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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Mar 29. 2023

알고 보니 그런 게 있었군요.

성공에 대한 적나라한 조사, 연구, 논문(?)

 이 영양제를 먹고 화장품을 바르면 “예뻐진다”는 광고가 거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날것 그대로의 사실도 아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는 식생활, 수면 습관, 평소 신체 밸런스 등이 올바로 잡혀야 하고 여기에 적정 강도의 운동이 추가되면 더 좋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외모와 체형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건조하고 이성적으로 풀어 쓴 ‘미모의 비결’이다. 하지만 뷰티 관련 상품(화장품, 건강 식품 등)을 판매할 때는 딱딱한 ‘사실‘보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에 기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실 다 안다. 이영애는 뭘 발라도 아름다우리란 걸~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낭만적 소망에 이끌려 오늘도 뭇 여성들은 화장품을 산다


 이 원리는 성공 사례를 설명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공의 원인은 개인의 노력 외에도 재능, 주변의 도움, 시대적 배경, 행운 등 수없이 많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성공한 당사자의 진술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사연들은 대부분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개인의 노력으로 채색되고 편집된다.


‘멀티팩터’의 저자 김영준 작가는 여러 기업과 개인의 성공 사례를 다루며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야만 성공 이면에 숨겨진 진짜 원인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독서와 운동 등의 자기 계발과 사업에서의 성공 사이의 인과 관계가 그리 명백하지 않다는 의문을 품고 있었던 차에 만난 책이라 조사하듯이 집중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이라는 매운맛의 부제 역시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한 몫 했다.








 공차 코리아 김여진 대표는 한국에 공차를 들여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없이 한국과 대만을 오고 갔으며 마스터 프랜차이즈를 따내고도 대만의 매장에서 6개월간 직접 일해본 후 국내에 점포를 오픈했다. 하지만 굴지의 글로벌 금융 기업에서 일했던 경력을 지닌 남편 마틴 베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공차를 300억이 넘는 금액에 매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대부분의 ‘평범한 주부’에겐 그런 대단한 남편이 없다.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의사 부모를 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이미 10대에 미국 명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 그룹, 골드만삭스, 베인앤컴퍼니 등을 거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이 덕분에 스타트업의 생리에 대한 안목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때 알게 된 인맥으로 능력있는 동료들을 모아 창업할 수 있었다. 또한 창업 시점에 3억이라는 자본금을 동료로부터 받았으며 벤처캐피털로부터 50억이라는 거액을 투자받고 출발했다. 창업 초기부터 이렇게 좋은 자원과 대표의 후광 효과를 갖춘 스타트업은 극히 드물다.


사업에서의 출발점은 육상 달리기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많이 가지고 앞서 출발한다고 해도 결코 반칙이 아니다.


 월향 이여영 대표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개인 블로그에 남긴 글이 불씨가 되어 당시 재직 중인 중앙일보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것이 ‘불의에 맞선 해직기자‘라는 극적인 스토리로 승화되었고 이여영은 진보 성향의 인플루언서로 떠오른다. 요식업 창업 경험이 없고 미식에 별다른 조예도 없었던 이여영이 막걸리 주점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인플루언서를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성적인 ‘팬덤’이 있었던 것이다(여담이지만 월향의 말로는 매우 좋지 않았으며 이여영 역시 개인사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인플루언서의 후광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설령 사업의 경험이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스타일난다 김소희 대표는 동대문에서 본인이 고른 옷을 인터넷에서 판매하며 그야말로 소소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김 대표 본인이 그저 좋아서 쇼핑몰에 올린 옷들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본인의 취향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한 김 대표는 계속 사업 규모를 늘려나갔다. 게다가 당시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융성하기 전이었던 탓에 다른 유통 채널과의 극심한 경쟁도 피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었는데 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은 그 가치를 알아보았고 결국 6천억이라는 거액에 회사를 매각할 수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리고 돈 되는 일이 모두 일치하기란 극히 드물다. 그런데 김소희 대표에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책 속의 한 문장을 고르라면 ‘성공에는 예술 점수가 없다’를 꼽고 싶다. 절박하게 노력해서 밑바닥에서 성공하든 금수저로 태어나 가진 자원을 이용해서 성공하든 결과가 중요한 것이며 성공은 그 자체로 훌륭하고 매력적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과도한 리스크 테이킹을 권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조언은 별 의미가 없다 말하며 배경이 어떻든 절박하게 죽도록 노력하면 다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 담론에 대해 우려섞인 시선을 보낸다.


성공은 기계체조가 아니다. 아름답고 ‘간지나야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루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노력의 가치를 폄하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사례에 등장하는 창업가들이 쏟은 노력은 평균적인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다만 그 노력을 둘러싼 여러 배경과 맥락이 사업의 성공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작용하는가를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파악하려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성공은 사회 통념 그 이상으로 어렵고 복잡한 요인에 따라 그 여부가 판가름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는데 죽도록 노력하는 천재들과의 경쟁에서 버텨낼 수 있을 때 그나마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 너무 적나라한 팩폭일까?


책의 논리를 나의 성장과정과 대학 입학에 적용시켜 보니 나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목표를 이룰 수 없었음을 (세월이 지나)깨닫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입학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이 계셨고, 가정엔 아무런 불화도 없었으며 난치병으로 투병한 가족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에 가보니 학우들 중에 가정에 그런 문제가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 입학할 당시에는 수능만 잘 보면 지방 소도시에서도 서울의 소위 ‘네임드’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었으며 등록금도 평범한 가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가정의 뒷받침, 시대적 배경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서울권 대학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흔히 겸손은 그저 단순히 본인을 낮추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진짜 겸손은 모든 일에 자신의 능력 이외의 원인이 작용함을 확실히 인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말로 하면 겸손은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백할 줄 아는 용기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겸손하다면 자신의 노력 외에도 각종 배경과 혜택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객관적이고 냉정한 사람들이 시련이 닥쳤을 때 ‘멧집’도 더 셀 확률이 높다.


 하지만 최근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며 사업을 가르치겠다며 나선 수많은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은 하나같이 절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력만을 강조한다. 반면 자신들이 지니고 있었던 재능과 배경, 인맥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만난 행운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대중에게 노력해라, 미쳐라,심지어 똑바로 살라고 다그치고 심지어 채찍질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성공하신 것은 잘 알겠고 제가 감히 그것을 폄하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 필요한 건 그런 동기 부여가 아니에요. 어차피 님들께서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실 것도 아니고 님들을 따라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전 그저 사업을 하시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죄송하지만 여지껏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었던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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