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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Nov 08. 2020

명언도 망언도 아닙니다

좋은 것만 골라내 읽고 실천하면 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난 2010년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동명의 저서는 ‘시대의 명언’과 ‘희대의 망언’이란 엇갈린 평가를 동시에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고 수많은 패러디와 밈(meme)을 양산하며 저자 및 출판사의 의도와 전혀 다른 각종 ‘부캐’들을 탄생시켰다. 개인적으로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읽고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으나 그 뒤 쏟아진 수많은 비판을 접한 후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히 옳거나 그른 것은 드문 법이고 시공간적 맥락에 따라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기도 했고 나름의 해석을 다시금 해보고 싶은 생각에 처음같은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우선 저자의 성장 배경 및 근무 환경과 책이 출간된 당시의 사회적 맥락은 다음과 같다.

김난도 교수는 법조인 부친을 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Southern California)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귀국 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1년 가량 시간 강사 생활을 한 후 1997년 막 생겨난 소비자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본인 뿐만 아니라 본인이 가르친 제자들도 모두 서울대생이며 이 책은 ‘힐링’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한 2010년 말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및 지방 출신 학생들이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는 책이 전하는 내용의 대상 대다수가 서울 및 수도권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큰 어려움없이 자란, 다시 말해 대학 진학 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만큼 경제적으로 유복하고 가정에 별다른 불화가 없었던 젊은이들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존’의’ 문제가 이미 해결된 덕에 ‘실존’을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 젊은이들의 보다 ‘고차원적’인 고민에 방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저자의 인생 경험들도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겪은 것이라 보기 어렵다. 물론 행정고시 3차례 낙방에 1년여의 시간 강사 생활이란 나름의 어려움을 겪었다고는 하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치열한 사회 생활 와중에 겪은 고충과 비교하기는 어렵다(20대 중반에 아버지 및 조부모가 돌아가신 일은 가족사이니 쉽게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시련의 경험이 일천하다시피 한 사람들이 ‘격언’ 혹은 ‘조언’을 담아(감히?) 쓴 책은 대체로 비슷한 성향을 나타낸다. 옳은 말이긴 하나 울림이 없고 잘 공감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책으로 책을 썼다’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또한 곳곳에서 저자가 소비자학과 교수라는 직함에 걸맞지 않게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변화에도 둔감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할 말 많았던’ 몇 구절부터 먼저 소개한다.








하지만 나는 뻔한 내용이더라도 책상머리에 앉아 손끝으로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많은 청춘들을 직접 만났고, 미니홈피와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해 소통했으며 1000명에 이르는 전국의 대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여(온라인 조사 전문회사 엠브레인을 통해 진행한 이 설문조사의 자세한 결과는 추후에 언론이나 책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좀 더 객관적으로 그대들의 문제를 보려 했다. - 프롤로그 중 p10


저자는 보다 정확한 청춘들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는 하지만, 그 노력이란 것이 고작 SNS와 설문조사 그리고 몇 명의(많다고는 하지만 저자의 사정상 그러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젊은이들을 직접 만나본 것 뿐이다. 이런 피상적인 활동만으로는 조사 대상자들의 정확한 생각을 읽어낼 수 없다. 그리고 설령 직접 대면했다 한들 한국 사회 특성상 중년의 교수 앞에서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20대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구글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로도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결정적으로 책의 전반적 내용은 책상에 앉아서도 쓸 수 있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그러니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고,  종국에는 이른 출세가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중략 ~ 그런데도 많은 청춘들이 소년등과를 부러워하고, 잠정적인 실패에 좌절하며, 잠깐의 뒤처짐에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지 말라. 그대의 전성기는 아직 멀리 있다 -본문 중 p35


산업화 및 고성장 시대에는 연공 서열에 따라 대우가 정해졌고, 유능한 인재의 덕목으로 창의성보다 성실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후 세상은 크게 변했고 독보적인 재능이 시대의 흐름을 탄 덕에 이른 나이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굳이 BTS 등등의 예를 들진 않겠다). 그리고 이른 성공이 나태를 부른다는 생각 자체도 편견일 수 있다. 오히려 청소년기부터 좋은 습관과 인성을 갖췄기에 젊은 나이에 성공할 수 있었단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는 말은 당장에는 듣기 좋은 그러나 근거없는 공허한 위로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본인 스스로 성공을 위한 요건을 갖췄는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고 있는지 냉철히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을 ‘이제 곧 나의 전성기가 올거야’라고 오역(!)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본인에게 돌아갈 뿐이다.


늦은 가을이 되어야 가장 풍성한 과일을 수확할 수 있듯, 우리 인생의 열매를 거둘 시기는 아직 멀리 있다는 사실을 그대가 다시 새겼으면 좋겠다. 가슴 떨리는 불안을 연료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밝혀 나갔으면 좋겠다. 그대의 자아를 실현하는 길이 의사나 공무원만은 아닐 터인즉 - 본문 중 p61


물론 전문직이 자아 실현과 완벽히 동일시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면 일단 생계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생각도 훨씬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자아 실현은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풀며 치열히 경쟁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인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전문 직종은 일 자체로 종사자에게 보람과 자긍심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연료로 ‘가슴 떨리는 불안’을 지목한 저자의 현실 인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당장 본인부터가 위험을 감내하고 오랜 시간을 불안과 싸워가며 목표를 이룬 사람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하여 성공한 경우가 현실적으로 훨씬 많다는 사실은 절박함이나 불안의 힘이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디지털 이주민의 푸념이 아니라, 인생 선배의 충언으로 말한다. 신문을 읽어보라. 신문은 그대가 ‘원하는’ 정보를 넘어, ‘알아야 할’ 정보를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매체이다. ~ 중략 ~ 한 신문을 정독하는 것이 포털의 여러 기사를 검색해 읽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많다. ~ 중략 ~ 인터넷뉴스의 근본적 문제는 ‘자기주도적’ 정보 검색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 본문 중 p175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비록 현재처럼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이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PC를 지나 막 모바일 시대가 개막하려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미 정보 권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었고, 기성 언론의 작위적 편집이 익히 알려져 있었다.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신문이야말로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정보만을 철저히 솎아내어 발간하며 독자가 ‘원하는’ 진실은 찾아보기 어려운 매체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한 신문을 골라 정독하고 자기주도적 검색을 지양하라는 말은 디지털화 여부를 떠나 미디어의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발언이었다.


마음껏 고민하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점에서 검토하라. ‘나는 그래도 배울만큼 배웠다’는 알량한 기득권 의식일랑 집어던져라. 혼자서 머리 싸매고 이런저런 상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나서라. 좋은 결정은 항상 좋은 정보에서 나온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폭넓게 책을 읽어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지 말고, 앞서 삶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와 스승들과 깊은 얘기를 나누어라 - 본문 중 p130


취지 자체는 좋았으나 캠퍼스 라이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공허한 조언이었다. 아마도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학년 학생을 위한 조언으로 보이는데, 이제 고작 스무살 내외의 신입생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보살펴 줄 선배나 스승은 현실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 신입생에게는 더욱 가혹하다는대학 재학 당시에는 3-4살 차이가 매우 커보이지만 사실 선배들도 20대의 ‘아이’이자 학생일 뿐이며 그들 또래끼리 어울려 다니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 혹은 교수들과 신입생 입장에서 교류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냉정한 사실은 신입생답지 않은 명석함과 성숙한 매력이 있어야만 선배들 혹은 연장자들과의 대화에 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귀인’이 존재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사실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별명은 ‘인동초’이다.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났다는 뜻이다. 그가 언제 자신의 꽃을 가장 아름답게 피웠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던 2000년 그의 나이 76세 때이리라. ~ 중략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빨리’ 성공하려고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 본문 중 p36


저자는 DJ의 사례를 통해 소위 ‘대기만성’의 개념에 기댄 조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DJ의 정치역정은 파란만장했고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수많은 고초를 겪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40대 중반에 대권에 도전할만큼 일찌감치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졌고 60대 이후에는 한국 정치계의 거물이 되어 있었다.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DJ는 입신양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노벨상은 DJ 인생의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나름의 확고한 뜻을 세워 정치에 투신한 과정이 더 높게 평가받을만하다. 덧붙여 말하자면 저자는 노벨상이 서구권 국가 그들만의 시상식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DJ의 수상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평화상’이 아니었다면 과연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싶은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각종 오류들만 있었던 건 아니며 그것으로 인해 좋은 격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애와 인간 관계에 대한 조언 등은 누가 읽어도 공감할만큼 힘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가볍고 경박한 시선에 대해 조용히 우려를 표시했는데 이런 대목에서만큼은 저자가 청춘의 진정한 멘토로 느껴졌다. 또한 글쓰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최근 2~3년 사이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저자의 조언은 ‘살짝’ 시대를 앞서갔단 느낌마저 든다. 차라리 이렇게 아날로그 감성에 기반한 기본적 가치를 중시하라는 조언 위주로, 본인이 직접 경험한 후 느낀 바 중심으로 책을 구성했다면 각계에서 쏟아진 그만한 비난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저자는 본인이 아는만큼은 청춘들을 도와주려 했다. 그 진실된 뜻만큼은 폄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란 서로를 완성시켜가는 관계다. 거울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을 통해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랑이 ‘관계를 위한 관계’에 빠져 자아의 퇴행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투사된 자기애의 변형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많은 경우,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로맨틱한 감정에 놓인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 p115


 책 한 권 쓸 수 있을 만큼의 작가 같은 글솜씨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키보드를 두드린다고 모두 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아야 한다. 적어도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글은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대가 무슨 일을 하든 말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잘 쓰려면 생각에 깊이가 있어야 하고, 논리와 구성이 탄탄해야 한다.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설득력 있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할 때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능력이다. - 본문 중 p186

 







 연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에 대한 요구 사항도 많다. 조금 더 자상하고, 사려깊고, 스타일리시하고, 센스있는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작고 사소한 허물은 그냥 덮어주면 안 되겠냐고. 자기 계발에도 힘써 달라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주 하고 근사한 이벤트도 열어 달라고~~ 한때는 그런 요구들이 매우 부담스러웠고 그로 인해 상대방과 다투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 민감하게 대응할 것까진 있었나 싶은 후회가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가 요구하는 모습대로 변하고 개선되면 결국 나 스스로에게 좋다. 지적이고 배려심 많은 매력적인 사람은 사회 생활하기도 편할 뿐더러 다른 사랑이 찾아올(!)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딱히 예민해하지 말고 불필요하게 다투지도 말고, 저 나 스스로를 위해서 좋은 습관을 실천하고 성장하면 그만이다. 다만 불필요하고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뜬금없이 연애의 사례를 인용한 것은 이 책이 건내는 여러 조언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하자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인상깊고 공감가는 부분이 있으면 철저히 선별해서 수용하고 실천해서 내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삶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고, 건전한 열망을 행동으로 옮기고, 조건보다는 사람 자체에 충실하고, 단순한 스펙보단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소모적이고 공격적인 비판에 매진한 나머지 정작 본인의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보단 백번 낫다. 명언이라며 지나친 팬덤에 빠질 필요도 없고 망언이라며 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과도한 비난을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자인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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