이웃이 된 인력거꾼 남자에게 서서히 끌리며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보면 너무나 진부하게 들리지만 영화가 주는 감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건 이 영화의 핵심이 ‘그래서 결국 누구를 선택하는데?’라는 질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라 폴리 감독은 이 ‘치정과 불륜’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을 ‘관찰’한다. 그것도 아주 섬세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안온한 일상을 이어갈 때 우리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들이 스치는지, 끌리지 않고 싶은 상대방 앞에서 통제할 수 없는 떨림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짜릿한 불안을 경험하는지를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은근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이런 섬세한 연출이 정점을 찍은 인력거 씬이다. 주인공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세스 로건)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의도치 않게 대니얼(루크 커비)의 인력거를 타게 된다. 땅거미가 지는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을 받으며 인력거 뒷좌석에 앉은 마고는 곁에 있는 남편이 아니라 앞에서 인력거를 끌고 달리는 대니얼에게 자꾸 시선을 빼앗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인력거 사이드 미러에 비친 대니얼의 옆 얼굴과 미세하게 땀이 맺힌 그의 구릿빛 팔뚝 그리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저녁 하늘을 마고의 시점 숏으로 오가며 보여준다. 한 마디 대사 없이도 그 순간 그녀를 사로잡은 열정과 갈등, 체념과 설렘이 전달되는 대목이다.
사라 폴리의 사려 깊은 연출을 보면서 나는 어떤 것을 아름답고 또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이란 ‘무엇을 했는가(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단지 재현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행위나 발언의 사실관계보다 진솔한 내면의 감정을 들었을 때 누군가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경험을 해본 적 있지 않나. 다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라는 질문과 대답에 저마다 다른 정도로 서투를 뿐이다. 그래서 질문도 대답도 모두 젬병인 나는 가끔 이런 영화들을 보며 좀 더 근사한 인간이 되기 위한 연습을 한다. 당신이 느끼는 것에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 <Take This Waltz>를 추천한다. 나른한 일요일 오전, 아늑한 이불 속에서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