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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Mar 19. 2021

U가 떠났지만 Q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조용필, 절제된 이별의 감정을 노래하다

 알파벳 17번째 글자 Q는 엄연히 독립된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단어에서 21번째 문자인 U와 동반한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 이는 영어 뿐만 아니라 알파벳을 사용하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의 다른 언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U는 자음과 모음을 가리지 않고 다른 문자와 조합하여 온갖 단어를 만드는 데 반해, Q는 U가 없이는 그 존재마저 위태롭다.

 

 ‘과잉 망상’일 수도 있겠지만 두 문자의 만남을 보면서 오직 한 사람만을 원하고 생각하는, 짝사랑까지는 아니지만 다분히 일방적인 사랑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공교롭게도 U는 많은 곡에서 ‘You’의 약자로도 사용되는지라 Q의 처지에 감정이입된 연민이 살짝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오직 주기만 하는’ 사랑의 열병을 겪었고 또 겪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사랑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오랜 세월을 아파한다. 또다른 누군가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기도 하며 본인의 흑역사라는 생각에 그 시절을 부정하거나 심지어 혐오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서히 지난날을 놓아준 후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많이 힘들고 아팠으며 미성숙했던 본인의 모습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은 엄연히 인생의 한 부분이었으며, 슬픈만큼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아픔과 그리움, 시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오히려 그 감정들과 깔끔한 이별을 할 수 있었고, 과거는 빛바랜 ‘아카이브’가 되어 내 삶에 새겨진다.










‘사랑의 불시착’의 박남정, ‘바람아 멈추어다오’의 이지연 등 신예 스타들의 돌풍이 거세던 1989년 5월, 당시에도 기성 가수들의 대표주자였던 조용필은그 특유의 시인의 낭송을 연상시키는 발라드로 KBS2 가요톱텐에서 1위를 탈환하며 건재를 과시한다. 곡명은 단 한 줄도 아닌 단 한 글자 ‘Q’였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서울 서울 서울’ 이후 잠시 숨을 고르던 ‘본좌’의 컴백에 팬들은 환호했고, 가요계의 신성들도 ‘스타들의 스타’의 묵직한 한 방에 최고의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참고로 ‘서울 서울 서울’은 올림픽 공식 주제가로 채택될 뻔하기도 했다).


https://youtu.be/7bkG1CuhNBI


https://youtu.be/5xbgmIqLL2s

라이브로도 훌륭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던 우리의 ‘오빠’.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하얀 꽃송이 송이 웨딩드레스 수놓던 날 우리는 영원히 남남이 되고
고통의 자물쇠에 갇혀 버리던 날 그날은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사랑 눈 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청춘을 바쳐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지난 연인의 결혼식 당일. 비탄에 빠진 서정적 자아에겐 이 날이 청춘의 끝일 뿐만 아니라 ‘지구 멸망’의 그 날과도 같다.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해 둘의 추억이 깃든 공간을 찾아가고 홀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눈물만 나올 뿐 아픔은 그대로이다. 영원히 남남이 되어버린 그대 때문에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음날이면 지켜지지 않는다. 그렇게 지나간 날들에 스스로를 가둔 채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이렇게 계속 그 사람과의 추억을 쥐고 있는 것은 집착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놓는다. 그렇게 자신과 상대를 모두 ‘용서’하면서 청춘의 아름다웠던 사랑극 한 편은 조용히 막을 내린다.


 노래가 발표되던 1989년에 비해 현재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한층 더 자유롭다. 반면 그만큼 절제와 인내가 부족한 모습들이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절제가 표현보다 힘이 센 순간들도 분명 존재한다. 노래의 서정적 자아는 초반엔 잠시 방황하지만 결국 그 감정들을 현명하게 다스리고 다잡으며 자신을 지켜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그 날을 떠올리는 상념 속에서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다.

 

 물론 이별의 아픔을 못 이겨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사정은 그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테니 말이다. 다만 이별 앞에서 마냥 감정을 쏟아낸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만사가 그렇듯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실천’도 아니고 ‘인정’이다. 그리고 이런 인정을 위해서는 단지 차가운 이성만으로는 어렵다. 함께하고 사랑하던 그 때보다 더 사려깊고 신중하고 참아야 비로소 자유롭고 편안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힐링’으로 가는 길은 결코 보이는 것처럼 달콤하지 않다. ‘아파야 비로소 힐링’이다.









부부가 같은 곳을 향한다는 쉽지 않은 미션을 오랫동안 실천 중인 두 사람



 많이 힘들었을 그 상황을 차분하고 담담히 표현한 가사와 피아노 선율의 전주가 돋보이는 멜로디는 ‘가왕’ 조용필의 호소력있는 음성을 빌려 찬란한 시대의 명곡이 되었다. 이 곡은 영혼의 듀오’이자 당대의 ‘히트곡 제조기’였던 양인자(작사)와 김희갑(작곡) 부부의 수많은 명작 중 하나이다. 김희갑은 3천여곡의 작곡 및 편곡에 관여했으며, 양인자는 300여편의 노랫말을 썼다. 조용필의 다른 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서울 서울 서울’ 및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김국환의 ‘타타타’,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혜은이의 ‘열정’ 등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수많은 곡이 이들의 작품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부부는 시문학과 대중음악을 결합한 신곡 창작 및 공연활동에 매진한다고 하니 천상 예술인이 따로 없다. 이들의 창작 덕분에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K-Music’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며, 찬란한 80년대라는 유산을 갖게 되었다.


 ‘Q’는 발표 당시에도 다분히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제목으로 화제를 모았던 곡이었다. 과연 그들도 내가 상상했던 Q와 U의 안타까운 만남이라는 메타포를 떠올렸을지 궁금하다. 물론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들이니 그보다 훨씬 깊고 넓은 혜안으로 삶의 의미와 진실을 찾아가며 곡을 썼겠지만, 두 문자의 오묘한 관계를 그저 쉽게 흘려보내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그들 역시 늘 U를 필요로 하고 원하며 아파하는 Q가 더 이상 울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기구하게도 조용필은 2003년 자신의 U였던 부인 안진현을 병으로 떠나보내고 쓸쓸한 Q가 된다. 첫 결혼 실패 후 재혼한 안진현은 조용필의 음악적 삶을 존중하며 내조했으며 조용필 역시 아내에 대해 애정을 숨기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샀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했다. 이후 조용필은 안진현의 유산 전액을 기부하고 그녀를 그리는 곡을 발표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그 꿋꿋한 모습이 지난날의 노랫말 같아 짠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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