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젊은 사진작가 JR의 특별한 동행을 담은 이야기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돌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진을 인화해 대형 벽화로 만드는 이들의 프로젝트는 우연히 서로의 작업을 발견한 계기로 시작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88살의 바르다와 33살의 JR이 그동안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알 수도 있었을 공간들을 비추면서 출발한다. 그리고 공동의 작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실은 영화를 보며 중간중간 졸았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감기약을 먹었다는 변명을 덧붙이며 고백한다. 하지만 바르다와 JR이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 중 몇몇을 건너 뛰더라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억나는 장면은 꾸벅대며 졸다가 눈을 떴을 때 JR이 바닷가에서 벽화 작업을 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노르망디의 어느 해안가에서 부서진 채 바다 앞에 방치된 거대한 벙커 조각을 발견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벙커의 한 면에는 바르다의 친구였고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진작가 기 부르댕의 젊은 시절 사진이 붙는다. 그리고 다음 날, 커다란 벙커에 아름답게 기대어 있던 기 부르댕은 간밤에 밀려온 썰물로 완전히 씻겨져 나간다.
눈앞에서 자신들의 작업이, 사랑했던 친구가 (한 번 더)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면 누군들 존재의 유한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88살의 노인에게는 더더욱 그것이 곧 다가오는 죽음의 징후처럼 읽히기 마련이다. 바르다와 JR의 사진 작업은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버려진 탄광촌, 넓은 땅 위에서 홀로 농사를 짓는 농부, 항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아내들. 사진은 소멸의 반작용 같은 예술이다. 모든 것이 영원불멸 하다면 사진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의 프로젝트는 벙커에 잠시 기대었던 기 부르댕의 사진처럼, 이미 사라졌고 앞으로 사라질 것들을 불러세우고 기억하고 끌어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썰물에 휩쓸려 지워지고,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다고 해도 커다란 벽에 사람들의 얼굴들을 붙여넣는 순간의 감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기억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