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 그거 아무 도로에서나 가능합니까?
맥락이 제거된 성공 이야기, 어떻게 들어야 할까?
“‘몇 년이나 걸릴까요?’는 의미없는 질문입니다. 제대로 확실하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제대로 노력하면 짧은 시간 안에도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고, 남들 다 하는 정도의 특별하지 않은 노력만 한다면 긴 시간이 지나도 거의 변화가 없을 겁니다.”
우리는 투입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성과가 나온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업이나 투자에서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신속히 성공한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물론 운도 따랐겠지만 당사자가 해당 상황의 문제를 제대로 간파하고 핵심을 공략하는 노력을 한 탓도 클 것이다. 해당 도서는 저자 엠제이 드마코가 열악한 기반을 딛고 신속하게 성공한 스토리로 몇 년간에 걸쳐 세간의 큰 호평을 받은 베스트 셀러이며 ‘부자 되기’ 열풍을 타고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만큼 참고할만한 유용한 내용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잘’해야 하는가를 ‘잘’이 아닌 그저 ‘열심히’ 설명했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우선 저자가 말한 삶의 3가지 길에 대해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인도 : 그저 후회없이 오늘을 즐기는 길
서행차선 : 우직한 책임감만 가지고 위험없이 생존하는 길
추월차선 : 스마트하고 영리하게 생각하며 꿈을 이루고 사는 길
이 중 가장 공감이 가지 않았던 내용들은 서행차선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 책 전반을 통틀어 저자는 서행차선의 비효율적인 우직함을 지적한다(사실 거의 대놓고 조롱한다!). 물론 서행차선의 끝이 부자의 삶과 거리가 멀다는 점은 납득이 갔다. 그런데 서행차선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도 부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습관들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나의 ‘뇌피셜’이 아니라 수많은 자수성가형 부자들의 조언이다). 또한 사업을 하려면 최소한의 사회 생활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저자는 직업 전체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한다. 종사하던 직종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사업이 성공한 경우도 많다. 학생 시절 창업하여 성공한 구글과 페이스북은 예외 중의 예외일 뿐이다. 실제로는 많은 사업가들이 직장 생활의 경험이 있고 그 와중에 사업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내 말이 아니고 실제 통계가 그렇다저자가 학벌 및 정규 교육에 있어서 부정적인 시선을 표한 것 역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규 교육에 매몰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큰 폭의 성장을 이루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좋은 학부에 진학하기 위한 양질의 교육은 기본적인 지식과 교양을 형성하며 이러한 문화적 자산은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큰 힘으로 작용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관념과 지식에 매몰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직접 경험으로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규 교육을 잘 받아야 기본적인 사리 판단 능력을 갖출 수 있고 인내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많은 성공한 창업가들이 대체로 대학 교육 이상을 받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검색해 보라. 이들 대부분 명문대를 나왔거나 중퇴했다
그 외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진정한 비법을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그 예로 로버트 기요사키를 들었는데, 매우 황당했다. 기요사키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 엠제이 드마코야말로 본인의 성공 요인 중 핵심인 사업의 전개 과정에 대해 전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론적 격언을 chapter가 끝날 때마다 ‘요약’이라는 이름 하에 그저 단순히 나열하기에 바빴다.
또한 일확천금은 없다면서 장기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평범한 삶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스탠스를 보였는데, 영원한 평범함은 부자가 되기 위해선 버려야겠지만 적어도 부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칠 때까지는 평범하고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버텨내야 한다. 이 책의 독자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들임을 감안할 때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설문조사의 대상은 부자들이었다물론 ‘꿀팁’도 있었다. 부자들은 복리를 부 창출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소득과 유동성을 위해 사용한다는 설명에서 현금 흐름 창출에 대한 신박한 요령을 하나 배웠다. 스타’의 가치가 비이성적으로 천정부지로 오르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본질인데, 저자는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다만 여기에서도 ‘왜’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종합하면 저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맥락은 매우 특별하고 예외적이었다(물론 평균 이상으로 노력한 것은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데 이를 부자가 될 수 있는 정형적인 방법인 양 일반화하고 심지어 과장했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요즘 부자 이야기 콘텐츠가 넘쳐나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에 나오는 방법들을 공부하고 실천으로 옮기고 있으며, 이제 독자들은 그렇게 단순하고 우매하지 않다. 우직하게 그저 하던 대로 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지만, 무모한 도전은 더욱 위험하다는 것쯤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 저자가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임은 백번 인정하지만 전반적인 ‘기본기’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부족한 점은 많이 아쉬웠다.
저자를 비롯한 많은 부자들이 책과 SNS, 유튜브 등을 통해 대중의 스타로 떠올랐고 이들을 추종하는 팬들도 많아졌다. 예전같으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사업 성공의 경험담을 나눈다는 점에서 그들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한다는 논리에 일부 공감한다. 다만 그 누구의 성공 경험담도 결코 ‘복붙’할 수 없으며 각자의 맥락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 간과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남의 성공담은 그저 참고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부자들에 대한 팬덤이 워낙 거세지다 보니 이런 주장을 두고 자격지심의 발로라며 폄하하는 사람들까지 만나곤 한다(너는 부자도 아니면서 말이 많아! 뭐 이런 식이다). 그런 열성팬들은 부자들의 이름조차 꼭 OO회장님으로 부르며 거의 신격화하는데 그들 앞에서는 누구를 함부로 부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SNS에 부쩍 많아진 자기계발 관련 콘텐츠를 보면 ‘스타 부자’들의 저서를 그저 ‘요점 정리’한 글들이 난무한다.
뭐가 됐든 성장하는 방법은 제각각이고 부자되는 길도 여러가지이다. 그리고 마치 종교에 귀의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듯이 부자들을 멘토 심지어는 교주로 모시며 내일의 희망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고 성공에 공짜는 없고 비법을 알면 내가 쓰지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기진 않는다. 부자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의 저자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다음과 같은 말로 사람들이 부화뇌동하지 말고 자신의 중심을 잡으라 조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